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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Apr 28. 2020

자연 치유


누군가의 상담 이야기를 들었다.

꼭 영화 한 장면에서 '선생님, 저는요...' 하면서 시작하는 그 상담의 첫 시작이 그에겐 어땠을지, 상담을 통해 그의 상처는 치유가 되었을지, 상담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한 점들이 많았지만, 일단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를 던져보았다.

'어땠어?'

그는 상담에 가기 전 도무지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오늘의 한 시간의 상담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담실에 들어가 입 문을 떼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한 시간도 넘게 본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상담사는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는다.

상담사는 '치열하게 생각해 내려고 노력해서, 모든 것을 다 드러내 주세요. 이게 고통스러울 수 있어요.'라고 요청한다고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힘이 든다고 한다. 심지어 어린 시절 어느새 잊고 있었던 폭력의 기억도 너무 선명하게 다시 떠올랐다고 한다. 듣는 나조차 힘들었다.

다시 되물었다.
'잊은 기억까지, 아픈 기억까지, 되살릴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동의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상담이 끝나면 나의 상처를 끝까지 목도한 것 같아, 너무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근데도 계속 상담을 받길 원했고, 그는 지금도 상담을 받고 있다.

나는 여태 상처의 자연 치유를 믿었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어도 딱지가 생기고, 흉이 잠시 남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솔솔 돋아나듯이 마음속 상처도 자연 치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 치유의 가장 큰 무기는 시간이라고.

그런데 어떤 상처는 자연 치유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한다. 상담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그 상처가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내 안에 자라 폭력성을 띄거나, 우울함을 가져오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지 않는 상처들을 내면 밖으로 꺼내 쳐다보고, 말해보고, 생각해보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상상해 보는 것이다.

질문은 늘 이렇게 마무리된다고 한다.
'그럼 지금의 당신이라면 그때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어떤 의미일까. 그렇게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이런 질문이 소용이 있을까?
지금의 나라면 당연히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겠지. 당하고만 있지 않았겠지.라는 생각이 나의 상처에 치유가 되는 것일까?

이론적인 설명은 모르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상담의 목적은 하나이다. 지금 현재의 불안과 우울을 탈피하는 것. 단순히 무릎이 까진 것처럼 자연 치유가 쉽게 되는 상처였다면 좋았으련만, 우리에겐 대부분 자연 치유가 힘든 상처들이 더 많다. 그 방법이 상담이든, 독서든, 모임이든, 자기 계발이든 우리는 어떻게든 상처 받은 우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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