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 적합한 성격?

by 크리스틴

사회생활에 적합한 성격이 따로 있을까? 지인들을 떠올려보면 사회생활에 좀 더 유리한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내 성격은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사람들은 술 한 잔이나 수다, 쇼핑 등으로 털어버리곤 한다. 괜찮아졌거나 괜찮은 척하거나 안 괜찮아도 마음을 가다듬고 내일을 준비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나는 자존심이 세고 주장이 강하다. 누군가 타당하지 않은 의견으로 업무 수정을 요구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받아들인다고 해도 겉으로 수긍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나를 설득해가며 일을 시키는데 애먹었을 몇몇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스친다.

게다가 스스로 정해둔 프레임도 있었다. 한 때, 여행사 전산팀에서 개발자로 근무한 적이 있다.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말 당번제를 실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번의 업무는 회사 콜 센터에 앉아 주말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거였다.

'전산팀 직원에게 고객센터 상담이라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고객센터 상담 업무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업무 영역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영업팀 직원에게 서버나 데이터베이스 모니터링을 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전화만 받을 뿐,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고 요청사항을 메모해 두는 것이 전부였다. 아마, 고객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할 사람이라도 둘 목적이었을 게다. 나는 말 주변도 없었지만 여행 상담이나 발권에 대해 무지했다. 20대 후반이었지만 그 당시엔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했다.


또, 몇 주 지나지 않아 인천공항 내 여행사 부스에서 고객을 안내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역시 전산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른 일요일 아침, 나는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공항 리무진에 올라탔다. TV에서만 보던 공항을 이런 식으로 처음 가게 될 줄이야... 피곤한 상태에서도 헛웃음이 삐죽 비집고 나온다.


도착해보니 직원 한 분이 미리 나와계셨다. 2인 1조였는데 그분은 영업팀 소속으로 여행지식, 안내에 정통했다.

"해외여행 다녀오신 적 있으세요? 비행기는 타보셨어요?"

고객에게 나눠줄 티켓을 정리하며 그분이 내게 물었다.

"아뇨, 사실 공항도 오늘 처음 와봤어요."

난 멋쩍게 대답하면서 의도적으로 불만 섞인 뉘앙스를 풍겼다.

"아... 그럼 좀 어렵겠다. 근데 알고 나면 복잡할 거 하나 없어요."

오후 6시까지 여행객은 10팀 넘게 부스에 들렀고, 나는 영업팀 직원의 곁에 들러리로 서있었다. 그분이 자리를 비울 때면 손님이 올까 겁나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출국심사, 보안검색 등 여행에 익숙한 지금은 별거 아닌 용어들이지만 그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마음이 들뜬 여행객들은 유니폼 차림의 머릿속이 하얘진 여행사 전산팀 직원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걸 알까?


'제가요, 사실 개발 담당자라 아무것도 몰라요- 이걸 처음 해봐서 그런데 안내가 부족하죠? 이해 부탁드려요-'

이렇게 붙임성 있게 넘길만한 넉살도 없었고, 묻는 질문에 겨우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굳어있다가 공항을 나오는데 온몸이 쑤셔왔다.


고객센터 응대와 공항 부스 안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이라 결론짓고 다음 당번일이 되기 전에 퇴사를 결심했다. 다시 회사를 찾아야 하는 건 이 일들에 비하면 요만큼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팀장님은 별말씀없이 내 사직서를 받아주셨다. 같은 팀 동료인 디자이너 언니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주말에 이런 당번한다는 게 많이 힘들죠? 난 여기서 일한지 워낙 오래되서.."

드디어 퇴사하는 날. 아침마다 갈아입어야 하는 유니폼도, 9시마다 울려 퍼지던 국민체조 음악도 더 이상 문제 될 건 없다. 점심을 먹기 전에 노트와 펜, 개인컵을 챙겨 회사문을 나섰다.


'그래, 좋은 경험 한거야. 내가 또 언제 이런 걸 해보겠어?!'

긍정적인 생각은 늘 모든 게 끝나야 비로소 몰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사람을 대하는 일이었다. 또, 내 성향은 서비스직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회생활에 적합한 성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한 성격이 있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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