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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Feb 21. 2019

내 서점은 어디에…월세 찾아 삼만리

사실 상가 계약은 내가 어느 정도 서점 사장으로서의 소양을 갖춘 다음에 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아이 낳고 회사 다니면서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았던 터라, 천천히 공부도 하고 집안일도 좀 살피고 휴식시간도 가지면서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이었다. 정말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그런 게.. 서점을 차리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어디 좋은 상가 자리 없나' 부동산부터 자꾸 뒤적거리게 되더라. '혹시라도 좋은 자리가 나왔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채가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해서 정말 매일같이 네이버 부동산에서 우리 동네의 상가 임대 매물을 뒤지고 또 뒤졌다. (솔직히 말하면 회사를 관두기 전부터 부동산 검색을 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딴짓을 많이 한 것 같아서 뒤늦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나는 우리 동네는 상가 임대료가 쌀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도권 중에 그다지 발전되지 않은 경기도 광주이기도 하고, 심지어 행정구역상 농어촌 지역으로 분류되는 '리' 아니던가. 그런데 부동산을 알아볼수록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임대료에 기가 찼다. 내가 세상 물정을 몰랐던 건가? 요즘 상가 월세가 다 이렇게 비싼가? 이런 것도 모르고 자영업을 하겠다고 내가 회사를 관뒀던가.. 좌절 또 좌절..


그동안 내가 공부하고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동네서점을 하기에 적당한 임대료는 월 60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월 60 짜리 상가는 우리 동네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못해도 90만 원 이상이 대부분이고, 어쩌다 보이는 월 60~70만 원짜리는 10평도 안 되는 매우 작은 상가뿐이었다. 물론 10평 이하의 동네서점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서점은 도서관처럼 사람들이 편안하게 책도 읽고, 모임도 가지는 그런 곳이었기에 적어도 15평 이상은 되어야 했다.


동네에 빈 상가들도 많던데 그냥 좀 싸게 임대하면 안 되나? 억지라도 부려보고 싶었지만.. 억울하면 건물주가 되는 수밖에! 아직 건물주가 되지 못한 나는 조금 더 발품을 팔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네이버 부동산에만 의지 하지 않고 부동산에 찾아가 물어보기도 하고, 동네를 돌며 빈 상가에 붙어있는 '임대 문의' 전단지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해보기도 했다.


비교적 큰길에 있어 유동인구가 많고 찾아오기가 쉬운 곳은 작고 비쌌으며, 유동인구가 적은 곳은 평수는 적당했지만 그렇다고 싸지는 않았다. 동네 특성상 주차 여부도 매우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였는데 그런 것들을 다 만족시키는 곳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공인중개사라도 된 것처럼 동네의 상가 임대 정보는 줄줄이 꿸 정도가 되었지만, 내 서점 하나 차릴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상가 한 곳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동네에 유명한 기업형 슈퍼마켓이 입점 준비 중이었는데, 그 바로 옆 상가를 임대한다는 것이다. 평수도 20평 정도로 넉넉하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마트 옆이니 홍보효과가 컸다. 거기에 마트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까지 있으니 여기야 말로 놓쳐서는 안 될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임대료가 월 160만 원.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가격인데.. 그때는 눈에 뭐가 씌었는지 여기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임대인 측에서 동네서점보다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오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고, 그 자리와 나의 인연도 그렇게 끝났다. (아마 그 자리에 서점을 차렸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창업자금과 운영자금이 필요했을 거다.)


그렇게 상가 찾기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 온라인에서 꽤 유명한 부동산 카페에서 또 한 곳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카페이다. 나도 이미 몇 번 가본 곳이다. 내부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라 항상 한산하고 조용했던 카페..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꽤 윗동네에 위치해 있어서 (버스 종점과 가깝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지 않기에 서점 후보지에서 자연스럽게 제외시켜놓은 곳이었는데, 그 카페가 임대 매물로 나온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다시 한번 그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역시나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 매장 안에 있는 화장실도 마음에 들고, 서점에 꼭 필요한 (재고 책들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주차공간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고, 나 혼자 운영하기에 딱 적당한 평수였다. 또 서점과 카페를 같이 운영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터라, 카페 집기 전부를 양도한다는 조건도 매력적이었다. 임대료는 월 100만 원. 60만 원보다는 높았지만, 이미 160만 원짜리를 한번 탐냈던 터라 이 정도면 적당해 보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집 근처에 내가 찾던 곳이 있었다.


책장 놓기 딱 좋은 휑한 벽도 마음에 들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테라스에서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이 카페는 우리가 처음 이사 갈 집을 가족들(시댁&친정식구 모두)에게 보여주려고 왔다가 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눴던 공간이다. 그리고 이사 온 뒤에 가끔 우리 아들과 둘이서 카페 데이트를 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순간들이 마치 지금 여기에 내가 서점을 하기 위한 인연의 끈처럼 느껴졌다.


'여기가 내 자리다'라는 생각이 들자, 또 누가 채갈까 겁이 나서 바로 가계약을 했다. 그게 회사를 그만둔 지 겨우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이다. 제대로 준비된 건 하나도 없는 상태였기에 정식 임대차 계약까지는 한 달 정도의 여유를 두기로 했다. 이제 한 달 뒤부터는 월세가 시작된다.


그때부터 나는 '천천히 차근차근'할 여유가 없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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