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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민 HEYMIN Oct 27. 2024

가짜 나와 진짜 나

이모지&이모티콘편 2

(지난 1편에 이어)




이모티콘 얘기도 해볼까?


앞에서 말한 이모지도 이모지지만, 우리의 생활을 더욱 풍부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이모티콘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이모티콘을 사는 주기가 부쩍 짧아졌다. 예전에는 왜 사나 싶었는데 언제부턴가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고, 지인이 공짜 이모티콘 링크를 보내주면 소중한 개인정보를 넘기거나 게임을 다운받거나 심리테스트로 위장한 마케팅에 기꺼이 응했다. 새로운 이모티콘을 받을 수 있다면야 그 정도 수고로움과 손실은 괜찮았다.

그러다 문득 많은 지인들이 톡방에 던지는 이모티콘이 생각보다 안 겹치는 모습이 흥미로웠고, 억대 연봉인 이모티콘 작가들 소식을 접하면 과연 '이모티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분명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의 이모티콘 세상은 미끄럼틀, 시소, 그네 정도 고를 수 있는 작은 '놀이터'였는데, 지금은 마치 회전목마, 롤러코스터 같은 순한맛 매운맛 놀이기구가 한 데 뒤섞인 널찍한 '놀이공원'으로 업그레드한 느낌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모티콘 사는 것보다 커피 한 잔 마시는게 낫다고 말하던 내가 지금은 왜 커피를 포기하고 신상 이모티콘을 사고 있을까? 왜 그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된걸까?




가성비 & 가심비

둘 다 채워주니까


이모티콘은 과자 한 봉지 값이면 영구적인 사용권을 얻는다. 유행 안 타는 템으로 잘만 고르면 정말 평생 쓸 수 있을지도? 작은 화면 안에서 나 대신 '행동', ‘기분’마음껏 표현해준다. 예를 들어 분노의 단계를 1에서 5단계로 나눈다면 각각의 단계에 어울리는 이모티콘도 나름 구분할 수 있다. 감정의 정도에 따라 꺼낼 수 있는 정교함까지 갖게 다. 이쯤 이야기했으면 이모티콘은 가성비, 가심비 모두 훌륭하다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카카오에서 내놓은 이모티콘 구독서비스 '이모티콘 플러스'. 이 서비스의 사용자는 가성비와 가심비 둘 다 극대화하는 방법을 택한거라 볼 수 있다. 특히, 플러스 기능을 결제하면 깨똑 텍스트창에 '분노'라는 감정어휘를 쳤을 때 관련된 이모티콘이 끝없이 추천된다. 많은 선택지 중 지금 내 감정과 상황에 가장 적합한 이모티콘을 골라야하는데! 고르는 상황만으로도 허락되는 재미가 있다. 가성비와 가심비에 재미까지 더해지는 격이다. 최근에 이모티콘 플러스를 구독하고 있는 가까운 지인에게 그걸 왜 쓰는지 물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대화할 때마다 찰떡인 이모티콘을 골라서 보내는 게 뿌듯하다고.


월 3,900원에 무제한인 이모티콘 플러스


요즘 물가로 치면, 2000원에서 3000원 정도의 금액으로 살 수 있는 기쁨 중 가장 큰 기쁨이 이모티콘이어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찰떡티콘 찾는게 재밌다던 나의 지인도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끄덕끄덕.


*가성비 :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을 줄여 이르는 말. 어떤 품목이나 상품에 대하여 정해진 시장 가격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성능이나 효율의 정도.

*가심비 :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의미하며, 이는 비용과는 무관하게 제품 또는 경험을 통해 얻는 개인적인 만족도를 강조.




가짜 나를 만드는 수단


좀 더 솔직한 이유를 찾아볼까? 나도 이모지와 이모티콘을 많이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유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차갑거나 딱딱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혹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심리에 쓰기도 한다는 !

실제 대화에선 딱딱한 말투와 불편한 기색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기분을 조절하는게 어렵지만, 톡방이라는 가상공간은 본인이 보이고 싶은 이미지에 맞게 통제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주어진다. 이모티콘은 이걸 훨씬 더 자유롭게 해준다.

 같은 경우에는 실제 대화에서 ‘했습니당, 부탁해용’ 등의 애교섞인 이응받침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톡에서는 부드럽고 친절한 이미지를 더 보여주고 싶을 때 이응받침을 자주 다. 그리고 그 이응받침보다 더 유용한 게 바로 이모티콘이다.

실제로 만나보면 나는 애교를 굉장히 낯간지러워하는 편이지만 이모티콘 애교는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다.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기질을 이모티콘으로 대신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모티콘으로 보여주는 가짜 나라는게 꼭 가식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특히 나처럼 부족한 애교를 임티를 통해 채우는 것처럼 무뚝뚝한 사람이 임티를 통해 마음 속 애정표현의 자유를 얻는다면, 이건 분명 이모티콘을 통한 일종의 해소에 가깝다. 그리고 이게 이모티콘을 쓰는 솔직한 이유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진짜 나를 비추는 수단


자주 쓰는 이모티콘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혹은 어떤 성격인지 짐작케 해준다. 내 주변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병맛티콘을 매우 즐겨쓰는 지인이 있는가하면, 그런 이모티콘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며 도리도리하는 지인도 있다. 또 동글동글 말랑말랑한 귀여운 이모티콘만 고집하는 친구도 있고, 과거의 펭수나 지금의 루피처럼 핫한 캐릭터와 연예인 이모티콘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지인들과의 톡방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가 유행에 민감한지, 유머러스한지, 평소에도 애교가 넘치는지, 4차원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지 등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도 톡만으로 예상이 가능하다. 소개팅하기 전에 서로 인사만 나누는 톡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화의 반 이상을 이모티콘으로 채우는 사람도 있고 전혀 사용하지 않고 문자언어에 충실한 상대가 있듯 이모티콘 사용여부와 스타일만으로도 그녀 혹은 그를 상상해보고 짐작해볼 수 있다.

이렇게 이모티콘이 상대의 취향이나 성향을 보여주다보니 그런 점이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도 도움 된다. 나는 귀엽고 쫀득쫀득하게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톡을  때는 상대방이 자주 쓰는 이모티콘 취향에 맞게 꺼내는 편이다. 병맛티콘을 좋아하는 사람과 톡을 나눌 때는 엽기적이고 개구진 걸 꺼내고, 아기자기한 이모티콘 쓰기를 좋아하는 친구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하트를 쏘아댄다. 내가 추구하는 입맛은 항상 같지만 이모티콘 선택은 상대에 따라 끔찍한 맛과 깜찍한 맛을 오가는 편이다.

썸이 시작될 무렵 그녀 혹은 그가 자주 쓰는 이모티콘 스타일을 봐뒀다가 좋아할만한 걸 선물해보는 것도 귀여운 플러팅이 될 수 있다. 이게 먹히는 이유는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취향에 맞는 선물을 주는 건 당연 호감으로 이어지는 일이니까! 이모티콘은 내 성격과 취향이 알게 모르게 비춰지는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여튼, 우리가 이모지나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심리에는 양면적인 측면이 모두 닿아있다. 내게 없는 부족한 면을 채워 가짜 모습을 만들 수도 있고, 내 성격이 온전히 드러나는 진짜 모습을 비출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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