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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Mar 19. 2021

추억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27년 만에 부모님과 런던 여행

우리 가족은 1989년에서 1993년까지 만 4년을 영국 런던에서 살았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어린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런던은 나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매년 수차례 더블린 출장을 갈 때 런던을 꼭 들렀다. 15년이 지난 후에 방문한 런던은 분명 많이 달라졌지만 낯설지 않았다. 지도를 보지 않고 정처 없이 쏘다녀도 불안하지 않았다. 매년 한두 차례 런던을 들러 그리움을 반가움으로, 다시 아쉬움으로 떠났다. (떠날 날이 다가오면 길거리 아무나 붙잡고 결혼해 달라고 할까 농담하곤 했는데, 외국인도 많으니 여권을 꼭 확인한 다음에 결혼하라고 친구가 신신당부했다.)


런던행 항공편을 기다리는 게이트에서부터 가슴이 뛰는 나와 달리 우리 가족은 그 뒤로 런던을 방문한 적이 없다. 회사일로 사시사철 바쁜 아빠, 신경성 위염으로 집을 떠나면 십중팔구 체해서 고생하는 엄마, '넌 런던이 왜 그렇게 좋니?' 신기해하는 언니. 처음 몇 년은 동행 의사를 물었지만 매번 생각 없다는 답변을 들어 묻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러다 2018년 더블린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다시 진지하게 엄마 아빠에게 놀러오라고 권했다. 


국빈 방문

그렇게 부모님은 런던 여행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2019년 7월 중 아빠가 휴가 내기 적당한 날짜를 정해 마일리지로 아시아나 비즈니스 스마티움을 예약했다. 그동안 수많은 출장으로 착실하게 쌓은 스타얼라이언스 마일리지 중 25만 마일을 이렇게 보람차게 썼다. (돌아올 때 갑자기 생긴 출장으로 공교롭게 같은 항공편으로 귀국하게 됐는데 난 회사 돈으로 꼬리칸에 타고 왔다.) 


날짜를 꼽아보니 두 분은 27년 만에 방문하는 거였다. 여행을 거의 다니지 않으니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숙소는 대영박물관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해 두었다. 피곤할 게 분명한데 잠이라도 편하게 주무셔야 한다는 생각에 방 3개, 화장실 2개짜리로. 


7월이 다가올수록 압박감이 느껴졌다. 수십 년만에 다시 찾은 런던,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런던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즐기실 수 있을까. 부모님이 도착하는 일정보다 일주일 전에 런던에 가서 답사를 하기로 했다. 나의 아저씨네 집에 머물며 갈만한 곳을 탐색했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 등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시는 편이라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든 다 좋은 무던한 스타일도 아니다.) 식당을 고를 때 맛은 물론이고 분위기와 서비스도 신경써야 해서 직접 가봤다. 너무 시끄러울 수도 있으니 사진이나 리뷰만으로는 부족했다. 길을 헤매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60대 후반의 부모님을 모시고 삽질하고 싶지 않아 Windsor Castle도 미리 다녀왔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숨이 가빠오는 것 같아 한국에 계신 상담 선생님에게 SOS를 쳐서 행아웃으로 상담도 받았다. 작은 일도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크게 실망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사서 걱정하는 성격에 부모님에게 최고의 시간을 선사하고 싶은 욕심이 더해져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다. 이걸 인지하면서도 결국 여행 중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부모님 앞에서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부모님은 늦은 오후 도착 예정(OZ 521)이었고 에어비앤비 체크인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해 미리 들어가 상태를 살폈다. 서양 사람들의 깨끗함의 기준이 우리와는 다르기에 미리 준비해간 테이프 클리너로 청소를 더 하고 근처 M&S에 들러 생수와 휴지, 과일을 샀다. 아침식사용으로 Chinatown Bakery에서 단팥빵, 땅콩크림빵 등을 사다 뒀다.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무슨 의전 하냐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주지지 않은 압박과 부담을 느끼며 부모님을 맞이하러 히드로 공항을 향했다. 


1. 미리 준비한 (그대로 이행하진 않은) 여행 일정


추억 꺼내보기

엄마 아빠가 오면 우리가 살던 동네에 꼭 가고 싶었다. 30년 전이니까 두 분이 딱 내 나이일 때다. 지금 나는 내 몸 하나 끌고 와서 사는 데도 힘겨운데, 정보도 부족하고 영어도 부족했을 시절 아이 둘을 데리고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새삼 죄송하고 감사하다. 덕분에 나는 학창시절 영어 공부를 1도 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렸고,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영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으리라. (일단 영어가 안 돼 내 인생에 구글과 에어비앤비는 없었을 듯.)

 

셋째날 Tottenham Court Road Station에서 Northern Line(런던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검정색 노선)을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2. 템즈강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이 서울과 뒤바뀐 런던에서 한인타운이 있는 뉴몰든은 상계동, 의정부 정도 되겠다.


Modern Station에서 내려 우리 집이 있는 Kenley Road를 향해 걸었다. 예전에 와봤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30년 만에 걷는 그 길은 감회가 달랐다. 옆집 사람들 이야기, 공터에서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 탔던 이야기, 뒷문으로 나있는 샛길로 가면 Safeway 수퍼마켓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어 카트를 끌고 뒷길로 다녔던 이야기 등 추억 보따리를 풀어제꼈다. 반가운 마음에 도로표지판과 집 앞에서 사진도 마구 찍어댔다.


다음으로 Poplar Primary School에 들렀다. 알파벳도 모른 채 학교에 갔을 때 엄마는 딱 두 문장만 가르쳐줬다. "I can't speak English", "Where is the toilet?" 친구들과 금새 친해져 좋은 추억이 너무나 많은 학교인지라 며칠 전에 미리 이메일을 보내 학교 구경을 허락 받았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니 교장 선생님이 반겨주며 당시 있었던 선생님들의 근황을 알려주고 시설이 어떻게 바꼈는지 학교 내부도 구경시켜줬다. 


추억놀이의 마지막은 Confucius(콩푸셔스). 동네 중국집으로 한 달에 한 번은 가서 먹을 만큼 좋아한 집이다. 저녁 시간이 다 돼도 전화를 받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 있어 좌절했다. 어떡하지? 그냥 숙소로 돌아갈까 하던 차에 뒤늦게 문을 열어 마음을 쓸어내렸다. 오래 돼서 허름한 몰골이었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아쉬운 점은 Fried Frog Legs가 메뉴에서 사라졌다는 것. 우리가 자주 시켰던 Egg-battered Prawns도 안 보였지만 이야기하니 만들어줬다. 


3. 추억의 길 Kenley Road    4. 우리집 단골 중국집 Confucius    5. 특별히 만들어준 Egg-battered Prawns


추억 업데이트


6. Regents Park에서 아빠 엄마와 산책 중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일정이 아쉬웠지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 쉽지는 않아 마지막 날에는 쉬고 싶은 마음도 컸다. 게다가 런던에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나도 함께 마침 한국 출장을 가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함께 귀국했다. 


최고의 시간을 선사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달리 부모님은 꼭 가야 하는 곳,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기보다 나와 함께 추억의 장소를 다시 방문하는 것만으로 좋으셨다고. 역시 자식이 부모를 위하는 마음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의 손톱만큼도 따라갈 수 없나보다. 


코로나 시대에 돌이켜보니 2019년에 다녀온 게 신의 한 수였다. 홀로 런던에 있는 지금,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더 생겼다. 다시 함께 부모님과 런던을 오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30년 전의 추억에 최신 업그레이드를 추가해 뿌듯하고 든든하다. 


추억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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