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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Oct 07. 2020

타임머신


어느덧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삼십대가 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이십 대 때는 그렇게 어릴 적 일들이 백지가 된 듯 생각도 안 나고 관심조차 없었는데, 요즘의 나는 틈만 나면 내가 어릴 적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오빠와 지내던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돌아가는 이유는 거의 같다. 매일이 난해한 육아에서 답을 찾고 싶을 때, 어린 나에게 그때의 엄마와 아빠는 어떤 말을 했었는지 그리고 어린 나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게 궁금해서 그렇게 간다.



어릴 적 아빠는 매번 이런 말을 귀에 박히듯 하셨다.


"저기 아프리카 애들은 물도 못 먹는데 맨날 밥 먹을 수 있는 너는 행복한 줄 알아"


"엄마 아빠 없는 애들도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까지 듬뿍 받으면서 자라고 있는 너는 행복한 줄 알아"


"우리 집은 돈 빼고 모든 게 다 있어. 이런 집에서 태어나서 행복한 줄 알아"


"저기 맨날 춥거나 맨날 더운 나라도 있어. 그런데 이렇게 사시사철 다른 계절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이라 행복한 줄 알아"



아빠의 막무가내 행복 예찬론은 어린 나에게 통했을까? 백 프로 통했다. 나는 세뇌당했다. 



아빠는 세상 낙천적인 분이셨고, 긍정이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셨던 보기 드문 청춘이었다. 아빠의 눈에는 이 시대, 우리나라, 우리 도시, 우리 가족이 가장 훌륭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빠 밑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야만 하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딸이 나왔다.



그렇게 자란 한 아이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서울 이야기를 해도, 우리 도시만큼 홍수가 안 나고 효의 도시라는 멋진 타이틀을 가진 도시가 어디 있냐 생각했고,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금수저만 잘 먹고 잘 사는 대한민국을 헬 조선이라 불러도, 나는 여전히 사시사철이 아름답고, 이 작은 나라에서 잊을만하면 세계와 맞대는 작은 거인들이 나오는 이곳을 좋아했다. 방이 없어 공부하는 책상은 베란다, 잠은 할머니방, 옷장은 거실에 있었던 사춘기 소녀도 우리 가족과 우리 집을 좋아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베란다에서 패딩 입고 공부하는 시간은 오히려 추워서 잠이 안 와서 공부가 잘된다고 좋아했고, 혼자 자는 건 무서운데 할머니가 있어서 귀신 꿈을 꾸지 않는다고 좋아했고, 옷을 갈아입을 공간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내가 학교를 일찍 가서 새벽에 혼자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다 큰 나는 아빠의 행복 안경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서 가끔은 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은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좁냐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탄탄하게 세뇌당한 행복 예찬론은 아직도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다. 나는 아직도 나와 내 주변에 있는 많은 환경들을 꽤 좋아한다. 예전에는 우리 아빠가 그 유명한 '국뽕'은 아닌건지, 아빠는 1987년도에 왜 아무것도 안 했을까, 라는 생각도 하곤 했다. 지금은 그래, 한 명쯤은 국뽕도 있어줘야 하고, 긍정으로 무장한 사람도 있어줘야지, 앞서서 눈물 흘리면서 개혁한 사람도 있지만, 뒤에서 다독이며 가족을 지키던 사람도 있었어야지, 그렇게 세상이 다양하게 물들어가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못 찾은 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저 지금 내가 사는 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 우리 아이들은 나를 사랑할 것이고 나의 삶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 나름의 방법을 찾아 천천히 익어갈 것이다. 내가 아빠가 보여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고 아빠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나만의 삶을 살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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