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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혜미 Jan 17. 2021

1- 6 해외에서의 삶과 경험을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

자신과 평생 동안 대화하고 싶다면  

1- 6 해외에서의 삶과 경험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과 평생 동안 대화하고 싶다면

 

 주재원으로 이루어진 한인사회가 주류를 이루는 싱가포르에 10년이 넘는 기간을 거주하면서 친분을 쌓아온 지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주어진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매년 한국을 방문할 때면 그들과 만나 싱가포르 싱가포르에서 함께 했던 추억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누려왔었다.


 그들이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막 귀국했을 때는 싱가포르에서의 좋았던 기억들을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뒤에는 그들의 뇌리 속에 싱가포르의 추억들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생물학적 현상으로 우리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기억의 한계가 있음을 현실적으로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 또한 뉴질랜드에서 살았던 10년간의 기억이 싱가포르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경험을 했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무의미한 삶을 산 것 같아서 허무하다”는 얘길 가끔 듣게 되었다.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지난 삶의 여정 가운데 기록과 감상 혹은 감정들을 표현 해 놓은 자료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삶 가운데 의미를 느꼈던 소중한 순간들 결코 없지는 않았을 텐데 진정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행복했던 감정들은 망각 속에 사라지고 사건 위주의  희미한 기억의 편린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첫 해외생활에서 겪었던 색다른 경험들을  틈틈이 기록한 메모장과 노트를 가지고 있었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사라져 가는 기억들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래도 더 많은 기록들을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왜냐하면 누구나 세월이 흐르면 기억은 점점 흐려지기 마련이고 그때 느꼈던 감정은 물론 시점과 장소마저도 아련해지기에 좀 더  젊을 때 많은 것들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공허한 노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와 오랫동안 아니 평생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은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된다. 예를 들자면 아이가 낯선 외국 학교에 입학했던 첫 순간의 느낌들, 처음 볼 파티를 갈 때 함께 엄마와 딸이 드레스를 사러 가면서 나누었던 대화들, 아이가 외국인 이성친구를 처음 사귀면서 인사를 시켰을 때 부모의 입장에서 느꼈던 묘한(?) 감정들, 혹은 아이가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왔을 때나 혹은 행사 무대에서 연주를 할 때 느꼈던 뿌듯했던 감정들을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면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해도 그 순간의 생생한 느낌을 생생하게 또 구체적으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년에 찾아드는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리기보다는 의미 있었던 삶의 순간들을 추억하며, 미련 없이 다음 단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과감한 결단력을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는 아기를 키우면서 틈틈이 써왔던 육아일기가 있었다. 그 속에는 아기가 내게 주었던 작은 기쁨들이 가득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중한 기록물이 있다.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와 대화가 힘들었던 시절에, 소통을 위해 웰링턴 바닷가의 카페에서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기록했던 진로진학 다이어리가 있었다. 오랫동안 보관했던 이 공책들은 아이의 결혼식 때 의미 있는 선물로 전달되었다. 그 속에는 그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아름다웠던 추억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아이는 그 글을 읽으며 자신이 부모에게 어떠한 존재였었는지를 깨닫게 됨과 동시에 그간 자신이 부모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고 또 이해하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아이와 함께 평생 공유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있다는 것은 세대의 격차가 더 벌어져 소통이 힘든 시기가 온다고 해도 우리의 관계를 이어주는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싶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우리는 원하던 또 원하지 않던 우린 기나긴 노후를 보내게 될 것이다. 때문에 자신에 대한 풍부한 기록물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가 평생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나간 삶에 대한 충분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초년은 한국에서, 중년은 뉴질랜드와 싱가포르에서, 노년에 접어들어 호주로 은퇴이민을 감행한 나는 오늘도 새로운 곳에서의 삶의 경험과 느낌을 글로 남기고 있다. 노후에 직면할 낯선 모습의 자신과의  만남과 또 우리의  영원한 대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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