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자리를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없다.
답장을 하기 전, 윤슬님이 전해 준 위의 문장을 오래 발음해 봤어요. 위로이자 격려의 메시지로 참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다이어리에 옮겨 적으면서 오늘이 바로 그 '새로운 풍경'이 아닐까 싶어 한번 기록해 보았어요.
제가 ‘잠을 잘 잤네’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건 바로 알람이 울리지 않고 일어났을 때예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죠. 스르륵 눈꺼풀이 떠진 후 시계를 보니 일어나기로 한 시간보다 10분 이른 시각이더군요. 그게 뭐라고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어요. 어제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무리를 해 시들해진 몸으로 이불 속에 들어갔었는데 단잠 하나로 말끔히 회복한 거였죠. 그때 제 몸이 빛을 낼 수 있다면 분명 완충된 휴대폰처럼 초록불이 들어왔을 거예요.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스트레칭을 한 후 아침 루틴을 하나씩 소화했어요. 기분 좋은 문장으로만 채워진 모닝 페이지를 쓰고 영양제와 물 한잔을 가볍게 마셨죠. 그리고 다시 침대에 엎드려 오늘 할 일을 적어나가기 시작했어요. '브런치 글 하나를 발행하고 블로그 포스팅과 다 떨어진 생필품을 사는 것.' 사소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어쩐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더군요.
겨우 다섯 개의 일정을 쓰고는 잠시 조용한 아침을 응시했어요. 2년이 다다르게 있었던 자취방인데 평일의 아침이 이렇게 고요하다는 게 낯설더라고요. 그 생경한 감각이 좋아 방안을 잠시 지켜보았죠. 그러면서 새삼 놀랐어요. 여유 있게 무엇을 지켜볼 수 있을 만큼 제 심리상태가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지난주 내내 저를 괴롭혔던 불안이 약의 힘을 빌리지 않았는데도 옅어졌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깊이 느꼈어요. 깨끗한 에너지가 채워진 것 같았죠. 그제야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충전된 몸과 마음으로 제일 먼저 한 건 독서였어요. 읽다 멈춘 <마음 쓰는 밤>을 다시 펼쳐 들었죠.
한 문장 한 문장이 정말 귀했어요. 이상하지만 빠르게 읽기 싫은 책이에요. 힘주어 밑즐을 긋고,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내 생각과 감정도 페이지 구석에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책. 그래야 읽는 것 같았어요. 책을 입에 넣고 녹이듯 천천히 읽다가 ‘마음은 편지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시 윤슬님이 떠오르더군요. 따뜻한 편지를 동봉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해준 그 마음이 다시 기억난거죠.
선물 받은 이는 시간이 흘러도 반가울 것이다. 기쁠 것이다. 책 사이에 끼워둔 봄의 벚꽃과 가을의 은행잎처럼, 꺼내 읽을 때마다 당신을 발견하고 떠올릴 테니까. 마음은 오래 그곳에 남아 살아간다.
고수리 작가님의 말처럼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기뻐요. 그 기쁨을 오래 누리고 싶어서 밑줄 그은 문장들을 반복해 읽고 싶기도 하고요. 몰랐는데, 책 선물을 받는다는 건 감사의 여운이 참 긴 것 같아요 :) 윤슬님이 바다를 마주하고 느낀 뭉클함도 이와 비슷했을까요? 바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저는 시야가 환해졌는데, 제주를 닮은 삼척의 풍경들이 윤슬님의 마음을 꽉 채웠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잠시 동네 산책을 다녀온 후, 다시 수면잠옷을 입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마치 익숙한 장소에서 새로운 풍경을 본 것처럼. 처음으로 누리는 '계획한 휴식'이라 매우 짜릿한데 아마 이 감정의 농도도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겠죠? 분명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오늘 하루 충만히 쉴 수 있음에 집중해보려고요. 스스로 쉼표를 찍은 의미는 그런 몰입 속에서 나올 거라 믿으면서.
11월은 이 믿음을 지켜 가볼게요.
윤슬님의 근황도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