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집 노맨을 솔직하게 고백했더니, 감사하게도 여러 아우성이 들려온다.
'우리집도 왕노맨이 있어요.'
'나는 노맨이랑 절대 못산다. 친구야.'
그래서 한번 더 노맨에 대한 나의 소견을 말해보려 한다. 노맨이랑 3년을 연애하고 5년을 살다 보니, 노맨과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첫째. 무뎌져야 한다.
그의 거절에도 무뎌져야 한다. 그의 거절은 내가 싫어서 하는 거절이 아니다. 그냥 습관인 편에 더욱 가깝다. 그가 거절한 것이 나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말투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생각보다 잘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건 그의 거절이 쌓일수록 나의 '용기'가 특히 '미움받을 용기'가 점점 올라가곤 한다. 예스맨 부모님께 자라 예스걸이 된 나에겐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매일 당하는 거절에 익숙해져서 인지 점점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마치 거절을 훈련하는 거친 샌드백 연습 정도로 그를 생각하면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둘째. 도전적 이어진다.
그의 연속되는 거절에 아무리 무뎌져도 가끔 상심하는 날도 있다. 그런데 그러다 한 번씩 'YES'가 나오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쾌재를 부르는 짜릿함이 있다. 매일이 쉬운 남자는 아니지만 이 어려운 남자에게 도전하는 재미가 분명히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도전적 이어지고, 이것도 제안하고 저것도 제안해본다. 그러다 그의 YES를 받아낸 날엔 '오, 예! 해냈어!' 알 수 없는 성취감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그런 도전정신을 연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다른 도전도 잘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도전의 재미를 나도 모르게 배우고 있었나 보다.
'이런 남자와 살아서 내 인생은 별로야.' 이런 마음이 들 땐 참 속상했다. 내가 좀 더 다정한 남자와 살았으면 내 인생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지금 현재의 인생이 꼭 실패한 것만 같았다. 이 실패의 원인이 남편 같았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더욱 원망과 남 탓만 짙어졌다.
그런데 결국 신랑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를 잘 외치는 그런 남자였으며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다지 매너가 없는 그런 남자였다. 내가 청소도 잘 안 하고, 밥도 못하고,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못 듣는 그런 여자이듯이.
이 굴레는 결국 그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내가 풀어야 하는 숙제였다.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것을 꽤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그가 'NO'를 외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에 'YES'를 해주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었고, 그가 매너가 없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내 인생에 매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그의 성격과 상황에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나의 노력과 나의 만족으로 내 인생을 좌우해야 했었다.
독서를 해서 생각주머니를 넓혔고, 취미를 가져 나의 공부를 했더니 자존감이 올라갔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갔다. 생각보다 남편의 No 없이도 내 삶은 잘 굴러갔다. '이거 할까?' 하고 어떤 제안을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먼저 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순간 나에게 Yes를 날려주었다.
내 인생에 내가 주체적이 된다는 것, 이 말은 쉽지만 실천은 너무나도 어려웠던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인생을 살았는지도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인생을 내가 좌우하면 나에겐 노맨도 예스맨도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노맨도 노맨 나름의 귀여움이 있는 정도로 봐줄 수 있다는 것을, 내 인생을 괜찮게 만드는 것은 노맨도 노매너맨도 아니라 예스걸인 나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