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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Dec 22. 2019

취준생 탈출 선언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인터뷰를 하게 됐다. 기자님은 서울 시민들의 새해 소망을 실을 건데 한마디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기자님이 말했다.


“학생이라고 소개하면 될까요? 아니면 뭐.. 어떻게 소개해드릴까요?"

순간 멍해졌다. 몇 초간 대답을 못 하다가 “어.. 그냥 뭐 취업 준비생 이라고 해주세요.”라고 답했다. 딱히 특정 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답해버렸다. 취준생 말고는 딱히 뭐라 정의할 말이 없어서.


얼마 전 인턴생활이 끝나고, 파트타이머를 하게 됐다. 일을 하는 곳은 옛날 창고를 리뉴얼하여 꾸린 공간이다. 서점, 라운지, 전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시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구현해 놓은 곳이다. 공간 기획에 관심이 생기던 요즘이었는데, 명확한 컨셉 아래 꼼꼼하게 기획된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들르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설명하는 일도 재밌고, 공간 운영에 필요한 물품들을 체크하고 정돈하는 것도 꽤 잘 맞는다. 어깨 너머로 콘텐츠를 공간으로 확장하고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씩 배우고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파트타임 잡으로 버는 돈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일을 알아보는 도중, 친구가 프리랜서 마켓을 소개해주었다. 각종 문서 디자인, 통번역, 각종 분야의 레슨, 프로그래밍, 패키지 제작, 인테리어 등..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와 이들을 필요로 하는 의뢰인을 매칭해주는 사이트이다. 대학생활동안 만든 PPT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다소 부끄럽지만 ‘PPT 디자이너’로 전문가 등록을 했다. 한동안은 잠잠하다가, 한 의뢰인으로 물꼬가 트이더니 작업 문의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오, 근데 이거 생각보다 재밌다. 의뢰인이 가지고 있는 의도와 컨셉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흥미롭고, 내 작업물을 의뢰인이 마음에 들어 하면 그간의 고생이 잊혀 질만큼 뿌듯하다.


낮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디자인 외주를 하고. 일이 없으면 쉬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다. 생활패턴이 불규칙하고,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도 내가 하는 일들에 보람을 느끼며 꽤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이 두가지 일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취업을 위한 ‘어학 자격증 따기’, ‘자소서 쓰기’와 같은 일들은 뒷전이 되었다. 그러자 그에 따른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조만간 이 생활을 청산하고 어디 회사든 들어가긴 해야겠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다. 부모님을 포함한 나의 주변 사람들은 “그래, 취업하기 전에 이것 저것 많이 경험해봐.”라고 말한다. 취업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은 한 번쯤 해보는 경험일 뿐인 것이다.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이 알게 모르게 나에게 꽤나 큰 압박감을 주고 있었나 보다. 아직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딱히 없을 뿐더러, 어학자격증을 따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 보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제대로 배워 외주의 범위를 더 넓히고 싶은 마음이 훨씬 우선인 나에게 ‘취준’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쿨하게 무시할 수도 없다. 사회가 정해준 길을 곧이 곧대로 따라온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를 이탈할 용기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조금씩 용기를 내보고 싶다. 딱히 누군가에게 정의 내려질 필요는 없다. 남들이 보기에 불안해 보이고, 철없어 보일지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자신을 믿고 밀고 나가볼 용기가 필요하다. 가까운 미래에 목표를 세워 두고, (나의 첫번째 단기 목표는 1월까지 일러스트로 가상 리플렛 하나 만들기) 이뤄 나가다 보면, 기회가 생기고 어느새 ‘무언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2019년에는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에 너무 휘둘렸다. 그 무거운 타이틀에 짓눌려 매일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다가 6개월간 인턴생활을 했다. 인턴을 하는 것이 중요했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인턴’을 해야 했다. 취준생이라면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스펙이라고들 하니까. 물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것들을 배웠으므로 인턴을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나에게 그 6개월의 시간은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다가오는 2020년에는 사회의 시선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싶지 않다. 그럴싸한 무언가로 정의 내려지려 애쓰지 않고 싶다.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고, 가까운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더 몰입하며 뿌듯함과 성취감을 만끽하자. 불안함은 덜어 놓자.

기자님이 하신 질문 하나가 나를 깊은 고민에 빠뜨렸고, 2020년도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이끌어 냈다. 마음 한 켠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실타래가 풀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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