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기록하는 일
아이가 8개월쯤 되었을까.
100일이 지나면 기적을 본다는 건, 남의 집 아이 이야기였다.
아이는 정말 2시간 단위로 매우 심하게 울었다. (심지어 두 돌이 지난 지금도 밤잠을 자주 깬다.) 그때마다 분유를 먹었고, 총 먹어야 할 정량보다 어떤 날은 많이 먹었던 날도 있었다. 아이의 뱃고래가 태어날 때부터 컸다는 걸 29개월인 지금에서야 인정하지만, 그때는 이렇게 달란다고 먹여도 되나 싶어서 걱정이었다. 그러니 내 수면시간이 단 하루라도 깊게 잠들어 "아, 잘 잤다" 하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은 손에 꼽았다. 아이가 일어나면 오히려 친정엄마의 도움의 손길과, 남편의 가사노동 분배로 쉴 수 있었다. 일하러 가는 남편을 위해 조금이라도 푹 잘 수 있도록 방을 분리시켰고, 온전히 새벽의 돌봄은 나의 몫이었다.
그때 적어두었던 일기장들을 살펴보면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나' '아이가 잠자리가 불편해서 자주 깨고 우는 걸까?' '꿀잠 아이템은 이거라는데, 사서 써볼까' 하는 이야기들 뿐이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늘 자리 잡고 있었던 생각 한 가지.
" 도대체 내 시간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HRmanagement 일을 하면서 늘 조직 구성원들의 시간과 비례되는 생산성 향상에 관심이 많았다. 업무의 연관으로 나를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의 시간을 보내는지 늘 궁금했다.
“ 저분은 분명 아이가 셋이라고 하셨는데, 매일 9시까지 야근을 하시네, 아이는 누가 봐주고 있을까?”
“ 미혼이라고 들었는데, 왜 매일 아침마다 복사기 앞에서 졸고 있는 걸까?”
나 역시도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내 시간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예측 가능했던 모든 일들에 불확실한 사건들이 동반했다. 내 아이는 이맘때쯤에는 통잠 잔다는 다른 아이와 달리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통잠은커녕 토막잠도 모잘라 새벽에 수시로 깨어 통곡을 했다. 잠을 못 자니 매일 아침이 푸석하고 기운이 없었다.
머리는 늘 어지러웠고, 어느덧 정신이 드는 건 11시 정도 되어야 내 패턴을 찾았다. 계획했던 오전 시간들의 생산성이 떨어졌고, 아이를 향한 돌봄의 기술과 애정도 쉽게 짜증과 뒤섞였다. 하루의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 나만의 시간을 갖아보려고 했지만 쉽게 시간이 찾아지질 않았다. 한두 시간, 밖에 나가서 커피를 마시던지, 걷던지 하면서 좀 쉬어보라는 친정엄마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를 위한 시간은 아예 기억조차 나질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먹이는데 동반되는 가사노동, 아이를 돌봄으로 들어가는 시간들로 꽉 채워졌었다.
“애가 어릴 때는 다 이렇지 뭐” 하고 넘어가는 한마디로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분명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던 날, 남편이 집에서 근무하며 아이를 함께 돌봐준 날, 친정엄마의 값을 매길 수 없는 노동으로 나를 위해 쓸 수 있던 시간들이 있었음에도 무얼 하느라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그래서 시간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시간을 기록해서 내가 겪는 자잘한 일상들을 모두 기억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 시간을 추적하고 다듬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히려 회사 다닐 때는 시간이 단조로웠다. 계획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요일마다 정해진 미팅 일정이 있었고, 업무의 데드라인이 정해졌었다. 그 일정에 맞추어 내 시간을 끼워 넣었다. 내가 내 시간을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통제자가 아니었다. 출근시간까지 도착하려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간단한 미팅을 처리하고 식사하고 나면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간도 정형화되어 있었다. 같은 시간 내 얼마나 업무 생산성을 높일지를 고민했었지, 내 시간의 주체로써 관리하려는 경험은 없었다. 주말에는 주중의 반복되는 일과가 지쳐, 하루가 40시간인 사람처럼 늘어졌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돌봄으로써 새롭게 펼쳐진 시간 앞에서 나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 이건 마치,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먹어두고 감량 목표로 잡은 몸무게 수치도 정해두지 않고 무작정 굶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적어도 하루에 들어가는 음식의 칼로리는 알고 있어야, 적정량보다 굶던지 덜먹던지 할 것 아닌가.
방학 계획표와 업무 일정 정리하듯이 과업을 목표로 해두고, 할 일 목록을 지우는 형식으로 시간관리를 해왔는데 변수가 많은 어린아이의 돌봄과 반복되는 가사노동이 주 업무가 되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데는 아무리 지워내도 지워지지 않은 목록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오히려 잘하려고 하면 노력할수록 수준만 높아지고 양만 늘어났다. 아이 장난감을 소독하는 청소용 소독제품, 그 안에 성분들이 안전한지 검색하는 일, 제품별 특징을 블로그로 찾아보는 일, 사용후기를 읽어보는 일, 그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제품을 고르는 일 등등.
아이를 키우면서 베이비 타임이라는 어플을 사용하며 수유, 배변 시간들을 기록했다. 남편과 공유할 수 있어서 서로 시간의 기록과 흐름으로 그다음에 도와줄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내곤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기록하고 나서 나의 시간 인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분명히 수유하고 그다음 수유까지는 2시간의 텀이 있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애벌빨래를 하고 젖병 씻고, 젖병 소독기를 통해 소독을 하고 설거지를 마무리하는데 40분은 걸린 것 같았는데 실상은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것도 격주로 1번이었으니 일주일에 3,4번 정도였다. 분유 먹이는 것만 해도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인다면서 시간 없음을 항변했는데 실상은 그 일을 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일주일에 1시간이었다. 그럼 그동안 바쁘다며 하지 못했던 일들을 처리하기 위한 내 본연의 시간은 어디로 간 걸까?
아이를 내 품에서 24개월까지는 가정보육으로 키우고 싶다는 것은 오랜 목표였고, 그 과업을 내 삶의 1순위로 놓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나의 미래를 위해 쓰이는 시간들이 줄어들고, 현재를 사는데 급급한 시간들로 채워졌다. 그런데 그 시간들 마저도 효율적인 일과 비효율적인 일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복직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들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 동안 급하지 않는 집안일을 하거나, 핸드폰을 쳐다보며 사야 할 필요가 없는 물건을 담았다. 커피 한잔 마셔야지 하면서 들여다본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있던 시간들도 많았다. 전부 합치면 하루에 무려 5시간을 전혀 비효율적인 시간들로 보내고 있었다. 나 스스로가 시간들을 꽤 많은 시간들을 목적 없이 방치해두거나, 보너스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전날 아이가 더 밤잠을 보채며 깨었던 날들은 하루의 시간 기록이 아무 의미 없을 만큼 비효율적인 날도 있었다.
그렇게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찾아내면서 시간을 추적해 나가니, 나만의 기록이 쓸모 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이어리에 시간대별로 무얼 했는지 기록하는 수준에서 구글 캘린더를 활용해 노트북과 모바일을 연동시키고, 구체적으로 무얼 했는지 적어 넣었다. 아이를 위해 성장일기도 적고, 응가한 시간과 횟수까지 기록하면서 왜 그동안 내 시간을 기록하지 않았는지 아쉬웠다.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기록을 통해 내가 원하는 수면시간, 나만의 패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심지어 집중되는 공간까지 분류가 되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쪼개고 나누어 집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관리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 인화된 시간은 어찌 되든 제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이니까.
물론 시간관리의 기록은 아이가 하루하루 성장할수록 업그레이드되었다. 적어 내려간 목록도 더 풍성해졌음은 물론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아이 엄마가 있다면, 그래서 뭘 어떻게 적었다는 것인가 궁금할 것 같다. 다음 글에는 시간 기록에 관한 글을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