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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이 엄마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예민한 상태로 아이한테 어디까지 짜증을 낼 수 있을까?

by 팬지

아빠가 한국으로 떠나고 두 번째 주말을 맞았다. 금요일 저녁부터 둘째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난 아프면 더 많이 먹는 사람이라 아픈데 뭘 안 먹는 둘째 아이가 걱정됐다. 내가 억지로 먹인다고 해서 먹을 애도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저녁을 먹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얼마 먹지도 못하고 타게스무터 집에서 먹은 거까지 모두 개워냈다.


지금 날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첫째 아이에게 제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고, 토사물을 밟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준 후에 둘째 아이를 욕조에 넣고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속이 불편해서 개워낸 둘째 아이는 당연하게도 계속해서 찡찡 모드였다.

"밟아"라는 나지막한 첫째 아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옷을 다 벗기고 막 물을 끼얹으려던 나는 갑자기 속에서 뭔가가 머리 끝까지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둘째 아이가 울든 말든 첫째에게 다가가 나에게 이렇게 높은 소리가 날 수가 있을까 싶은 음조로 그야말로 익룡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밟지 말라고 했는데 대체 왜 밟았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정신도 없었다. 그냥 화가 끝까지 났다. 그동안 내 말을 듣지 않은 것까지 쌓인 것이 모두 제대로 폭발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보통 집에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다. 지금까지 둘이서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낼 일이 별로 없다. 한 명씩 전담하면 되니 말이다. 요즘 자율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첫째 아이를 단속하는 일이 버겁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다. 한 사람이 둘을 보다보니 항상 눈을 떼지 않고 감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말을 따라줄 거라는 믿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직 제대로 그 부분이 훈련이 안 된 그 친구는 매순간 나의 화를 건드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쌓였던 내 마음을 모두 쏟아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엄마 말을 안 듣는 거야?!!! 유치원에서 나올 때도 혼자 뛰어가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맨날 뛰어가니? 엄마 말을 이해 못하는 거야? 어려워????!!!!"

아이는 내 얼굴을 놀란 표정으로 1~2초 쳐다보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안아"

난생 처음 보는 내 얼굴에 불안감이 몰려온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하게 하나도 미안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 보다. 쌓였던 내 감정을 이렇게 다 쏟아내고 나니 후련함을 느낀 것이다. 어떻게 된 엄마가 애한테 화를 내고 후련함을 느낀단 말인가.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생기려고 하는 것도 잠시, 그래 그냥 난 그런 인간인가 보다 하고 인정해 버렸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다 보니 범수라도 내 말을 들어줬음 했나 보다. 나는 어른인데, 극도의 상황에 놓이니 애한테 화풀이를 하고 있다.


정말 이상하게도 방금까지도 조금의 후회나 반성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글로 쓰다보니 저절로 반성을 하게 된다. 이래서 뭐든 일기라도 써야 하나 보다. 지금 그때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다. 속이 후련해진걸 보니 그건 분명히 화풀이었던 것 같다. 가르친 것이라고 합리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범수가 알았을 것이다. 말을 안 들으면 엄마도 당연히 엄청나게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의 감정은 소중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순간에 난 TV 출연을 불사를 만큼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아이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는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오는 엄마들 중 한 명이 된 기분이 됐다. 아들TV 선생님이 화를 내면 안 되는 게 화를 내기 시작하면 점점 더더더 화를 내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지금 실감하고 있다.

오늘 점심으로 소고기죽을 끓이는데 범수가 참여를 원해서 하게 해 줬다. 근데 고기를 해동시키는 과정에서 고기가 너무 뭉쳐서 내가 조금이라도 풀어야 했는데,

"엄마 안 해!"

이러면서 나보고 하지 말라고 질색을 했다. 요즘 이 말이 나의 발작 버튼이다. 자기가 다 스스로 하지도 못하면서 나보고 손도 못 대게 하는데 너무 화가 난다. 나는 또 화를 냈다. 마치 노래방에서 처음에 목이 안 풀린 채 노래를 부르다가 한 1시간쯤 지나면 목이 완전히 풀려서 득음을 하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 화내는 그 톤의 목소리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을 느꼈다.

"니가 할 수 있으면 엄마가 다 하게 해 주지!!! 이렇게 할 거면 그냥 하지 마!! 나가!!!"

결국 범수는 부엌에서 쫓겨났다. 나는 범수를 앉히고 또 얘기를 나눴다. 냄비 앞에서보다는 좀 진정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손가락으로 범수의 머리를 탁탁 찍었다.

"니가 하고 싶다고 '바로 해야 돼'가 아니야. 니가 하고 싶으면 엄마한테 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엄마가 '그래 해'라고 해야 할 수 있는 거야. 니가 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안 돼'라고 하면, 하면 안 되는 거야"

이 얘기를 머리를 탁탁 찍으면서 말을 하니까 범수가 하지 말라면서 울기 시작했다. 범진이도 열감기에 시달려서 종일 찡찡대고 나에게 안겼다. 정말 그야말로 점심 시간은 카오스였다. 게다가 그때 범진이는 낮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졸리기까지 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얘기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밥을 먹이고(물론 범진이는 한 숟가락도 먹지 않았고 조금의 실랑이를 했지만 내가 항복하는 의미로 달라는 아기주스를 줬다.) 범진이를 재우러 갔다. 20분 만에 잠이 들었다.

드디어 첫째 아이와 단둘의 시간이 왔다. 아까보다는 더욱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범수야, 엄마가 화내면 무서워?" 이랬더니,

"엄마 안 무서워."라며 웃어 보였다.

아직 자기 표현이 서툰 아이라서 이 말의 의미가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괜찮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꼭 그렇게 혼나고도 몇 분 안 가고 장난치고 다시 나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준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미안해진다. 내일은 이 글을 쓴 계기로 그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조금은 차분하게 대화하는 식으로 가르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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