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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밍웨이 Nov 28. 2020

사랑받고 싶었어요

채워졌다고 생각해도 늘 사랑이 고픈 사람의 고백

한 사람이 태어나서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을 수치화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사랑을 받아야 채워졌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사랑이라는 부산물로 태어나 눈을 맞추고 순수한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 엄마 그리고 아빠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모습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그럴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조각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남아있을 나이가 될 무렵 집에서는 웃는 날보다는 우는 날의 기억이 선명했다. 따스함보다는 긴장과 두려움의 색깔이 짙었다. 이런 세상에서 자라난 나의 사랑은 늘 불안했다. 한 발짝만 내밀면 짙은 어둠의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절벽에 서있는 것과 같은 위태로운 사랑을 지켜내고 채워 넣고 싶었다.

      

어릴 적 내가 아는 사랑의 형태는 칭찬이었다. 내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언가를 잘 해냈을 때 엄마는 좋아했고 나를 칭찬해주었다. 넘쳐흐르는 칭찬을 받고 싶었다. 반장이 되는 일, 운동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어달리기 계주가 되는 일, 수우미양가로 평가되는 성적표에 ‘수’로 채우는 일, 교내에서 개최한 경시대회에서 상을 타는 일을 만들어 갔었다. 사랑은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결과를 만들어야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생각했다.

     

20대에는 연인을 통해서 사랑을 채워가고 싶었었다. 혼자여서 외로웠던 순간들을 둘이라는 숫자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에 의지하였다.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는 일, 기념일을 챙기는 일,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일 등 둘만의 시간으로 채우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수록 혼자라는 불안함을 감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혼자가 되는 것에 두려움이 커졌다.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채워야 할 사랑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었다.      


30대가 된 지금 채우는 사랑이 아니라 피어나는 사랑의 주체가 되고 싶었는데 많이 멀었나 보다. 아직도 사랑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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