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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본 트릭 오어 트릭

진정한 할로윈을 보내다

by 팬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10월 31일은 할로윈(국립국어원에 따른 올바른 표기는 핼러윈)이었다. 할로윈은 독일 문화가 아니라 미국 문화이다. 독일에서는 오히려 11월 11일에 세인트 마틴탁을 보낸다. 약간 아주 약간 비슷한 풍습인데, 아이들이 밤에 등을 밝히고 나눔의 가치를 전하는 날이다. 범수가 카톨릭 유치원에 다닌 이후로 우리는 할로윈보다는 세인트 마틴탁 행사에 참여하곤 했다. 왜냐면 유치원에서 주관하는 행사라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사실 우리집 앞 거리는 할로윈 때 참으로 조용하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이 할로윈을 챙기는지 어쩌는지 전혀 몰랐다. 사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재작년엔가 어떤 아이들이 초인종을 눌렀던 적이 있는데, 그때 초콜릿을 줬는지 말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어찌됐든 이웃인 아랫집 아이들은 해마다 할로윈 파티를 갔고, 나는 그냥 분장을 하고 집에서 노는 줄 알았다. 올해도 멀리 이사 간 아랫집 아이들이 옛친구들과 할로윈 파티를 즐기러 왔다. 우리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가 미국인 친구가 할로윈 파티에 초대를 해줬다. 나는 사실 분장이 없었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에 힘입어 이번에 한국 갔을 때 마련한 한복을 아이들에게 입혔다. 나도 같이 한복을 입고 싶었지만 결혼할 때 맞췄던 한복은 치마는 어떻게 입을 수 있지만 저고리는 그냥 아예 들어가지가 않는다. 20kg 가까이 체중이 늘었으니 당연한 얘기겠지. 나의 좌절감은 뒤로 하고 얼른 준비해서 친구 집으로 출발했다.

도착하자마자 사자보이즈 분장을 한 친구 아들내미가 날 반겨 주었다. 케데헌의 인기는 대단하다. 나의 선견지명으로 친구 아들내미 첫돌 때인가 갓을 선물한 적이 있다. God이 항상 함께하길 바란다는 의미로 말이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이 아들내미는 그 갓을 쓰고 완벽한 사자보이즈가 되었다. 나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엄청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정신 없이 보내고 있는 와중에 범수는 배가 고파서 친구가 미리 요리해 놓은 파스타를 흡입했다. 범진이는 오자마자 집에 없는 장난감을 갖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6시쯤 되었으려나? 트릭오어트릿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친구 아들내미 때문에 우리는 허겁지겁 준비해서 트릭오어트릿을 하러 떠났다. 친구 남편은 집에 남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급한 대로 친구가 주는 호랑이 옷을 입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에 나는 조금 신이 났다. 나와, 친구, 범수, 범진이, 친구 아들내미, 딸내미 이렇게 여섯이서 그 동네를 돌면서 트릭오어트릿을 했다. 나는 아무 집에나 다 들어가는 건줄 알았는데 할로윈 장식이 되어 있는, 특히 호박이 놓여져 있는 집의 초인종만 누르는 거라고 했다. 이걸로 지금까지 지나온 할로윈의 의문이 모두 풀렸다. 우리집 거리에는 호박 장식을 한 집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애들이 안 오는 거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 별로 없는 건지, 아니면 할로윈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이 많이 사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친구네 동네는 호박 장식이 있는 집이 거의 한 집 걸러 한 집이었다. 나는 애들 한복에 있는 복주머니에 사탕을 담으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탕 주는 집이 많아서 반만 도니까 복주머니가 한가득 찼다. 우리 애들은 신이 났다.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사탕이며 초콜릿이 복주머니 한가득 들었는데 자꾸자꾸 더 받으니까 복주머니가 넘치는 만큼 즐거움이 한도 초과가 됐다. 처음으로 할로윈 인사도 배웠다. "트릭오어트릿!"하고 사탕을 받으면 "당케! 해피 할로윈!" 이러면서 다음 집으로 이동했다. 자신없었던 목소리가 한 집, 한 집 거칠 때마다 거듭해서 커졌다. 도중에 피곤한 둘째가 자꾸 안아달라고 해서 내 팔이 부셔지는 줄 알았지만, 여차저차 하면서 동네 돌기를 마무리했다. 친구 집에 돌아와 복주머니를 펼치며 달콤한 간식을 얼마나 받았는지 새는 범수 얼굴에서 행복이 피어났다. 범수는 그 간식을 먹는 것보다 받는 그 행위가 더 기뻤던 것 같다. 범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달다구리를 허락도 없이 꺼내서 씹어대고 있었다. 우리집 사고뭉치다운 면모였다. 바쁜 한 주의 끝자락인 금요일 저녁이라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정말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할로윈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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