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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회고 | 서른일곱, 직업을 바꾸다

새 일이 준 '보람'과 '실망'에 관하여

by 슥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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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직업을 바꾸다.

홈쇼핑 업계에서 약 9년을 보내고, 불쑥 편집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 엉뚱한 진로이탈의 이유는 한 가지였다. 이제 더 이상 소통이 주 업무인 일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송출부터 방송 MD, 그리고 뒤이어 맡은 편성까지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일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그 안에서 어울리고 부딪치며 많은 걸 배웠지만 사람 속에서 나는 피어나기보다 시들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걸 일상의 생기를 잃으며 깨달았다. 상황과 사람에 예민하게 반응해 쉽게 지치는 은둔내향적 기질은 노력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결국, 에너지가 방전된 내향형 인간은 딱 두 가지 조건만을 생각하며 방향을 틀고 만다.

하나, 혼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것.

둘, 글쓰기와 연계될 수 있는 기술을 배울 것.



그렇게 프리랜서 가능성도 있고, 출판 인쇄와도 맞닿아 있는 편집디자이너라는 새 직업을 얻었다.

새로운 직무로 일한 지 어느덧 1년 하고도 4개월. 2024년은 나조차도 낯선 직업과 서먹한 근무 환경을 경험한 해였다. 시니어급 나이에 자발적으로 주니어가 되어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던 해이기도 하다. 덕분에 올해는 '일'에 있어서 할 말이 많다.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무모했던 선택은 과연 나를 어디로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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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디자이너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



새 일이 준 보람에 관하여

소규모 인쇄소에 디자이너로 처음 출근한 날, 엑셀이 아니라 어도비 프로그램부터 실행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떤 디자인 요청이 올까 긴장하며 일러스트의 첫 화면을 바라보았던 그 순간. 아마 그때 내 얼굴은 아주 많은 감정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여정을 막 떠나 만감이 교차했던 그날만큼이나 나를 흥분시켰던 사건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나의 디자인에 처음으로 호의적인 피드백을 들었을 때다.



직원을 믿고 업무를 과감히 일임하는 사장 덕에 입사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20페이지 브로셔 디자인을 맡은 적이 있다. 나에게 주어진 첫 디자인 프로젝트나 다름없었는데,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던 것인지 업체 담당자가 젠틀하셔서 첫 시안을 보낼 때부터 구체적인 피드백과 다정한 답신을 받았다. 더구나 작업 막바지에는 메일과 문자로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보내오시기도 했다.



사실 지금 와서 그때의 브로셔를 펼쳐보면 여백이나 폰트 크기나 여러모로 완성도가 떨어져 혼자 얼굴이 벌게지곤 하는데, 그럼에도 새로운 세계에 갓 입문한 내가 친절한 고객을 만난 건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의 보람이 이런 거구나를 생각보다 이르게 실감할 수도 있었고, 따뜻한 언어로 독려해 준 한 사람 덕분에 타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기쁨을 충분히 누릴 수도 있었으니까 :)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맡은 포스팅 업무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아니지만 개인 블로그에 기록했던 경험이 있기도 하고 일로써 글쓰기를 이어가면 좋을 것 같아 회사 블로그를 운영해 보겠다고 자원했는데, 생각보다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 하나의 포스팅이 조회 수 2,000을 넘기는 것을 시작으로 고객 견적 문의가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블로그보고 연락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메일이나 카톡 문의가 올 때마다 내심 흐뭇했다. 작게나마 회사에 기여했다는 실감이 났고 동시에 회사 밖에서 활용할 만한 재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면 영업직과 디자이너의 보람은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홈쇼핑 업계에서 MD나 지원(편성) 업무를 할 땐 다양한 유관 부서와 함께 하나의 결과물(방송영상)을 만들고 특정 숫자를 달성했을 때(목표매출 도달) 보람을 느꼈다면, 디자이너로서의 만족감은 좀 더 독립적인 성취에 가깝다. 미적인 작업과 포스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주도적으로 완성해야 하다 보니 무언가를 마친 성취감과 자신감을 홀로 누리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디자인을 배울 땐 내게 디자인 감각이 과연 있을까 의문스러웠는데 실무를 경험해 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같은 은둔내향인은 협업의 기쁨보다 몰입을 통해 독립적인 보람을 느낄 때 일의 능률이 더 높아진다는 사실말이다. 2024년은 그걸 발견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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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이 서늘했던 단순편집업무와
등골이 오싹했던 인쇄사고경험



새 일이 준 실망에 관하여

반면에 인쇄물 제조의 끝단에서 발생하는 일을 겪었던 건 올해 가장 진땀 나는 일이었다. 이를 테면, 누군가가 해놓은 디자인 파일을 단순히 인쇄용으로 변환하는 작업이나 인쇄 오류에 대한 컴플레인을 응대해야 했던 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내 업무의 비율을 따지자면, 디자인 시안을 직접 작업하는 비율이 4, 고객사로부터 전달받은 완성 디자인을 인쇄용으로 바꾸는 작업이 6 정도인데 대부분의 문제는 이 60%에서 발생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파일 용량 때문에 1/10 크기로 작업된 원본 디자인을 사이즈만 크게 키웠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모든 개체의 선굵기가 얇아진다거나 분명 재차 검수를 했던 디자인인데도 모니터상에서 발견하지 못한 결함이 출력되는 식. 프린트된 종이에서 뒤늦게 인쇄 오류를 발견할 때의 감정은... 아찔함을 넘어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힘들었던 순간을 한 가지 더 꼽아보면, 단순 편집 업무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고객보다 기업 고객이 많은 회사의 속성일 텐데, 특정 시즌에 따라 정해진 정보를 단순히 배치하는 업무가 한 번에 몰린다는 것을 시큰한 눈과 뻐근한 어깨로 아프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채용 시즌이나 사무실을 이전한 고객사는 반드시 대량 명함 의뢰가 들어오는데, 수백 명의 명함을 제작하는 과정은 디자인보다는 정보 교체를 기계적으로 하는 반복작업에 가까웠다. 다행히 어도비 인디자인의 우수한 기능(데이터 병합) 덕분에 대량의 텍스트를 원하는 영역에 일괄로 적용할 수 있었지만, 완료된 시안을 일일이 검수하고 추가 명단들을 챙기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디자이너의 몫이었다.



이러한 업무는 일정한 단계대로 이루어지므로 손에 익으면 작업 속도를 빠르게 개선할 수 있지만, 나는 이 반복편집과정이 유독 힘들었다. 꼼꼼함만을 필요로 하는 단조로운 작업은 다른 누군가로 쉽게 대체될 수 있고 디자인 역량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업을 마친 뒤엔 늘 소진되었다고 느꼈다.














결국 단서는
일에 있다고 믿어서



오래 몸담았던 일터와 손에 익은 직무를 놓고 구태여 낯선 길로 간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의 답변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다. '지속 가능한 일을 찾고 싶어서'

그러고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나의 직장인 자아는 뜻 모를 갈증에 허덕이곤 했다.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안정이라는 물을 계속해서 마셔도 어쩐지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 취직이 또래보다 늦어 그 물을 얻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힘겹게 얻어내도 버석하게 말라가는 내 몸에 수분은 좀처럼 흡수되지 못했다. 아마도 당시의 일이 오로지 생업으로서만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결국, 갈증을 해소할 단서는 일에 있다고 믿었다. 밥벌이라서 버티는 일, 계량화할 수 있는 목표만 좇는 일 말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적 만족감이 커질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된 지금이 예전보다 더 나아졌는가? 이렇게 자문해 보면 애석하게도 그건 또 아니다. 혼자 떠난 자들이 으레 그렇듯 예상치 않은 사건 속에서 경이와 불안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2024년만 해도 그렇다. 내가 자원해서 회사 블로그를 운영할지, 또 수백 명의 명함을 제작하게 될지 퇴사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아직 글쓰기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문득, 퇴사를 고민했던 시기의 내가 다시 떠오른다. 무모한 탈선의 결과로 평온했던 삶이 곤두박질칠까 두려웠던 때. 그 우려 때문인지 직업을 바꾼 뒤 실제로 직급도, 급여도, 근무조건도 모두 나빠지고 말았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대신 몰두의 기쁨만큼은 진하게 누릴 수 있었다. 더불어 홀로 완성한 디자인을 묘한 미소로 응시하는 시간도 늘었고. 그렇다 해도 외부적인 조건은 좋아진 게 없으니 현재 나는 추락 중인 걸까?





좋아진 것과 나빠진 것, 보람되었던 일과 실망스러운 일, 외적인 조건과 내적인 만족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일 년을 보내고 나니 한 가지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저울질은 변화를 원하는 이의 숙명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저울의 기울기는 내가 어디에 가중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2025년에도 어김없이 새 일로 인해 보람과 실망을 반복할 테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며 마음의 수평을 잘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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