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다 시간을 들이는 일

식혜입문 편

by 루아나
엿기름 불리기.jpg



멜버른에 살다보면 주변에 베이킹이나 쿠킹을 공부한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한때 호주 영주권 신청시에 잘 받아주던 직종이어서 여성들이 선호하던 분야였다고 들었다. 빵을 구울 때 질문이 있으면 봉이에게 전화하면 된다. 봉이는 멜버른 생활 초기에 베이킹을 공부했다. 봉이네 집은 커플이 사는데도 냉장고가 세대다. 그 안이 언제나 숨쉴 틈 없이 다양한 재료와 음식들로 채워져 있고, 살림 좋아하는 봉이에겐 혼자서 삼인분 이상의 음식을 섭취해주는 짝이 있어 환상적이다. 봉이는 가을이 깊어지면 김장을 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식혜를 만들고, 남편 도시락에 넣을 빵을 굽는다.


세 식구 살림에 500리터 작은 냉장고가 있고 그나마도 대부분 텅텅 비어 있는 우리집과는 <극과극 체험>을 하기 좋은 상대다. 나는 음식이 냉장고에 쌓이면 불안하고 봉이는 냉장고가 비면 불안하다.


아들은 식사 중에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서양식으로 주스나 탄산음료 타령이다. 한국 마트에 가면 가끔 식혜를 사줘봤다. 한국의 문화와 음식과 언어에 전혀 일도 관심없는 아이가 좋다는 게 쭈쭈바랑 식혜랑 밀키스 정도다.


빵을 매일 굽다보니 빵처리가 문제다. 락다운 상태라 지인들에게 나눔을 하기도 어렵다. 하필 우리집 남자는 빵을 사랑하면서도 몸관리를 해야한다면 음식 조절 중이다.


"아들아, 엄마가 식혜 만들어 줄까?"

엿기름과 누룩은 언제나 혼동이 됐다. 이번 참에 식혜를 만들려면 엿기름을 사와야 한다는 걸 봉이에게 들었다. 근처 '행복한 마트'에 가서 엿기름을 사오고 유투브를 시청했다.


'식혜 만들기가 이렇게 쉬운 거야?'

어려운 게 아니라 단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엿기름으로 질금물 만드는데 4시간, 밥 삭히는데 4시간. 그나마도 물에 담가두면 그만이고 밥솥에 넣어두면 알아서 삭히니 이보다 쉬운 일도 없다.


빵 만들기처럼 반죽을 섞고 치대고 발효시키고, 기다렸다 모양내고 밀대로 밀고 하는 일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왜 이 쉬운 걸 진작 해 주지 않았나, 싶은데.


한국에서 식혜를 좋아하지 않았다. 흔한 것은 가치를 잃기 쉽다. 아무데서나 사 먹고, 명절때마다 마시던 색깔마저 탁하고 갈색을 띤, 그 위에 그 흔한 밥알이 둥둥 떠다니는 음료는 멋있지도 세련됨도 살아나지도 않는다.


흔하던 것이 귀해지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물론 멜버른 살이의 투박함과 자연에 기대는 삶이 가져다 준 효과도 크다. 앞으로는 종종 엿기름 사러 다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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