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마스크를 보호자가 먼저 착용하는 이유

내가 살아야 살릴 수 있다

by 히예

비행기에 타면 이륙에 앞서 안전교육을 한다. 그 내용 중에 위급상황시 보호자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그 후에 아동의 산소마스크 착용을 도우라는 내용이 있다. 위급상황에서 어른이 아이보다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아이를 살리겠다고 아이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씌우다가 의식을 잃어버리면 아이는 보호자를 잃게 될 수도 있고, 산소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아이가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양육에서의 위급상황도 마찬가지다. 보호자가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면 아이를 도울 수 없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한 엄마를 만난 적이 있다. 아이의 우울이 걱정된다면서 상담실에 찾아왔지만, 정작 본인의 병에 대한 치료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공황증상이 와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제야 병원에 가는 정도였다. 그녀는 공황증상이 또 올까 불안해했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절절했지만, 그녀는 아이를 도울 수 없었다. 그녀의 공황장애가 불쑥불쑥 방해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감히 상상해 보건대, 그녀에게는 자신의 공황장애보다 아이의 우울이 더 커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이는 병원이며 상담실이며 데리고 다니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돌봄은 엉성했으리라.


누군가는 '아이가 힘든 상황에서 부모 스스로를 돌볼 새가 어디 있겠냐'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를 키워낸다는 것은 최소 20년은 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숨을 꾹 참은 채로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위급상황에 빠진 아이를 제대로 돕고 싶다면 부모가 도울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부모 자신의 아픔은 돌보지 않은 채 아이만을 위해 병원이며 상담실에 다닌다 한들, 아이의 안전기지인 부모가 튼튼하게 버티고 있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아이는 다시 위기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아이의 아픔을 고치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도 부모 자신의 아픔을 돌보는 데 쓰기를 바란다. 그것이 부모라는 안전기지를 튼튼히 하는 방법이자, 애써 좋아진 아이를 다시 되돌아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야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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