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상처 주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하여
13개월만에 운동을 재개했다.
오랜만에 때도 밀었다.
잠이온다.
11시에 회의가 있다.
멍한 상태로 티비를 키고 넷플릭스와 유튜브사이에서 방황하다, 뭐라도 써야겠다 싶어 책상에 앉았다.
나에게 코미디 극본을 쓸 수 있는 힘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 뜬금없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사회비판, 영화비평 물고 뜯고 싸우고 때리고 하는 그런 글 말고,
공고히 쌓아올린 내 결론은 이것이다 일방적으로 내던지는 논설문 말고,
긴 하루의 끝, 깔깔 웃게하여 여흥에 미소지으며 잠들게 할 수 있는 그런 극을 쓸 수 있을까
자문하기 시작했다.
자답이 나오지 않는다.
글로 생각을 표현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들고 가장 먼저 쓰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부모님의 자서전이었다.
열 한살쯤의 생각이다.
좀 더 연단하여 긴 호흡의 글을 가지런히 정리해 낼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수고스러운 젊은 날을 지나 느즈막한 겨울, 어느 오후를 고이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단 한권씩만 만든 당신의 이야기를 손에 말없이 쥐어주고 빙긋이 웃으며 느리게 목례하리라.
오래된 다짐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한 그 날,
언약의 날, 나의 당신에게 영원한 서약으로 나의 시선으로 본 우리의 이야기를 오롯이 책에 담아 주리라.
얼결에 주어져버린 행복의 크기에 놀라 쉬이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다독이며
태어나 처음으로 몇 날밤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던 새벽녁,
이국적인 하늘 위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리 다짐 했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 마음을 가다듬은 건, 2019년 10월 19일.
사랑이었는지, 동정이었는지, 우정이었는지, 동지애였는지,
이름 모를 들풀같던 그 관계마저 돌연 끝이나고
완전한 혼자만의 토요일을 보내며 코리안 타운을 헤메던 그 날,
오랜만에 서점에 가 책 한권을 골라 근처 카페에서 단숨에 읽어낸 그 날,
돌아오는 지하철, 휴대폰 메모창을 열어 어색히 절뚝절뚝 글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오랜시간 방치 된 쓰는 근육은 근력이 떨어진지 너무도 오래.
힘이 없어, 호흡이 딸려, 단편적인 생각 몇 자 쓰는데도 헥헥.
그리고 지금,
얼렁뚱땅 체력이 생기자 중거리까지는 어떻게 간신히 뛰어보겠는데,
과연 마라톤을 뛰어낼 힘이 나에게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니 그보다,
나를 위한, 나의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한, 나의 감정을 배설하기 위한 나의 글 말고,
넘실넘실 사랑이 그득차 흐를 듯 굽이치는 그 마음을 감당 할 수 없어
글에 담아낼 수 밖에 없구나 깨달아 버린 그 맑던 다짐을 닮은 글을 실현해낼 각오가 나에게 있느냐 묻고싶어졌다.
살을 빼기 위한,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는 대충의 운동 말고,
보는 사람마저 경건해 지는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스포츠를 위한 체력훈련에 대한 각오가 나에게 섰느냐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를 웃게하는 글,
누구도 흠집내지 않고, 누구도 상처주지 않고, 내가 본 세상을 전할 수 있는,
모두가 유쾌할 수 있는 코미디 극본.
현인아 쓸/할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