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두 번째 단편집
이미 몇십 년간 사람들은 몸에 장착한 개인 카메라로 자기 삶 전체를 기록하는 라이프로그를 유지해왔다. 라이프로그는 완벽에 가까운 앨범이지만 다른 앨범과 마찬가지로 그냥 묻혀 있었다. 웨스톤 사에서 신종 검색 툴 리멤(Remem)을 출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리멤은 최첨단 알고리즘으로 사용자가 키워드를 말하는 순간 과거의 사건을 검색해 영상을 불러온다. 이 작품은 리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취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하고 있다.
『숨』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실현가능한 세상을 그리며 우리 삶의 가치와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의 기억은 왜곡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수치심과 죄책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억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며 방어기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사건을 겪은 두 사람이 다른 기억을 가지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각자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 이유다. 부부 사이의 작은 다툼까지도 비디오 판독을 돌려보듯 잘잘못을 정확히 가릴 수 있게 하는 기술이 과연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까?
어린 시절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 또 하나는 거실 양탄자 위에서 장난감 차를 밀면서 놀고 있고, 곁에서 할머니가 재봉틀을 돌리는 장면이다. 할머니는 이따금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따스하게 웃어 보인다. 그 순간을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기 때문에 그 기억은 나만의 것,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 나의 기억에 할머니와의 오후가 두드러지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그 기억과 결부된 나의 감정들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광경을 찍은 동영상을 통해 할머니의 미소는 사실 건성에 불과했고, 실은 재봉틀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짜증이 나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게 그 기억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내게 안기는 행복감 때문이다. 그것을 위태롭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 어린 시절 전체를 연속적으로 찍은 동영상에는 사실들은 가득하겠지만, 감정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의 두 번째 축을 이루는 건 티브족의 이야기다. 선교사인 모스비는 성경 말씀이 적힌 종이를 가져가 티브족에게 선교활동을 하며 동시에 문자를 전한다. 티브족의 지징기는 글쓰는 연습을 하며 글과 기록이라는 게 뭔지 터득한다. 매달 한 번씩 열리는 티브족의 부족 법정에서는 증인만 선서를 한다. 모스비는 원고와 피고에게 선서를 시키지 않아 그들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데 이에 지징기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우리 언어에는 당신 언어의 '사실'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어떤 일이 옳을 때는 '미미'라고 하고, 정확할 때는 '보우'라고 합니다. 분쟁이 벌어지면 당사자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합니다. '미미'를 말하는 거죠. 하지만 증인들은 정확히 사실 그대로를 말할 것을 선서하기 때문에 '보우'를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을 때, 사베는 어떤 행동이 모두를 위한 '미미'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미미'를 말하는 한, 그들이 '보우'를 말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보우'만이 항상 옳은가. 살아오면서 '보우'를 전하는 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은 경우를 겪어봤을 것이다. 티브족의 지혜와 리멤 기술에 대한 주인공의 의구심과 경험이 맞물려 근본적인 의문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천문대의 전파망원경과 함께 전시된 영상에 자막으로 실린 글로 멸종위기의 푸에르토리코 앵무새의 독백이다. '거대한 침묵'은 다른 말로 '페르미의 역설'이라고도 하는데, 이 광활한 우주에서 왜 아직 다른 지적 생명체를 찾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왜 바로 곁에 존재하는, 인간의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앵무새라는 종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우리는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 이외의 종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찾고 있는 존재는 바로 우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