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쓸모

사회성이 낮은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

by 팬지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숫자를 좋아하는 범수가 이제 칠판에 숫자를 쓰기 시작해서 다른 아이들도 숫자를 배울 수 있게 되었어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범수가 유치원에서 사회성이 떨어져 친구들과 잘 못 지내고 선생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피드백도 종종 들었지만 만들기를 잘하고 숫자 개념이나 논리적인 사고가 뛰어나다는 긍정적인 피드백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나는 가장 감동했고 벅찬 기쁨을 느꼈다. 그게 뭐라고 나는 왜 이렇게 벅차게 기쁜걸까?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니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 자체가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자격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범수에게 갖는 가장 큰 걱정이 과연 이 아이가 사회에서 적응하고 그 일원이 되어 밥벌이를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번에 아주 작은 씨앗 같은 희망을 얻은 것이다. 안 그래도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돈도 벌고 사회에 기여도 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인데 이 믿음이 유아기 자폐증 진단을 받은 범수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다는 자그마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쓸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남에게 이용을 당하는 것은 안 된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어감에서의 차이는 분명한데 정확히 정의하자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사람을 도구로써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보통은 개인의 이득이지만 어떤 단체나 공동체 또는 국가나 정부와 같은 조직의 이득일 수도 있다. 대개는 이용당하는 사람에게 이득은 없다.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당하는 사람은 서로 관계가 상호적이지 않고 일반적인 경우가 많다.

쓸모가 있다는 것은 서로 상호적인 관계의 두 사람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또는 공동체의 이득을 위한 활동을 하며 서로에게 보상이 주어지고 같이 성장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정리를 해보면서도, 두 표현의 뉘앙스는 분명히 알겠지만서도, 같은 상황이지만 누군가의 의도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또 관련된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용당했다고도, 쓸모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으로는 구분하기가 힘든 개념인 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적인 의식을 갖고 쓸모가 되려고 노력하면 동시에 자기 효용성까지 느끼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주체성, 주인의식이 공동체 속에서의 삶에서 중요한 덕목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범수는 그런 거 아직 모르고 자기가 좋아서 숫자 열심히 썼더니 우연히 그런 좋은 작용이 일어난 것뿐이고, 나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을 크게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럴 때 뿌듯함을 느끼는 거라고 말로 설명하고 알려줘야겠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