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동반 모임에서 직장을 퇴사하고 전업맘이 된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가끔 생각해보면 배운 게 너무 아까워. 결국 애 키우면서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더 이상 깊은 대화를 이어나갈 순 없었지만, 나에게 시간이 주어졌어도 난 아마 반박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저 공감하고, 약간의 자조 섞인 한숨과 '다 그렇죠 뭐'란 얘기로 끝냈을 것 같다.
아마 나의 시작점은 그곳이었을 듯싶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 수학 문제를 푸는 이상한 엄마가 나온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이상한 엄마.
그 이상한 엄마의 현실판이 내가 아닌가 싶다. 아이 자는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서, 청소, 설거지, 빨래를 쌓아 두고 영어 공부를 하는 엄마.
어찌 보면 내가 배운 게 아까워서가 아니라, 내가 잊어버리고 혹은 잊히는 게 두려워서 뭐라도 하는 그런 사람.
결혼 후 화장기 없는 얼굴이 당연해졌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좋은 점 중 하나다.) 그 안에 기미, 잡티가 아무리 세수를 하고 크림을 발라도 사라지지 않는 걸 볼 때 새삼 이제 더 이상 파릇파릇한 그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딘가 입고 나갈 옷을 찾을 때 옷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청바지, 티셔츠, 통짜 원피스, 어린이집 등 하원용 옷만 몇 벌 갖췄을 뿐이다. 하지만 차라리 옷을 입었을 때가 낫다. 가끔 통유리로 나의 몸을 볼 때는 그저 한숨이다. 싱그러웠던 그때는 찾을 수 없었던 늘어지고 쳐진 나의 몸. 양분을 누군가에게 쭉쭉 뺏기고 생기가 사라져서 나도 금방 시선을 돌려버리게 되는 그런 몸.
그럼에도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게 하나 있다. 내가 펜을 부여잡고 공책에 한 자 한 자 적어가는 그 느낌, 책을 읽으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닌구나 하는 위로, 영어를 입으로 꺼내보면서 오늘도 하나를 해냈구나 하는 작은 성취감, 적어도 나의 마음과 나의 머리는 양분을 쭉쭉 주었어도 아직 살아있구나, 건재하구나 느끼고 싶다. 그래서 자꾸 이런 이상한 행동을 계속하게 되나 싶다.
요즘엔 이상한 행동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들고 싶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이상한 행동을 같이 하자던가, 이상한 행동의 깊은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고뇌하다 밤잠을 설친다던가, 이상한 행동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고 싶어 다른 사람의 하루를 훔쳐본다던가, 이상한 행동에 목표나 꿈이란 단어를 붙여본다던가, 또 다른 이상한 행동을 시작해볼까 판을 벌려보기도 한다.
이상한 행동의 끝이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그저 영화 속 수학 문제를 푸는 것으로 끝내고 싶진 않다. 나와 같은 이상한 엄마들을 찾고, 같이 답을 찾아, 무언가 이 허무함 속에서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럼 그때쯤 그 언니의 반박할 수 없는 질문에 '다 그렇죠 뭐...'가 아니라 우리에겐 아직 남아있는 커다란 힘이 있다는 걸, 그 힘은 배웠기 때문에, 어릴 적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줬기 때문에, 귀여운 토끼들과 남편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차근차근 나눠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