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퇴사 이유 하나

입사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by 크리스틴

홍대입구역에 정차한 지하철에서 인파를 비집고 겨우 빠져나왔다. 공식적인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시계는 이미 9시 5분을 가리킨다. 1분이라도 더 지체하지 않으려고 지하철 계단을 뛰어오른다. 초행길이니 소요시간을 더 길게 잡았어야 했다. 오늘은 솔루션 개발자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신입의 패기가 통했는지 우선 지켜보려는 심산이었는지, 별도의 면접을 보진 않았다. 직원은 5명으로 조촐했고 사무실은 지하철 역에서 5분 거리인 어느 오피스텔에 위치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을 느끼며 일러 준 장소에 도착해보니 문이 굳게 닫혀있다.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려도 열리지 않는다. 문에 붙어있는 회사명을 다시 확인해본다.



‘여기 맞는데, 아직 출근 전인가?’

숨을 고르며 내심 안도한다. 연락받은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아~ 도착하셨어요? 대리님이 곧 출근하실 거라..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10분이 흐르고 면접 없이 나를 받아준 회사에 슬슬 반감이 일기 시작한다. 15분이 넘어가니 다리도 아파오고 ‘지금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본다. 20분을 채우기 직전에 직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쉽게도 도망갈 기회를 놓쳤다.


거주 목적인 오피스텔에 테이블을 빼곡하게 붙여 사무실로 꾸민 듯했다.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우선 스터디하시라는 말에 IDE(통합개발환경) 툴, 비주얼 스튜디오를 구동하고 앞에 놓인 두꺼운 개발 서적을 펼친다. 종이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 타이핑 소리만이 적막하게 울려 퍼진다.



다른 직원들도 한 명씩 꼬리를 물고 출근하며 인사를 건넨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이 곳은 다시 ‘무주공산’이다. 모두 벽 쪽을 보고 앉아서 불룩한 CRT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이 집중한다. 내 뱃속에서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옆 자리에 들릴까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종일 이렇게 책만 보고 있으면 되는 건가? 뭐라도 설명을 해주던지 해야 할 거 아냐!’

답답한 마음에 시계를 본다. 겨우 1시간 지났을 뿐, 오후 6시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시간과 싸우고 있으려니 등 뒤에서 중국집 배달을 시키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신입의 ‘당연한’ 동의를 받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장면 다섯 그릇을 익숙하게 주문한다. 자리에서 뒤를 돌면 둥근 회의 탁자가 두어 발자국 앞에 놓여있다. 다섯 명은 여유롭게 앉지만 머리수가 늘어나니 의자를 조금 붙여 앉아야 한다.



자장면을 어색하게 씹어 삼킨다. 먹는 양도 적고 속도도 느린 탓에 열심히 절반을 비웠다.

“거의 남기셨네? 좀 더 드세요.”

“하하.. 다 먹었어요. 제가 남들보다 양이 적어서요~”

출근 첫날은 대체로 배고픔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매 순간 어떤 행동을 취해야 모범 신입사원일지 고민한다. 출근을 시작하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곳은 없었다.


직원들이 자장면 그릇을 부산하게 정리하는 동안 나는 물티슈를 뽑아 탁자를 깨끗이 닦는다. 이어서 한 명씩 출입구 옆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양치를 한다. 오피스텔이니 화장실이 안에 있는 건 당연하다. 남자 다섯 명과 사용해야 하는 공용 화장실인 셈이다.



어쩌면 저들이 더 불편할지도 모른다. 볼 일을 마친 사람들은 즉시 자리에 앉았고 누구 하나 떠드는 이가 없다. 그 흔한 흡연자도 없는지 아무도 저 문을 나서지 않는다.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았지만 내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사람이 없다. 사수도 누군지 알 수 없다. 왼쪽 자리에 앉아있는, 오전에 문을 열어준 직원에게 조용히 묻는다.

“저.. 이 책 계속 보고 있으면 되는 건가요?”

“네, 우선 스터디하고 계시면 돼요.”

그는 몸을 반쯤 돌린 채 빠르게 답하고는 다시 일에 집중한다. 월급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가! 친구에게 온라인 메신저로 투덜거렸더니, 예상대로 똑같은 말을 한다.

[친구 : 야야, 돈 주면서 공부하라는데 뭐가 문제냐? 난 오늘도 야근해야 돼!]

이 묘한 불편함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호르몬의 마법은 하필 이런 날 찾아온다니, 무거운 건 마음이 아니라 몸일 수도 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분 후, 나는 퇴사해야 할 당연한 이유를 발견했다.

화장실에 휴지통이 없다?!



이럴 수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요즘은 휴지통 없는 화장실이 많아졌지만, 2000년대 초반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원초적인 것까지 문제가 될 줄이야. 휴지통을 마련한다고 쳐도 그건 오로지 나의 ‘흔적’ 뿐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여성용품 처리 방법을 생각하기는커녕 사고가 일순간 정지되어버렸다.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하는 거지? 혹시라도 변기가 막히면...’

끔찍한 상상이 이어졌다. 자장면을 먹었던 원형 탁자 근처에 있는 무릎 높이의 쓰레기통이 전부다. 뚜껑은 제멋대로 열려있다. 그곳에 버릴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혼자 잔뜩 당황한 얼굴로 친구에게 다급하게 상황을 알렸다.


[나 : 여기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없어! 모두 남자 직원인데 하필 나 오늘...]

[친구 : 헉.....]

친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정확히 6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챙겨 온 물건도 없었다. 앞으로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그들 입장에선 자장면도 먹이고 스터디만 시켰을 뿐이다. 퇴근 인사를 하고 나서며 밤늦게 메일을 보낼 결심을 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회사랑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잘했어! 조만간 맥주나 한 잔 하자.’


저녁 6시 홍대입구 역은 활기가 넘친다. 역사 내에 있는 화장실을 지나치려니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솔루션 개발자라는 비전은 코앞의 일상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미래의 비전을 생각하기엔 어렸던 20대 중반, 퇴사할 이유는 끝이 없다.


공공 화장실에 휴지가 있는지 살피고 들어가듯이,
화장실은 내게 회사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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