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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Aug 04. 2021

진입할 수 없는 궤도

같은 궤도를 맴도는 유나비의 사랑, 웹툰 알고있지만

나비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같은 궤도를 빙빙 도는 거야.

웹툰 <알고있지만>


- 책 다 읽었어?

- 아니 아직

- 아 그래? 넌 다 읽었을 줄 알았는데. 근데 뭔가 아까워서 아껴 읽고 싶더라. 끝나는 게 아쉬웠어.

사실 나는 그 때 그 책을 다 읽었고 그 책에 완전히 빠져 있는 상태였다.

- 그래서..어땠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속이 다 시원하던데? 인생이 원래 의미가 없다는 거 말이야. 뭔가 그거 찾느라고 이제껏 전전긍긍했는데 인생이란 거 자체가 사실은 아무 의미없다고, 허무한 거라고, 삶을 살아갈 이유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고 확인사살 해주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더라. 처음이었어. 그렇게 명확한 답을 꼭 듣고 싶었거든.

그는 마치 대사를 준비한 사람처럼 한치의 망설임이나 흔들림 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면접관이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그에게 S 등급을 주었겠지.

- 너는 그런 적 없어? 나는 늘 그랬거든. 내가 하고 있는 게 답인지 잘 모르겠고, 온 힘을 다해서 방향을 틀었는데 그게 맞는 방향인지도 모르는거지. 그냥, 할 수 있는 건 내가 했던 선택이 맞았길 바라는 거. 그거 뿐인거야. 근데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었거든.

그는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했고 다시 의사가 되기 위해 의전원을 다니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 공보의로 오게 되면서 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나를 향해 3연속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원,투,쓰리-아웃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이었고 후텁지근한 온도와 뒤섞인 미지근한 바람이 우리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무장해제 당한다는 느낌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너무 쉽게, 거침없이, 그리고 너무나 매끄럽게 나의 궤도로 진입했다. 마치 이것이 예정되어 있던 자신의 진로였다는 듯.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두려웠다. 아마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내가 무너지리란 것을. 그래서 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마음대로 나의 궤도에 들어온 그를 쫓아낼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 방황했다. 분명한 것은 하나. 그에게 절대 힌트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있는 곳이 지금 나의 궤도라는 것을, 나는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늘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그를 대했다. 아마 나는 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내 궤도 안에 깊숙이 들어왔지만, 나는 절대 그의 궤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나는 그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사람의 중심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어떤 사람의 궤도에 진입하는 것, 그리고 중심으로 가는 것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나는 그때 그의 궤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차라리 어떤 누구도 그의 중심에 들어갈 수 없기를 바랐다. 그의 중심에는 그만 있기를.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수 없었던 자리였기를.

그와 헤어지고 2년이 흐른 어느 겨울이었다. 나는 주말에 출근을 해야해서 대충 트레이닝을 걸친 뒤 후드를 뒤집어 쓴 채로 터덜터덜 학교로 가고 있었다. 참 이상했다. 나는 그 때 시력이 좋지 않아서 지척에 있는 사람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갑자기 발바닥이 땅에 그대로 붙어버린 기분이었다. 아주 멀리에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그라는 걸. 정신을 차리고 얼른 편의점에 들어가서 몰래 다시 그를 보았다. 펌을 했는지 머리가 길어졌고, 코트를 입고 있었고,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잡은 채였다. 나는 마치 드라마의 어느 한 장면처럼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믿기 어려웠다.

예쁘고 귀여운, 심지어 밝기까지 한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의 팔짱을 낀 채로. 그녀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는 예의 그 다정한 표정으로 성심성의껏 이야기를 들어주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던 것이었다. 해가 있는 밝은 낮에,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것. 우리 사이에는 늘 두 가지가 없었다. 낮, 그리고 밥.

늘 질척이고 혼재되고 모호한, 이 밤이 지나면 모든 게 사라질 신기루 같은 깊은 쾌락 대신 산뜻하고, 선명하고, 평온하고, 습관처럼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가벼운 권태가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중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낮 또한 꿈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2년 뒤 친절하게 내게 그 확인 사살을 해주었다. 나는 그의 낮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에게 낮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나에게 내어줄 낮이 없었다는 것을.

그 후에도 나는 같은 궤도를 맴도는 나비처럼 낮이 없는 관계를 수차례 거쳐왔다. 우리에게 밤이 있으니 낮도 생길 거라 믿었지만, 서글프게도 그런 관계는 많지 않았다. 서로의 낮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궤도를 공유하는 것, 그것이 과연 단순히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사랑이 시작되면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가 나의 궤도에 진입했듯이, 내가 절대 그의 중심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란 것을, 내가 아주 일찍 눈치 챘듯이. 그렇다면, 그 이후의 시간은 도대체 어떻게 견뎌야 하는 걸까. 사랑이 고통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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