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민이의 일상(3)완벽주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게 되도록 나는 아니었으면 싶다. 이 비합리적이고 환상에 가까운 기대가 마치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을 껄끄럽게 한다.
작년 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논문이 학회지에 게재되어 집에 도착했다. 기분 좋게 들여다보는데 첫 장부터 어이없는 오타를 발견했다. 그동안 수정을 몇 번이나 했는데 첫 장부터 오타라니, 허탈했다. 그동안 들인 노력이 그 한 글자 때문에 깎아내려지는 기분이었다. 내용의 완성도는 내가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던 이런 사소한 실수가 내 결과물에 스크래치를 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동안의 노력과 결과에 대한 뿌듯함보다는 그 오타 한 글자가 주는 실망감과 허탈함이 더 컸다.
내 일의 결과가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충분히 잘했다고 해도 괜찮지가 않다. 심리상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진 내담아동을 만난 적이 있다. 병원에서의 치료도 필요했고, 특수교육적 개입도 필요했고, 복지분야에서의 개입도 필요한 사례였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라 병원치료나 특수교육 같은 조치를 취하려면 부모의 동의와 협조가 필요한데, 아동의 부모는 어떤 것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부모를 설득해서 병원치료, 특수교육, 복지 개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도움받을 수 있는 외부기관을 알아보고, 부모 설득을 위한 객관적 자료를 준비했다. 어렵게 만난 부모에게 현재 아동이 가진 어려움과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상담자로서의 소견을 이야기하고, 기관 연계를 위한 방법을 안내했다.
그러나 준비한 자료는 부모 손에 공중에 날려졌고, 내 목소리는 그저 허공에서 의미없이 사라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아이의 담임교사, 경찰, 지역사회 공무원 등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아이가 필요한 치료도 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내 일의 실패로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네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이 찝찝하고 씁쓸했다.
예전보다는 덜하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완벽히'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고, 노력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격려하기보다는 어쨌거나 실패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질책한다. 이건 아무래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의 태도는 아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는 걸 머리로만이 아니라 진정 마음으로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조금 느슨해질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오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