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병렬독서를 하는데요. 요즘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도 같이 읽고 있습니다.
대략적인 내용을 아는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약간은 건조한 플로베르의 문체에 보바리 부인이 된 에마의 권태와 환멸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남편인 샤를의 무미건조함도 잘 느껴지고요. 시골에 살던 에마가 보바리 부인이 되면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문체에서부터 벌써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플로베르는 장면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작가라 19세기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시절 위생이 어땠을지도 같이 느껴져서 괴로운 측면도 있습니다. 가령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원통형의 칼라가 달렸으며 자루처럼 큰 주머니가 있는 프록코트'를 얼마나 자주 빨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지요(아니, 빨기는 했을까요?).
그래서 고전은 늘 재밌습니다. 우리는 결코 경험해본 적 없는 과거를 느껴볼 수 있음과 동시에 그때를 지금과 비교해보고 또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면서 놀라고 감동을 받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고전을 읽습니다.
지금, 딱 그런 대목에 왔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을 느낀다고 여겼더랬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에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책 안에도 인생이 있지만 우리는 책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에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마는 어떻게 의미를 찾아내려 할까요.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의 삶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 할까요. 기묘한 두근거림을 느끼면서 계속 《마담 보바리》를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