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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현제 May 08. 2024

《마담 보바리》를 읽고 있습니다

저는 한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병렬독서를 하는데요. 요즘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도 같이 읽고 있습니다.

대략적인 내용을 아는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약간은 건조한 플로베르의 문체에 보바리 부인이 된 에마의 권태와 환멸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남편인 샤를의 무미건조함도 잘 느껴지고요. 시골에 살던 에마가 보바리 부인이 되면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문체에서부터 벌써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플로베르는 장면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작가라 19세기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시절 위생이 어땠을지도 같이 느껴져서 괴로운 측면도 있습니다. 가령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원통형의 칼라가 달렸으며 자루처럼 큰 주머니가 있는 프록코트'를 얼마나 자주 빨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지요(아니, 빨기는 했을까요?).

그래서 고전은 늘 재밌습니다. 우리는 결코 경험해본 적 없는 과거를 느껴볼 수 있음과 동시에 그때를 지금과 비교해보고 또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면서 놀라고 감동을 받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고전을 읽습니다.

지금, 딱 그런 대목에 왔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을 느낀다고 여겼더랬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에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책 안에도 인생이 있지만 우리는 책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에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마는 어떻게 의미를 찾아내려 할까요.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의 삶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 할까요. 기묘한 두근거림을 느끼면서 계속 《마담 보바리》를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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