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틴 Oct 16. 2020

이직의 해답을 운명에서 구하다

마디 절, 회사를 떠돌아야 했던 이유

마디 절, 회사를 떠돌아야

“마디 절(節) 자가 있네.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끊어지지..”

내 앞에 앉아계신 아저씨는 종이에 알 수 없는 글자를 쓰면서 말을 이었다.

“이 사주는 다음 대운까지 지금처럼 뚝뚝 끊어질 거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어.”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여름날, 사촌 언니와 나는 노원구의 어느 아파트 가정집에 앉아있었다. 집에서 철학관을 운영하고 있었고 환갑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알고 보면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마찬가지로 우리 둘 다 거친 산길을 구르며 살았다고 자부할 만큼 평탄하지 않았기에 일찍부터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았다.


20대 중반, 일주일이 멀다 하고 회사만 들어가면 제 발로 나오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특별한 ‘무엇’ 때문에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그 모든 게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부모님과는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정당하게 집 밖으로 나오려면 회사라도 다녀야 했다.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을 받으며 독립을 하는 것이 최고 목표였다.


반복된 퇴사를 화목하지 못한 가정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나조차 뭐라 설명할 수 없었던 행동과 마음을 잡지 못하는 상황들. 해답을 운명에서 찾고 싶었다. 

“문서운이 있어. 한참 공부를 해야 하는데 어디 학교라도 다니지 그래?”

아저씨는 코 끝에 걸친 돋보기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아.. 사실은 대학원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요. 힘들게 회사에 들어가면 자꾸 나오게 되요. 지금은 회사에 들어갈 운이 아닌가요?”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넘기며 멋쩍게 웃었다. 따지고 보면 우습다. 퇴사는 내가 해놓고서 다른 사람에게 내가 왜 그러는지 맞춰달라는 모양새다. 

“일반 회사가 아니라 공무원이나 교사가 맞아 이 사주는. 그런데 마디 절 때문에 어디를 가도 다음 대운까지는 내내 이럴 텐데 어쩌누.”

아저씨는 내 사주 원국 8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미간에 힘을 주었다.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얘기가 나오면 ‘맞아요!’를 연발했지만 궁금함이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철학관이 과연 맞는 얘기를 한 것인가. 나처럼 반항기가 다분한 사람에게 어떻게 공무원과 교사를 추천할 수 있는 걸까? 


에이, 여기 돌팔이네. 돌팔이였음을 검증하기 위해 얼마 후 또 다른 곳에서 상담을 받았다. ‘마디 절’ 글자 얘기를 다시 듣지는 못했지만 몇 월에 취업운이 다시 찾아올 거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내 회사를 들락날락했으니 바로 이번 달 취업이 된다고 해도 맞아떨어질 수 있는 얘기였다. 


공통적으로 공무원을 추천했는데, 사주명리를 배운 지금 왜 철학관에서 그런 얘기를 꺼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사주의 꽃이라고 하는 육친에서 정기적인 재물을 뜻하는 ‘정재’란 글자를 두 개나 가졌는데 그걸 공무원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어디를 가도 완전한 답을 듣지 못했지만 해석을 잘해주는 상담가를 만나고 싶었다. 


이후로도 답답한 일이 생기면 친구와 종로의 사주카페를 하나둘씩 섭렵했고 어느 곳이 더 용한지 공유하기 바빴다. 마음에 꼭 맞는 얘기를 해주는 상담가는 나의 진심 어린 엄청난 리액션에 감동하며 더욱 열성적으로 풀이해주셨다. 


이렇게 꾸준히 사주를 보러 다니면서 어느 정도 운명 탓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유리한 건 철석같이 믿었다. 결국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며 얻은 결론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뻔한 진리였다. 그렇다면 시간이 해결해줄 때까지 나는 두 손 놓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운명대로 흘러간다면 모든 건 정해져 있다는 말이 된다. 힘든 대운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지금과 똑같이 방황할 거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과거와 현재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맞추지만 미래에 대한 건 모두 다른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니 나도 내 마음대로 유리한 것만 취하면 그만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얘기 ‘마디 절’. 20대의 지루한 대운을 지나고 돌아보니 그분의 말씀은 결국 맞았던 걸로 보인다. 그런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내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수없이 반복한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조금 붙어있을 만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서 강제 실업자가 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내 의지로 백수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매우 즐겁게 운명을 받아들였다. 


숱한 퇴사와 이직 경험은 의도치 않게 나를 단련시켰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르듯 회사도 마찬가지다. 100개의 회사가 있다면 100가지 모습의 사회가 존재한다. 이직을 많이 했다는 건 여러 종류의 사회를 경험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위계질서가 꽉 잡혀있는 사회, 결과 중심으로 판단하는 사회, 개인보다 팀 워크를 더욱 중시하는 사회 등. 나는 이직 횟수만큼의 사회를 겪었다. 


친구들에게 이직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직했다고 얘기했다. 

“이직했다고? 그러게, 지난주에 얘기했었잖아. 회사는 어때?”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아니.... 거기 말고 다른 곳....”


아,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부끄러워서 오그라든다. 나는 어쩌자고 그렇게 빨리 말해버린 것일까! 이럴 땐 성격 급한 내가 원망스럽다. 취업 축하 파티와 퇴사의 위로 주(酒)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회사를 떠돌아야 했을까 진지하게 돌아볼 틈이 없었다. 회사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남들처럼 해가 뜰 때 출근해서 해가 질 때 퇴근하는 삶이 필요했다. 퇴근하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안주거리 삼아 맥주를 한 잔 할 때면 남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즈음 내 목표는 남들과 같은 삶이었다. 친구가, 회사 동료가, 엄마 친구 아들이 살고 있는 삶. 사회가 정한 틀 속에서 줄을 맞춰 예쁘게 걸어가는 그런 삶. 내가 그렇게 퇴사를 하고 방황을 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무모한 도전과 방황 속에서 고군분투했음에도
미세한 신호들을 지나쳐버리는 바람에 수십 번을 윤회하듯 반복했다.

앞으로 꺼낼 이야기를 참고로,
독자들은 자신만의 신호를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울타리를 벗어난 마흔 n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