'엄마 개학'의 호주 풍경

코로나가 엄마들 화병 도지게 한다는데.

by 루아나
IMG_2467.jpg 홈스쿨링 체육시간 - 멍뭉이와 줄다리기


멜버른의 온라인 수업, 소위 '엄마 개학'으로 인한 나의 고충은 고충이라 치고 아이 학교의 교사들은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한국으로 치자면 호주 교사들은 대학입학시에 높은 성적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하면, 한국처럼 공무원(교육 공무원이든 다른 공무원이든)이 되고자 온 청춘들이 노량진 고시원 같은 곳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또 다시 말하면 한국 교사들은 성적으로 치자면 전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엘리트들인 셈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과잉스펙인 것이 비단 장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로,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한 수학 교사는 SKY 출신의 신입이었다. 그는 수업만 끝나고 교무실에 오면 온갖 불평과 불만을 토로했다.

"왜 이딴 것도 모르지? 왜 내가 몇 번을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거야? 바보들 아냐?"


물론 그에게는 이해불가능한 미스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과반 교실에 그처럼 수학이 쉬운 아이는 한두명 꼽기도 어려운 현실인데, 교사의 놀라운 수학 능력이 무슨 소용인가! 그처럼 영특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수학을 배울때의 어려운 점과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등을 공감하는 교사라면, 어쩌면 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신 이곳의 교사들에게는 놀라운 장점들이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교사의 장점이 아니라, 잘 갖춰진 시스템이 갖는 힘이다. 이번 코로나19 로 학교가 봉쇄되고 온라인 가정학습이 시작되면서 이들의 장점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4월 15일, 처음으로 시작된 초등 3학년 아이의 온라인 수업은 아주 인상적이다. 아이 학교는 화상 채팅인 Webex(Cisco) 빼고는 모두 구글 플랫폼이다. 교사들의 구글닥스와 구글클래스룸을 통한 과제제시와 안내 그리고 업로드 방법의 구현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내가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언감생심 상상도 못할 것이다. 아마 한글 문서편집이라면 잘 할 것이다. 공문 작성과 각종 보여주기식 자료 만들기에 최적화된 일꾼의 필수조건.


부끄럽지만, 솔직히 멜버른에서 교사하라고 해도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아이고 어른이고 교사고 이곳처럼 구두/문자로 의사소통을 친절하면서도 정확하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지도 않을 뿐더러, 배운대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교육과정과 교실안에서의 교육과 배움과 일상의 삶이 많이 괴리되어 일어난다. 반대로 호주에선 교육과정과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과 일상의 삶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예로, IELTS 테스트를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테스트는 이곳 학교 Literacy 교육의 축소판이라 생각하면 된다. 특히 호주 국가성취도 평가인 '나플란(NAPLAN)' 의 Literacy 분야도 IELTS 테스트와 거의 동일하다. 이곳 아이들은 초1 때부터 IELTS 쓰기 분야와 같은 방식의 쓰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즉, 서론-본론-결론이 갖춰진 글, supporting idea 들이 본문을 뒷받침 해주는 글쓰기를 시작해서 학년이 올라가면서 계속 심화시키는 방식이다. 결국 호주에서는 쓰기를 못하면 중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도, 대학 졸업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방학 중 교사들은 과목별로 과제물을 구글클래스룸에 올렸는데, 과목의 특성/학부모의 컴퓨터 활용능력 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양식을 만들어서 올려놨다.
예로 쓰기활동이나 문법이라면 손으로 써야하니 pdf 파일로(가정에서 프린트해서 과제 완성후 사진으로 업로드 후 노트에 부착), 수학 문제 풀이 같은 경우는 바로 구글독스에서 풀어서 업로드 시키는 방법(물론 pdf 파일도 올려준다.) 과제의 특성상 비디오를 찍어야 하는 경우는 비디오로 업로드 시키기 등으로 분류해서 작업을 해놨다. 이미 모든 활동에 자세한 안내 설명이 있는데, 매일 오전 중에 필요한 짧은 안내 동영상을 다시 올려준다.


호주 교육활동의 장점은 교사들 간 협력과 공유인데, 이번 온라인 수업에서 그 덕을 톡톡히 보는 듯하다. 예로, 아이 학교는 크게 1-2학년, 3-4학년, 5-6학년을 묶어서 운영하는 시스템인데(호주에는 두 학년 통합학급이 아주 흔하고, 특수학급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닌 완전 통합 교육이어서 각반에 장애아동들이 존재하니 교사들이 개별 맞춤식 교육에 아주 최적화되어 있어야 한다.), 각각의 교사들이 역할 분담을 나누니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부모 입장에서는 담임과 상관없이 학년당 교육과정이 동일하니 좋은 점이 많다. 어차피 멜버른 학교에서는 원격수업 전에도 항상 이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교과서가 없는 대신 교육과정 설계가 교사들간의 협의로 이뤄지고 정보나 자료 공유가 일상화 되어 있다.


예로 아이 학년의 팀리더(학년부장격)는 4학년 담임 교사인데, 그가 3-4학년 공통으로 배우는 '설득하는 글쓰기'를 위한 안내 사항을 비디오로 찍어 두 학년에 공통으로 올린다. 그 후에 각 담임이 더 세부적인 사항 정도를 올려주는 방식이다.


평소에 교사와 학부모간의 관계가 민주적이고 위계가 없이 소통이 활성화 되어있다는 점도 아주 큰 몫을 차지한다. 어제 처음으로 아이에게 가정학습을 시킨 뒤 온갖 두통과 뒷목땡김과 소화불량이 나를 엄습했다. 왜 이렇게 공부를 많이 시키냐, 하기 싫다며 벌러덩 나자빠지는 애를 하루 종일 달래고 어르고 협박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 졌다.

'나는 엄마지 교사가 아니잖아.'란 생각에 이르자 담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최선을 다해서 가정학습을 돕겠지만 현실적으로 나의 아이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란 점과 아이의 교육적 성취 못지 않게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를 소홀히 하기 어렵다는 점 등의 고충을 보냈다.


오늘 아침, "어려운 점을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로 시작하는 답장이 왔다.

나는 겨우 내 사정을 하소연했는데, 담임은 상상하지도 않은 여러 대안들을 제시해줬다.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늘려가보자는 제안, 혹시 학교에 나와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게 낫다면 (물론 담임 교사도 없고, 사회적 거리 유지 때문에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은 빈 교실에서 한 두명씩 공부) 교장/교감과 상의해서 일주일에 한두번 나오도록 고려해 보겠다는 내용, 학습의 안내를 엄마가 아닌 교사가 해야 '학습으로의 전이'가 쉽다면, 본인이 아이에게 학급 전체가 아닌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주겠단 내용, 아이가 글로 된 지시 사항(읽기)보다 비디오로 된 설명(듣기)로 이해가 쉽다면 과제별로 따로 만들어서 개별적으로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서로 계속해서 아이의 온라인 수업의 과정을 지켜보며 피드백을 주면서 도와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엄마를 응원했다.


엄마인 내가 처음이듯, 교사들도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교육방식, 서로 힘든 시기임에도 누군가가 나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믿음, 그리고 내 아이를 전체에 맞추려 하지 않고 오롯이 개별적인 존재로 받아주는 시도가 눈물나게 고맙다. '그런 일은 내가 금방 도와줄 수 있는 일' 이라며 먼저 제안해 주는 교사. 그래서 난 내일도 힘들고 고된 하루가 되겠지만, 또 힘을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모두들 굳나잇!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친정 엄마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