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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Apr 20. 2020

호불호가 없는 사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디즈니 영화, 음악들을 좋아했었나? 나는 스스로 '호불호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 이거 진짜 좋아해, 나 이거 진짜 싫어해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나는 학창시절 흔하디 흔한 팬클럽도 가입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연예인도 딱히 없었다. (이 또한 나이가 드니 점점 생기긴 하지만) 왜 하필 디즈니일까. 디즈니의 어떤 매력에 나는 지금 빠져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나에겐 너무 소중한 한 장면이 떠올랐다.

첫째와 둘째를 낳은 산부인과. 그 안에 신생아실. 아이를 난생 처음으로 직접 안아보고 마주했던 그 순간. 그 장면이 떠오른다.

첫째를 낳았을 땐 분만 후 즉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젖도 줘 보는 '르봐이예 분만'을 한다고 했다. 아이에게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라고 했을 때, 난 생전 처음 보는 핏덩이 아이가 낯설었다. 그래서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사랑한다는 말도 입이 떼지지 않았다. 뭔가, 소개팅 하듯이 어색했던 그녀와의 만남이었다. 간호사 선생님 성화에 내가 결국 한 말은..

- 안녕

우리의 첫 인사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고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가 지났을 때, 처음으로 이제 수유를 해보라는 신생아실 콜이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여매고 신생아실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서 손을 씻고, 빙 둘러있는 쇼파 한 가운데 어느 자리에 앉았다. 나와 같은 산모가 많았고, 누군가의 아기가 자꾸 들어왔다. 내 아기인가? 아니였다. 내 아기인가? 맞는 줄 알았는데 아니였다. 우리 아기와 다른 아기를 잘 구분하지도 못하였다. 다시 등장한 아기,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이 아기가 내 아기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난 아기의 눈, 코, 입을 보고, 잠자는 아기에게 자꾸 젖을 입에 대서 깨워도 보고, 처음으로 눈 맞춰 인사하고 '내가 엄마야'라고 말했던 순간, 진짜 엄마가 되었다고 느꼈던 그 순간, 신생아실에서는 디즈니 피아노 메들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었다. 뮬란의 reflection,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 인어공주의 Part of my life...

3년이 지나 둘째를 낳았을 때도 신생아실은 바로 어제의 공간이듯 그대로였다. 따뜻한 공기, 잔잔한 디즈니 메들리, 왠지 모를 엄마들의 긴장감, 아기들의 쌕쌕 거리는 숨소리. 두번째라고 아이를 받고, 인사도 하고, 젖도 쉽게 물리고, 게다가 조심스럽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영어 가사는 잘 모르니깐, 아주 살짝 살짝 콧노래를 부르고, 그 이후에 신생아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도, 아이에게 자장가로 디즈니 메들리를 들려주곤 했다. 그럼 이상하게 아이는 곤히 잠들었다. 태어난 날, 신생아실, 투명한 아기 박스 속에 있던 하루가 생각난다듯이.

죽기 전 인생을 파노라마로 돌려본다면 가장 오랜 시간 남아있을 것 같은 장면, 첫째를 처음 만났던 신생아실 수유 시간, 둘째를 처음 만났던 그 시간, 그리고 잔잔한 디즈니 메들리 일 것이다.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내가 엄마가 처음 되었던 시간, 그 시간을 잊지 못해, 아니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인생의 장면으로 남아있어, 난 어느새 디즈니를 공부하고, 힘들 때 마다 그 음악을 찾게 되나보다. 이상하게 엄마가 된 나는 왜인지 자꾸 좋아하는게 많아진다. 자꾸 기억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자꾸 머물고 싶은 순간이 많아진다. 더이상 '호불호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지 못하게 되버릴 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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