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민낯과 대면하는 일
무더운 여름날, 에어콘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곳으로 출근을 한지 3일이 지났다.
나를 불러준 고마운 회사는 테헤란로의 빌딩 숲 어딘가에 있었다. 실무자로 개발자 두 명, 디자이너 한 명이 일하고 있었고, 노동부 교육과정을 금방 수료한 신입 개발자를 채용했다. 실무자들은 모두 신입을 환영해주었고 챙겨주려는 분위기마저 훈훈했다. 개발자 한 분은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한다. 출사를 나가서 찍었다는 화초 사진을 인화해서 나눠주었다. 다들 자신의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며 취미활동까지 열심히 한다.
신입의 눈에는 일과 취미를 병행하는 생활마저 대단해보이고 나는 언제쯤 저런 여유가 생길지 부럽기만 했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나만 유독 불안, 초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6개월짜리 개발자 교육과정을 수료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펙’ 한 줄에 불과했다. 관련 학과를 졸업했고 장학금도 받았으며 별도의 교육과정을 거쳤으니 문서상으로 나는 인증된 신입이었다.
이런 포장과 달리 내면은 늘 쫓기고 겁에 질려있었다. 서류에 맞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항상 나를 괴롭혔다. 경험은 없지만 이러이러한 것들을 배웠으니 기본기는 단단하다고 한껏 부풀려서 나를 어필했기 때문이다. 다른 지원자를 제치고 면접을 통과하려면 자신감 장착은 필수다.
서류가 실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걸 일찍 깨우쳤다. 알파벳과 기초 단어를 겨우 떼고 왔지만 영어회화를 조금이라도 알아듣는 체는 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기초 개념조차 부실했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이었으니 집에서 따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인정하지 못한 것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거대한 문제로 다가왔다. 이론적으로 계산한 기대치를 스스로 적용한 채 현실과의 괴리감에 걱정만 늘어가고 있었다.
“급한 건이 마무리 됐어요. 오늘 끝나고 회식 어떠세요?”
개발팀장님이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며 회식을 제안했다.
“좋지요, 환영회 합시다! 괜찮으시죠?”
사진이 취미인 개발자가 나와 디자이너를 번갈아 쳐다보며 대답했다.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복잡한 마음을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괴롭히는 강박에 잠식당해버린 뒤, 밤새 뒤척이며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다음 날 벌어진 일이다.
시계는 이미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다. 한 시간 뒤에 회식하러 나서야 할 판이다.
‘지금 바로 일어나서 면담을 하자고 할까?’ 꼭 회식하기 싫어서 그런 듯한 느낌이다.
‘몸이 아프다고 하고 빠질까?’ 종일 아픈 기색조차 없었으니 이것도 회식하기 싫어서라고 생각할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망설이다가 40분을 보내고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사 근처 생맥주 전문 펍에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이 오붓하게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댁이 어디라고 하셨죠?”
입사 첫날 기본적인 호구조사를 했지만 회식이니만큼 본격적으로 서로를 알아가고자 대화를 이어갔다. 퇴사할 마음을 먹고나니 어디까지 얘기를 하고 얼마나 장단을 맞출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사진이 취미라던 개발자는 이 시간만큼은 전문 사진가로 돌변했다. 맥주와 음식, 모두의 얼굴을 사진에 담기 바쁘다. 카메라 렌즈가 나를 향할 때마다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수록 미안함이 죄스러움으로 짙어져 간다. 몇 달 만의 회식이라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신이 났다. 여세를 몰아 노래방으로 이동한다. 상황이 이쯤되니 혼자만의 감정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쳤다. 게다가 나는... 노래방을 너무 좋아한다.
천장엔 사이키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익숙한 무지개빛 조명을 반사한다. 붉은 레자 소파에 가방을 던지고 노래방 책자를 넘기고 있으려니 개발팀장이 슬쩍 분위기를 조성한다.
“왜들 그래, 자기들 놀던 대로 놀아~ 테이블에 올라가도 이해할게, 망가뜨리지만 말고!!”
말이 끝나자마자 팀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구두를 벗는다. 소파로 올라서더니 내 팔을 잡아끈다. 당황스러움이 교차하는 것도 잠시, 에라 모르겠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괴롭히던 고민도 던져버렸다.
방 안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분위기가 쳐진다 싶으면 야유를 날리며 노래를 바로 끊고 빠른 템포의 곡으로 이어 달린다. 전문 사진가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셔터를 마구 눌러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분위기를 깨지 않고 열심히 노는 것! 지하철 막차 시간에 맞추어 광란의 회식은 마무리 되었다.
열기와 흥분이 식지 않은 채 지하철에 올랐다. 노래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던 고민을 다시 펼쳤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분위기 좋게 놀고 난 다음날 퇴사를 말하려니 면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마음을 잡고 열심히 일해 볼 용기도 없다. 나는 어쩌자고 소파 위에 올라가서 놀아버린걸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마음의 소리는 내가 생각해도 핑계로 들린다. 그 사이, 집이 가까운 사진가는 회식에서 찍은 사진을 메신저에 줄줄이 올린다.
‘내일 봅시다‘는 인사를 주고받을 때도 바늘로 콕 찌르는 것처럼 따끔했는데, 이 수십 장의 사진들은 온통 총알이 되어 내게 융단폭격을 가하는 것 같다. 집에서 파일을 하나씩 열어보며 조용한 새벽에 혼자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래, 웃어야지 뭐. 웃을 수 밖에.
‘위잉~’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데스크탑 컴퓨터의 전원을 조심스레 켠다. OS가 부팅되는 시간이 오늘따라 순식간이다. 모니터는 내 속도 모르고 넓은 들판과 파란 하늘이 펼쳐진 배경화면을 보여준다. 저 들판 어딘가에 쥐구멍이 있을까? 쥐보다 눈에 띄지 않는 벼룩이 낫겠다. 키보드를 꾹꾹 짓이기며 메일을 써내려 간다. 손이 멈출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력서의 패기와 다르게 현실에선 잘 해내고 싶은 욕망과 압박만이 가득하다. 경험이 없기에 신입이고, 모르는 건 죄가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모범생이었다는 자기 이미지는 회사로 넘어가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입사하고 며칠이 지나도록 이력서에 기재한 포장을 내 손으로 풀지 못했다. 누군가가 내 포장을 풀도록 허용하는 것도, 푸는 걸 지켜 볼 여유도 없었다.
모르는 건 신입의 특권이라고, 어차피 이론과 실무는 다르다고, 회사마다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다고, 그러니 부담을 버리고 이제부터 하나씩 시작하면 된다고. 누군가 내게 말해줬다면 나는 과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민낯과 대면할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