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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 Oct 12. 2020

나는 헤어디자이너'였'다.

인생의 한 부분이자 평생을 차지하려 했던 전문직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목과 같이 나는 헤어디자이너였다고 말했는데, 정확히는 밑바닥 바닥 쓰는 인턴부터 시작해서 약 3년간 배우고 미용의 꽃이라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고작 한 달 정도 남겨두고 문턱까지 갔다가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그만뒀다. 어디 가서 '전직 미용사였습니다' 하기 애매한 것이다. 그때 당시에만 해도 미용이 인생의 전부라 믿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배우고 갈고닦았으니 초급 디자이너 정도의 수준은 될 것이다. 나중에 나이 먹고 할 일 없으면 소소하게 작은 샵 하나 차릴까도 생각은 해봤다.

 

 평생을 미용만 바라보겠노라 다짐했었던 이유

개인적으로 '미용은 고귀한 예술'이라고 생각했었다. 신체의 일부를 디자인해서 사람의 아름다움을 가꿔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머리카락도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신체의 일부라 생각하고 신체를 소중히 여겼는데 그걸 자르고 꾸며 디자인한다니, 굉장히 조심스럽고도 고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건 현실에 맞닥뜨리기 전까지였다. 지금 그 현실을 본인이 느낀 그대로 낱낱이 파헤쳐보고자 한다.








첫째, 미용실 인턴(스탭)들은 위장병을 달고 산다.




  실제 스탭 때의 경험담을 얘기하 한다. 스탭은 디자이너의 서브 역할을 해주는데 샴푸, 헹구기, 펌, 염색 등 디자이너 혼자서 하기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을 같이 한다. 인턴으로 입사할 때만 해도 고용계약서에 분명 점심 식사시간은 한 시간이라 명시돼 있는데 절대 그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바쁜 날은 10분 15분 만에 먹고 바로 일 해야 했다. 디자이너가 자기 돈 벌겠다고 점심시간도 없이 두시, 세시까지 일하고 있는데 어찌 뭐라 할 수 있나, 스탭이 매일 제시간에 밥 먹으러 가서 30분, 1시간 앉아 있으면 눈치를 준다. 기 때문에 미용인의 위장과 소화기관들은 매일매일 다른 간헐적 식사시간에 위액을 뿜어내기 위해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속이 쓰리고 쥐어짜는 고통으로 내과만 수 번 갔다. 내과 의사 선생님은 식습관을 고치라고 한다. 대충 일 그만둬야 배가 안 아플 거란 소리다. 요즘엔 예약 시스템이 좋아져서 점심시간엔 예약 안 받기로 하면 되고 예약 안 하고 방문하는 사람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 제때 밥 먹기에는 좋아졌다.







둘째, 고되다.




  어떤 일이던지 '일'이니까 힘든 건 모두 같겠지만 짚고 보자면 어깨 무릎 목 허리 등 관절병을 달고 산다. 팔을 위로 치켜드는 어깨에 치명적인 행동을 자주 할 수밖에 없고, 특히 여성 디자이너들은 굽 높은 신을 신고 매일 몇 시간 씩 서서 일하다 보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관절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또, 사람 상대하는 일이니 비정상적인 고객을 만나는 일이 더러 있다. 진상 고객과 갑질 하는 고객, 그리고 앞뒤 다른 고객 등 매우 다양하다.


  앞에선 마음에 든다고 하며 스타일 괜찮다는 둥 마음에 안 든다는 아무런 시그널이 없다가 몇 시간이나 며칠 뒤에 와서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 막무가내로 환불해달라 하여 어쩔 수 없이 환불해줬으나, 정작 샵 이용 리뷰에 고의로 안 좋게 쓴 사례를 봤다. 실제 사례이다.


체적 스트레스와 더불어 정신적 스트레스함께 받는 것이다.

+일하는 내내 화학 약품 냄새를 맡는 건 기본이다.



성공의 조건이 모든 노력을 퍼부어야 한다면,
어차피 모든 노력을 퍼붓는 거, 다른 일을 찾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간 들인 그 노력들로 하여금 신체적 스트레스만이라도 덜 수 있는 일이라면 말이다.







셋째, 우리나라 미용은 기술이나 실력 대비 대우를 못 받.




  개인마다 미용실마다 근무 환경이 어느 정도 차이는 있고 어느 나라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겠지만, 아는 한 지금은 아니겠지만, 미용실 인턴 때 주 6일 근무에 주당 60시간씩 일하면서 나라가 정최저시급도 못 받았다.(2018년 기본시급 7,530원, 미용실 입사 2년 차 직원 월 150만 원. 최저시급으로 친다면 월급은 약 180만 원이 됐어야 한다. 7,530원 x 240일=1,807,200원)


  노동법이 강화되어서 2019년은 인턴은 주 5일에 최저시급을 쳐준 금액이 계좌로 210만 원이 찍히긴 했지만 다른 이유들로 일부 게워냈다. 안 받던 점심 밥값(10만 원)이라던지, 일주일에 한 시간 교육하는 4회 차 교육비(20만 원)를 말이다. 세금 때문인지 법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빼서 준 게 아니고 받고 다시 되돌려줬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2019년 전까지만 해도

일하는 시간 대비 급여만 본다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못했던 것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돈은 돈대로 적고 일은 일대로 많이 하고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말해도 미용을 할 사람은 하게 되어있고, 또 미용을 사랑하고 인생의 전부라 믿는 사람이라면 해볼 만하다는 건 인정한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직업, 어느 일이던지 다 할만하겠지만 말이다.








넷째, 미용사는 미용실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한 올챙이(스탭)우물(미용실) 안에서 키워지고 성장해 개구리(미용사)가 되어, 원장이 주는 먹이(기본급)만 따박따박 받아먹는 우물 안 개구리로 몇 년을 허비하게 될지 생각은 해봤는가.

미용실에는 기본급제와 인센티브제가 있다. 미용실마다 다 다르지만 매출의 30%에서 많기는 45%까지도 봤다. 기본급이 200만 원, 인센티브 35%라 치고 디자이너 혼자서 월 매출 600만 원 이상을 해야 인센티브로 기본급 이상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말이 600만 매출이지, 디자이너 승급하고도 최소 1년 반 이상을 매출 600만도 못하고 기본급만 받고 일하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많다.


 미용사들은 모두 미용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과 사랑, 열정으로 살아간다. 아니 버틴다.


꼭 성공해서 연봉 1억을 버는 멋진 디자이너가 되어야지,
나는 머리 하는 게 좋으니까 하는 거야

...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경우가 반 이상.


  한 미용실에서 오래 일할수록 더욱 그렇다. 기술적 측면에서 본다면, 미용인으로서 미용이라는 기술을 키우기 위해선 여러 색깔의 기술들을 접하는 게 좋다. 미용실마다 원장들 각자가 다 장인이고 명인이니 한 미용실에 오래 머물기보다는, 이 미용실 저 미용실 다 다니며 배우는 게 좋다. 읽는 이 가 한 곳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미용사라면 큰맘 먹고 꼭 옮겨보기를 추천한다. '나는 이제 많이 배운 디자이너인데, 이 미용실에서만 5년을 일했는데, 이젠 날 인정해주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 독립할 땐 독립해야지 언제까지 눈치에 스트레스까지 받을 건가.


※미용실 옮길 땐 최소한의 내 충성고객들은 꼭 내가 데리고 가야 한다. 기본급만 받다가 생활고에 지쳐 미용을 접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작가가 한 말이 모두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본 대부분의 미용사들은 이러했다는 점.


  장황하게 파헤쳐봤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만 둘러봐도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뭐가 나와 맞는 건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도대체 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 쳐도 그 또한 좋은 경험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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