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괜찮은 척해도 몸이 괜찮지 않을 때
예민이의 일상(2)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
온몸에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와 고생한 적이 있다. 학교 여름방학식날이었다. 처음에는 여름이라 땀띠가 난건가했다. 그런데 땀띠라고 하기엔 온몸을 뒤덮은 붉은 반점은 점점 커졌고, 얼굴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면 좀 나을까 했지만, 차도는 없었다. 급히 병원을 찾았고, 의사 선생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라고 했다. 주사를 맞고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았다. 약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증상이 계속되어서 다음날 추가적으로 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처방받았고, 그로부터 사나흘은 고생했던 기억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의 경우 대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더라. 당시의 나는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서의 실습을 병행하고 있었고, 논문 주제를 정하기 위해 고민하던 시기였다. 코로나 이슈로 학교에서는 날이 선 민심이 들끓었고, 그것에서 비롯된 이런저런 일들로 좌절감과 무력감에 허덕이며 꾸역꾸역 출근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대학원에서는 함께 실습을 하는 선생님들이, 학교에서는 나의 처지와 마음을 이해해 주는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힘주어 버티고 있던 마음이 한 번에 힘을 확 풀어버린 때가 아마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인듯하다. 괜찮을 거라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다독이면서 눌러왔던 스트레스가 '나 사실 여기 있었다'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날이었다.
눈에 띄게 아팠던 때를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도 같다.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2년 차 되던 해였다. 임용만 합격하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학교의 상담현장은 그야말로 황무지였고, 높았던 기대에 실망은 배가 되어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막막했다. 그러면서도 '공부한 게 아까우니까 좀 더 버텨보자'하고 다짐했었다.
격년마다 받는 국가건강검진을 받고 아무런 긴장감 없이 결과지를 살폈는데, 간수치가 정상수치의 세배쯤 된다는 이상한 결과가 적혀있었다. 그때만 해도 뭔가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걱정이나 떨리는 마음도 없었다. 단지 이 찝찝한 오류를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으로 동네병원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어두운 검사실에 누워있을 때만 해도 초음파를 보는 의사 선생님의 분주한 손놀림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간에 7센티미터가 넘는 혹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소견서를 써줄테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큰 병원에 가보라니... 너무 무서운 말이 아닌가.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색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학병원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들은 결과는, 다행히 간에 있는 것은 양성종양인데 이 또한 명백히 밝혀진 원인이 없단다. 양성이기는 하지만 종양의 크기가 커서 추적검사가 필요하고, 계속 종양이 커진다면 그때는 간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도 매년 봄에 대학병원에 가서 추적검사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면 작게는 얼굴에 뾰루지, 좀 크게는 몸의 각종 염증으로 나타난다. 마음은 괜찮은 척 해도, 몸은 너무 솔직해서 '스트레스 여기 있거든!' 하고 한 번씩 알려주는 것 같다. 장수가 꿈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로 병 걸려서 일찍 죽고 싶지는 않은데 예민함과 스트레스는 아주 친한 사이라 멀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