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실수는 훈장이 된다

나쁜 결과를 칭찬으로 바꾸는 방법

by 크리스틴

"경력이 4년이신데 이직을 자주 하셨네요. 개발, 운영, QA까지 하셨는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경력은 7년인데 기획의 비중이 작군요. 개발에서 기획으로 전환하신 이유는 뭔가요?"

"개발, 운영, QA, 퍼블리셔에 기획까지 하셨어요? 경험도 많으시고 대단하시네요~"




위의 말들은 이제까지 면접관에게 들은 말들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각각 경력 4년 차, 7년 차일 때 들었던 말이고, 세 번째 멘트는 경력을 10년 넘겼을 때 기획자로 지원한 회사에서 받은 피드백이다.


한 군데서 경력을 쌓기 전에도 이직을 자주 했다. 초기의 이직은 선택한 일이 내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나만의 확실한 방법이었다. 코드를 만지는 일에 흥미를 느껴서 개발자라는 직군으로 취업을 희망했지만 솔루션 개발인지, 웹 개발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를 택해 준 고마운 회사에서 경력을 쌓는 대신, 한동안 이리저리 떠돌았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지쳐갈 즈음 좀 더 흥미가 가는 것을 찾았는데 그건 웹 개발자였다.


개발자로 결론을 내렸지만 이직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업종의 문제였다. 업종마다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도 이직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제조업이나 금융 계통은 보수적인 곳이 많아서 근태나 야근 등 표면적인 것들로 직원을 평가하곤 했다. 또, 보수적인 기업 출신의 대표들도 눈치 보지 않고 칼퇴근하는 직원을 곱게 볼 리 없었다.



몇몇의 칼퇴근을 주시했던지, 전사적으로 야근을 하라는 메시지가 내려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윈도 서버에 쓸데없이 OS를 재설치하거나 소스코드 줄 맞추기 작업을 했다. 혈기왕성하던 20대의 나는 납득할 수 없었고 불만을 품던 사람들과 함께 사직서를 던졌다.


개발자가 야근하지 않는 회사를 찾는다는 건 그 당시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러나 내게는 예외였는지 야근이 없다는 교직원 전산직에 지원했고 합격통보를 받았다. 남들은 꿀보직이라며 엄지를 척척 세워 보이곤 했다.


칼퇴근에 연봉도 높았지만 교직원들 사이에서는 교수님의 눈치를 보고 기분을 맞춰야 하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다. 사회생활의 8할은 눈치와 경험으로 이루어진다는데, 나는 교직원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백화점 의류 매장을 돌며 옷을 입어보는 것처럼 많은 회사에 입사하며 업무 핏을 맞춰보았다. 높은 연봉이 내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직이 반복되니 오기가 생겼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직군과 업종은 큰 의미가 없었다. 내게 꼭 맞는 회사를 찾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모든 게 완벽한 유토피아에서 인정받으며 오래도록 일하고 싶었다. 꽤 오랫동안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었다.


잦은 이직과 직군 전환을 지적하던 면접관들이 언젠가부터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한다. 한 우물만 파지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이 많다고 어필해왔는데 세상이 바뀐 건지 인식이 바뀐 건지 누더기 이력을 좋게 보는 곳이 많아졌다. 경력 10년 차에 가까워지면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음을 확인했다.



금융, 여행, 게임, 제조, 교육, 기타 산업과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창업 멤버 등으로 참여한 경험은 모두 나만의 자산이 되었다. 어쩌면 기획자에게 필요한 역량과 잘 맞아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질보다 양이다’ vs ‘양보다 질이다’라는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말이다. 질 좋게 많은 양이 모이면 가장 좋겠지만, 질이 떨어질 땐 양으로 승부할 수도 있다. 자잘한 경력도 세월이 쌓여 양으로 밀어붙였더니 이 덩어리 자체가 나만의 독특한 질이 되었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하던 내게 어느 팀장님께서 퀀텀점프에 대해 말씀하셨다. ‘퀀텀점프(Quantum Jump)’란 경제학에서 단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이나 발전을 할 때 사용한다. 원래 퀀텀점프는 대약진, 대도약을 뜻하는 물리학 용어로 양자(Quantum)가 다음 단계로 갈 때 조금씩 발전하는 게 아니라 계단을 오르듯이 급속도로 뛰어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파고들면 퀀텀점프를 통해 고수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다.



또,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한다. 1만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을 10년간 투자한 시간이다. 1만 시간은 위대함을 만드는 마법의 숫자라고 언급하지만 반대 의견들도 속속 나타난다. 미국 미시건대, 라이스대, 사우스일리노이대, 영국 브루넬대, 호주 에디스코완대 등 3개국 5개 대학교 공동연구진이 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음악 연주자와 체스 선수의 실력과 연습량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14편의 기존 연구를 분석하자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는 전체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체스 선수의 66퍼센트, 음악 연주자의 70.1퍼센트는 1만 시간의 연습이 아닌 지능, 성격, 유전자, 연습을 시작한 연령 등에 의해 실력 차이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렇게 1만 시간의 법칙도 반론이 나온다. 한 우물을 파야만 하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숱한 이직 경험도 칭찬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실수를 무한정 반복해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반복의 과정에서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과거의 실수나 나쁜 결과를 칭찬으로 바꾸는 방법은
자신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가진 뒤
좋은 의도를 품은 채 내 땀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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