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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in Mar 03. 2021

일과 설렘과 권력의 상관관계

(feat. 내 두번째 인생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2019년 作

“일이 주는 설렘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바로 권력을 만났을 때다”


2008년에 정지오가 뱉은 이 대사가 왜 인지 정확히 뜻 모르는 채로, 그러나 묵직히 몸 저변에 가라앉아 있다, 최근 일련의 삶의 작은 사건들과 만나 비로소 정서로 떠올랐다. 


마침내 이해한 것이다. 

일과 설렘과 권력의 상관관계.



왜인지 성경이 떠올랐다.

무신앙인으로 평생을 살다 어느 날 마주한 성경에 대하여, 따지듯 물었던 원초적 질문. 

'그래서 하나님 계시면 도대체 왜 세상이 이따위가 됐는데요?' 한 지난 날이 기억났다.


죄 때문이며, 죄의 근본은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즉 교만에서 시작되었다 들었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것이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왜 죄인지, 야망 없이 사는 사람들을 꽤나 한심하게 바라보던 나는 이를 오랜 시간 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이는 현재의 혹은 꿈꾸는 지위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자아실현 그 자체에 목적성을 두었느냐 타인의 시선이 개입 되었느냐의 문제라는 것.


실제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괴리감을 노력이라는 건강한 방법 해소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위화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불온한 자들이 자존을 남을 통해 채우려는 그 한심함이 문제이다.


권력의 개입은 휘두르는 당신 외의 모든 상대의 열정과 설렘을 죽인다.

만일, 이 과정에서 일정의 쾌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확실히 잘못된 인간이다.



친구가 되기 전, 우리 모두는 아는 사람이라는 단계를 거치며,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이유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든 필요에 의해 기인함이 분명하다.  

혼자서는 회사를 운영할 수 없어 고용했을테며, 가르치기 위해 배우기 위해, 각자의 삶의 여정 중 많은 우연으로 인해 우리는 만났다. 


그저 알게 된 것, 만나게 된 것뿐이다.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서 있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지도 않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아마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의 방향을 향해 각자의 보폭에 맞춰 길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일테다.

저마다의 이유로 같은 공간에 그저 우연히 있을 뿐,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이 자리에 먼저 왔다는 이유로 옆 행인을 해하면 안되듯, 한 공간에서 각자의 위치로 만나게 되었다 해서 상대의 내면을 죽여서는 안된다. 


이는 단순한 기초 예의이다.


정지오가 왜 이렇게 목소리를 깔고 심오하게 이야기했는지 이제 알겠다.

기본을 학습하지 못한 자들이 넘쳐나는 탓이다.


도처에 퍼져 있는 이 미개종족으로부터 부디 한 영혼도 상처받지 말 길 바라며 모두의 청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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