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이었나, 그때부터 아빠가 툭하면 던지시던 말씀.
- 괜찮아. 수능 끝나면 아빠랑 운동하면 돼.
매일 공부만 하느라 점점 푸짐해지는 딸을 보고 아빠는 아마 100프로 믿었을 것이다. 대학생이라는 자유로운 신분이 되면, 이 딸이 많이 예뻐지고, 특히 살이 빠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면에 아빠가 가르쳐주는 운동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빠는 운동광이었다. 30대 중반 허리를 삐끗하신 이후, 삶을 위해, 직업을 위해, 건강을 위해 목숨처럼 헬스장을 다니셨다. 당시 아빠는 상당히 자부심이 있었다. 15년 동안 매일 헬스를 갔던 아빠의 성실함과 노력에 대한, 그리고 그 아빠의 아들과 딸들을 헬스에 입문시키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도 함께.
하지만 처음 오빠를 헬스장에 등록시켰을 때 한 달 동안 서로의 불신의 늪만 커지고, 아빠의 답답함만 늘어났을 때 아빠는 의아했다. '아니, 내 아들인데?!' 두 번째로 대학생이 된 나에게 계속 운동을 하자고 한 아빠와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아주 살짝 느꼈던 나의 의기투합에도 우리의 만남은 꽤 잘못된 만남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빠는 정말이지,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문 PT처럼 나에게 자세를 알려줬는데 그게 그때는 정말 부담스러웠고, 일부러 아빠의 운동 시간을 피해서 가곤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나의 운동도 흐지브지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된 아들과 딸은 여전히 운동을 싫어하고, 여전히 헬스장을 인생에서 한 달 이상 가본 적이 없다. 아빠가 20년 동안 매일 헬스장 출석 도장을 찍고 있는데도 전혀 변함없이 관심이 없다. 그런 아빠가 이제 또 새로운 타깃을 정했다. 며칠 전 딸의 엉덩이가 뾰족하다며 얘기하는 나의 우스갯소리에 아빠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씀하신다.
- 걱정 마. 유라 크면 내가 헬스장 데리고 다니면서 스쾃 알려주면 돼.
어디서 많이 듣던 문장, 아직도 확신에 차있는 아빠의 눈빛. 세월이 지나, 타깃만 바뀐 우리의 일상은 정말이지 여전하다.
그런데, 아빠의 운동 욕심이 왜 오빠와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을까?
그걸 생각하기 앞서 갑자기 나의 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누가 말리지 않으면 10년 동안 영어만 팔 기세의 그 아빠의 그 딸, 그리고 툭하면 '괜찮아. 영어 내가 가르쳐주면 돼'라고 말하는 나, 그리고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 딸과 아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무관심'으로 대하고 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나만의 취미이다. 우리에게 각자의 필요나 흥미에 의한 관심과 의지가 고유하게 있다. 누구의 딸과 누구의 아들이어서가 아닌, 나로서 가지는 그 고유한 관심이.
하지만 아빠가 20년간 운동을 해서, 아빠의 업을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었듯이 나 또한 아빠의 딸로서 꾸준히 나의 관심사를 이어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마음과 머리를 차곡차곡 채워나가서 내 삶을 건강하게 이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얘기하겠지, 아이들이 커가는 내내, 눈을 번뜩이며.
- 걱정 마. 엄마랑 같이 영어 공부하면 돼.
아빠의 딸이어서, 가늘고 길게 가는 인생, 끈덕진 노력, 오지랖, 똑같다. 매일 거절당해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까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