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소설_부러진

#4

by 현자

'짤랑'


꿈이다.


자꾸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누구 있어요?


어둡다.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칠흑 같다.


거기 누구 있어요? 할머니예요?

할머니, 저 정희예요.

아빠가 어제 때렸어요. 혼내주세요.


운다.


할머니, 저 너무 힘들어요.

죽고 싶어요.


'짤랑'

방울소리다.

꿈이 확실하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어떠한 소리.

어릴 때 이따금 들렸던, 이 익숙한, 아 방울이다.


화들짝 잠에서 깬 정희의 두 뺨에 이유 모를 눈물이 흐른다.

어젯밤 한참을 쳐다봤던 아빠의 방문을 쳐다본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을 다시 자고 일어났을 때, 아빠는 정희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되뇌며 마침내 눈물을 그친 그의 모습에서 온갖 괴리감이 들었다.

어린 정희는 그땐 몰랐다.

괴물 같은 얼굴로 어린 딸과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 지난날의 미안함보다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그의 결정을.



*



학교에서 돌아온 정희가 오랜만에 아빠가 웃는 모습을 보았다.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섣달그믐달. 한 해와 인사하는 날,

아빠는 그토록 열망했던 자신의 책상 위에서 자살했다.


책장에 어지럽게 꽂아있던 책들은 가지런했고 아무도 열지 못하게 했던 나무 서랍장도 활 짝 열려있었다.


아빠의 의해 만들어진 소설 속 수많은 사람들이 재가 되어 허공으로 타오른다.

미처 다 타지 못해 남아있는 원고 앞 장을 넘겨보니 할머니 사진이 있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작고 부서질 듯 하얗고 애처로운 눈이 내리던 오후, 애달피 울던 산 새의 등을 타고 아빠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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