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의 달인이 될 때까지

양으로 승부하는 입사지원

by 크리스틴

지금까지 제출한 이력서는 몇 통이나 될까? 세어보진 않았지만 1,000통은 가뿐하게 넘을 거라고 자신한다. 보통 자유양식 이력서를 메일로 첨부하거나 채용사이트에 등록된 이력서로 지원하곤 했다.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보통 유선으로 연락이 온다. 면접 연락을 놓칠세라 모든 신경은 휴대폰에 가 있다. 집에서는 무조건 소리, 바깥에서는 진동모드로 변경하고 손에서 한시도 놓지 않았다.


이런 면접자의 마음과는 별개로 회사는 태평하다. 서류전형은 불합격해도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규모가 있는 기업들은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통보해주는 매너를 발휘하지만 그 외 회사들은 보통 묵묵부답이다



신입으로 대략 10군데의 회사에 지원하면 한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기계적으로 지원하다가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진다 느껴지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조금씩 수정해나갔다. 나의 어떤 점이 눈길을 끌 수 있을까 고민했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최소화시켰다.


신입은 경력처럼 적을 것이 많지 않기에, 학교 성적을 필두로 내가 얼마나 IT업계와 찰떡궁합인지 나름의 증거를 제시했다. 컴퓨터 경진대회에 나가서 입상했던 일, 영어회화 동아리 부서장의 경험을 내밀며 적극적인 부분을 어필했다. '제가 이만큼 싹수가 있어요!' 하고 어린 새싹 잎을 최대한 부풀려 세웠다.


하지만 서류전형과 면접의 긴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경력과 경험이 쌓이며 어느새 타칭 ‘면접의 달인’이 되었지만 어린 새싹 잎이던 시절엔 면접에서 제대로 대답을 하고 나오는 것이 목표였다.


긴장을 최대한 감추고 임하지만 노련한 면접관들은 나의 얼어붙은 상태를 놓칠 리가 없다. 부자연스러운 얼굴 표정과 짧게 끊어지는 대답, 면접관 3명의 여섯 개 눈동자 앞에서 머릿속이 하얘진 채 한 마디도 못하고 나온 적도 있었다.



고백하건대, 난 어릴 적부터 고질적인 말 더듬 습관이 있다. 긴장이 되거나 이 말을 꼭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면 여지없이 첫마디부터 막힌다. 면접은 최대한 나를 잘 팔아야 하고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 매력은커녕 묻는 것에도 하고 싶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올 때면 늘 자책과 좌절이 번갈아 오고 가며 심경이 복잡했다 입사를 하려면 이 모든 것을 넘어야 한다. 내 모습이 이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개인적인 핸디캡 때문에 내가 가진 능력이 과소평가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려면 면접에 익숙해져야 한다. 작은 회사든 큰 회사든 보이는 곳마다 모두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무조건 부딪혀보는 수 밖엔 없었다. 20군데, 30군데, 지원하는 양에 비례해서 면접 연락도 늘었다. 일주일에 최소 3건, 언제부턴가 거의 매일 면접을 보러 나갔다.


강남, 마포, 송파, 부천, 일산 등 출퇴근 거리는 상관없었다. 어떤 질문을 주로 하는지, 어떤 제스처를 취할지, 인간적인 매력을 어떻게 어필할지, 호감과 비호감을 가르는 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었다. 질문할 내용을 메모해서 들고 가고, 주요 질문에 관한 답변 몇 개는 외워가기도 했다.



연기자가 된 것처럼 나의 캐릭터를 만들어간다. 어느 순간부터 임기응변도 늘었다.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가벼운 농담을 던지는 여유도 생겼다.


면접 경험이 많아지니 반대로 이력서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면접에서 물어볼 질문에 관련된 내용을 일정 부분 이력서에 넣었다. 어떤 걸 강조하면 좋을지, 이력서에 적은 내용을 면접에선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고민했다.


1차 면접에선 실무자의 어려운 점을 동조하며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대안을 만들어 제시했고, 2차 면접에서는 면접관의 성향을 빠르게 캐치해서 답안을 준비했다.


가령, "집이 서울이에요? 고향은 어디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아버지는 경상도, 어머니는 전라도예요. 안 그래도 곧 선거잖아요? 저녁마다 TV 앞에서 아주 난리가 납니다.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지역감정마저 딱딱한 자리에선 꽤 쓸모 있는 소재다. 나이가 지긋한 면접관일수록 너털웃음을 지어주신다.



실무 면접이든 인성 면접이든 실력이 부족해 보인다면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합격을 알리는 전화벨이 경쾌하게 울렸고 그리 힘들게 면접을 봤음에도 퇴짜를 놓는 회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인천은 출퇴근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8시 출근이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연락 주기로 한 곳이 더 있으니 일단 기다려볼까?'


나의 첫 회사는 이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고 면접에 자신이 붙으니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내게 맞는 일과 회사를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면접은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새로운 회사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멋모르고 제멋대로인 20대 신입, 내 모습이었다.


면접의 쳇바퀴 속에서 기술을 연마한 신입,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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