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 뭐라고
5월 17일 월요일, 기다리고 기다린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런던에 입성한 1월부터 목빠지게 기다린 백신이었는데 딱 차례가 왔을 때 하필 감기 기운으로 열감이 며칠 이어져 예약을 미루고 전전긍긍 했다. 사실 내 동거인 유진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40년 가까이 조용하게 잘 붙어있던 맹장이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내 5월 12일 새벽 3시에 응급실로 달려가는(기어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살아온 수많은 날들 중 하필 지금, 영국 유학 중인 1년도 채 안 되는 시점을 골라 말썽을 부린 것도 어이없는데 수술 당일 딱 맞춰서 백신 예약 문자가 왔다. 수술한 유진이는 2주는 더 기다려야 맞을 수 있다. 신체 일부를 영원히 런던에 남기게 된 사연은 유진이가 직접 서술하리라.
수술 받고 퇴원한 유진이가 하루종일 방에서 쉬는 건 당연한 건데, 간호할 줄 알았던 내가 감기인지 코로나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실내에서 마스크 쓰고 밥도 같이 안 먹고 각자 방콕의 며칠을 보냈다. 백신 예약을 한 번 미뤘는데도 나을 기미가 없어 그냥 맞아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백신을 맞고 나니 몸이 좀 나은 것 같은... 결국 빨리 나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더 골골댄 것.
2020년 말에서 2021년 초까지 영국의 코로나 상황이 인구 대비로 치면 거의 세계 최악이었고 우리나라처럼 확진자 감염경로 등을 추적하는 건 꿈도 못 꿀 상황이라 백신을 하루빨리 접종하는 것 외엔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백신을 개발한 제약회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차와 2차 접종 간격을 권장 기간인 3주에서 12주로 늘여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1차 접종이라도 받을 수 있게 시행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오히려 1차와 2차 접종 간격을 늘인 게 항체 형성에는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논문이 하나둘씩 발표되고 있다.
영국은 백신 우선접종 순위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공격적으로 백신을 공급했다. 우선순위 9개 집단 중 1-4순위 집단이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80%를 차지하고 9순위 집단 내에서 대부분의 사망자가 나오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이들에게 1차 접종을 완료하는 게 목표였다.
1. 요양원 거주 노인과 종사자
2. 80세 이상 고령자와 의료·사회보건 종사자
3. 75세 이상 고령자
4. 70세 이상과 기저질환으로 인한 취약계층
5. 65세 이상
6. 16-64세 만성질환자
7. 60세 이상
8. 55세 이상
9. 50세 이상
5월 중순인 지금 성인의 70%가 1차 접종을 완료한 상태이며 한때 하루 2천명 가까이 나오던 사망자 수는 현재 한자릿수다.
백신을 맞은 당일에는 홀가분한 마음에 오히려 컨디션이 좋았고 다음날 아침 주사를 맞은 왼쪽 팔뚝이 아픈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기운이 없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지만 백신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팔과 배 쪽에 두드러기가 났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음식 때문에 두드러기가 나곤 해서 역시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단지 보통은 하루 정도면 두드러기가 가라앉는데 5일째인 오늘도 여전하다. 화이자 백신 안내서에 다양한 부작용이 나열되어 있는데 두드러기는 없다.
이제 언제쯤 술을 마셔도 되나 호시탐탐 날짜만 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