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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Oct 07. 2020

부부의 세계

연애 시절, 우리는 각자의 아픔과 힘듦을 가져오곤 했다. 다른 세계의 아픔을 위로해 주는 건 사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책에서 늘 얘기하듯이 눈 마주쳐주고, 들어주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는 것. 가끔씩 내가 그의 아내가 된다면 그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을까, 그의 힘듦이 조금 무뎌지지 않을까 그런 무모한 생각도 하곤 했다. 그런 게 사랑이었을까?



만나서 열렬히 사랑을 했고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이 사람이면 나의 인생을 함께 해도 될 것 같다는 충동일지 합리화일지 신중함일지 그 어딘가에는 있었을 생각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엄마와 아빠의 삶과는 다를 거라는 희망과 함께, 진부한 커플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확신과 함께.



우리는 종종 늦은 밤 신랑이 술을 마시고, 아이들과 함께 뒷좌석에 탄 뒤, 내가 운전을 하고 집에 올 때가 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았는지 칭얼거렸는데, 그럴 때일수록 보고 싶은 엄마가 운전만 하고 있으니 더욱 울었다. 술에 취한 신랑은 아이를 달래주지 않고 오히려 혼내기만 한다. 그럴수록 아이는 울고, 그런 모습을 듣기만 해야 하는 그 순간은 나에게는 언제나 고통이다. 그만 좀 하고 달래라는 나의 신경질적인 말에 신랑은 60년대도, 90년대도, 우리 할머니도 우리 엄마도 들었던 그 말을 그대로 한다. 어쩜,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당신이 애를 오냐오냐 키우니깐 얘가 이러는 거잖아!"

철없는 희망과 확신이야 사라진지는 오래지만, 이런 60년대 감성의 말을 정말 그대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2020년, 나름 알파 세대라는 이 디지털 세대에서 말이다. 



다른 세계의 아픔을 가질 때는 그렇게 같은 세계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지금 우리는 같은 세계라는 게 탐탁지 않은 듯 서로에게 서로의 아픔이 되어줄 때가 많다. 열렬히 사랑했고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줄 알았던 그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나의 소중한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세계 속에서 우리는 아이를 공유하고, 돈을 공유하고, 집을 공유하고, 수많은 것을 공유했다. 집을 공동명의로 하네, 마네 하면서 진부한 대화를 하기도 하고, 아이를 잘못 키웠네, 잘 키웠네 하면서 서로의 탓을 하고 공을 빼앗는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말은 그때 그 연애 시절처럼 '그랬구나' 한마디면 되는데, 어쩌면 그가 원하는 말은 그때 그 연애 시절처럼 토닥토닥 안아주는 제스처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하지 않은 채 그저 같은 세계만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 속 우리의 아이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언젠가 또 각자의 세계를 지닌 채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나 갈망을 느끼고 자신의 세계 속에 나 때문에, 신랑 때문에 겪었던 아픔을 나누고자 할까. 가끔씩 어른들의 말이 너무 소름끼치게 맞아서, 나의 호언장담이 한 번이라도 무너지지 않은 적이 없어서, 그래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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