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이 깊어 잠들기 전까지, 내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계바늘을 따라가는 하루의 리듬보다는, 어디론가 무작정 떠밀려 가는 듯한 분주함에 지쳐 있던 시절이었다. 남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감, 끝없이 들어오는 알림과 마감 시간, 그리고 좀처럼 멈추지 않는 잡념들은 내 일상을 산만한 파편들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매일같이 튀어 오르기만 하는 생각의 조각들 속에서, 나는 어쩐지 삶에 통일된 리듬감이 사라져 버렸다고 느꼈다.
낮 동안에는 업무와 과제, 인간관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선을 옮겨가며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밤이 되면 미뤄 두었던 고민들이 고개를 든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하루치의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려오는데, 어떤 날은 그것이 너무 강렬해서 잠들 수가 없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라는 마음을 처음 품은 것은 바로 그런 새벽녘이었다.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을 떨쳐 내려 무작정 문밖을 나선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해방감에 살짝 들뜬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밤공기는 생각보다 차갑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았다. 낮에 비해 훨씬 줄어든 소음 덕분에 오히려 내 호흡이 또렷하게 들렸고, 어둑한 길 위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한밤중의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내 마음의 박자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깨달음은 단지 로맨틱한 낭만 정도가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설계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다.
실제로 산책의 긍정적 효과는 여러 연구로도 입증된 바 있다. Berman, Jonides & Kaplan(2008)의 연구에 따르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걷는 활동은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고 주의 집중력과 정서적 안정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완전히 자연에 둘러싸여 있지는 않지만, 밤이 되면 도시는 낮과 또 다른 표정을 짓는다. 인적이 드문 거리나 공원은 마치 낮의 번잡함이 사라진 무대처럼 보였다. 그 무대 위를 천천히 거닐 때, 나는 점점 “보이지 않던 내면의 목소리가 다시금 선명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낮에는 이렇게까지 내면의 소리를 듣기가 어려운 것일까?” 아마도 너무 많은 자극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 해결해야 할 일, 가정에서의 의무, 그리고 휴대전화에서 끊임없이 울려대는 각종 알림들까지. 끊임없이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잠시 멈춰 서는 것은 오히려 나태하거나 뒤처지는 행위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과부하 상태로 내달리다 보면, 스스로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른 채 목적지 없는 달리기를 계속하게 된다.
그렇기에 밤의 정적은 내게 더욱 소중했다. 깜깜한 어둠 한가운데를 조심스레 걸으며,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나는 묵직하게 쌓여 있던 긴장감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고요한 환경에서만 들을 수 있는, 혹은 고요해야만 비로소 인지하게 되는 숨소리와 심장 박동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어떤 멜로디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그 멜로디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낮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내 몸과 마음의 신호가 하나둘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수면 전문가 Walker(2017)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생체 주기(circadian rhythm)가 존재하여 일정한 주기에 따라 에너지를 분배하고 회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인의 생활 패턴은 이 생체 주기를 자주 거스른다. 잠이 부족하거나, 카페인과 알코올에 의존해 억지로 깨어 있거나, 기기의 빛에 노출되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러한 습관들로 인해 에너지의 흐름이 틀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정신은 늘 예민한 반면 몸은 쉽게 피로해졌다. 그러나 밤중에 한 걸음씩 내디디며 조용히 숨을 고르다 보니, “나는 스스로 균형을 되찾는 과정을 천천히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밤중 산책을 시작한 뒤, 내 일상에는 작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먼저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아침을 맞이하는 태도였다. 이전에는 늦은 밤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자기 전까지도 온갖 정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정신을 소진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짧게나마 거리를 걸으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중요하지 않은 생각들은 흘려보내려 노력한다. 그렇게 불필요한 잡념들을 걸음과 함께 내려놓고 나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훨씬 맑은 정신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낮에도 “조금 더 여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리듬”이 내게 생겼다. 물론 업무나 일상의 과제는 여전히 내게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밤의 산책에서 잠시라도 ‘멈춤과 몰입’을 연습했기에, 낮에는 다소 벅차더라도 눈앞의 과제를 조금 더 차분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잠깐의 막힘도 쉽게 좌절감으로 이어졌다면, 이제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마음의 버퍼가 생겼다. 이는 단순히 기분 전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Miyazaki, Park & Lee(2011)의 연구에서도, 천천히 걷는 활동과 같은 저강도 운동은 심신의 긴장 완화와 더불어 긍정적인 심리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내 일상이 “유기적으로 흐르는 ‘파동’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낮의 분주함, 저녁의 여유, 그리고 밤의 정적이 마치 하나의 악장처럼 연결되고, 내가 그 안에서 각기 다른 속도와 박자를 즐기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 흐름이 파편화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쏟아지는 업무나 인간관계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언제 멈추고 언제 몰입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침의 맑음을 더 소중히 활용하고, 낮에는 효율적인 집중을 하되, 저녁과 밤에는 과감히 속도를 늦추면서 “나만의 리듬을 스스로 조율”하고 있다.
심리학자 Csikszentmihalyi(1990)의 ‘몰입(flow)’ 개념은 이러한 과정과도 밀접하다. 몰입 상태는 자신이 하는 활동에 완전히 빠져들면서 주변 시간과 공간까지 잊게 되는, 깊은 만족과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마다 몰입의 방식은 다르지만, 내 경우에는 이 몰입을 위해 먼저 “텅 빈 마음의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한밤중 산책은 그 공간을 마련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내 걸음에만 집중하며, 주변 소리에만 귀 기울이다 보면, 잡다한 걱정과 불안이 사그라든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몰입할 수 있는 내면의 여백이 남는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산책이 익숙하거나 편안했던 것은 아니다. 불이 꺼진 밤거리를 혼자 걷는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낯섦이 따른다. 그러나 “낯선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우리의 멜로디를 발견하게 된다.” 주변 환경이 잘 보이지 않을수록, 오히려 내면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진다. 발에 닿는 지면의 질감, 몸이 움직일 때마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 가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용한 기척까지. 낮에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섬세한 자극들이 하나둘 확대되고, 그 안에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선명해진다.
이러한 깨달음이 주는 기쁨은 내 하루를 전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힘으로 확장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가급적 간단한 스트레칭과 함께 호흡을 정돈하고, 점심 무렵에는 잠깐이라도 산책을 하며 머리를 식힌다. 저녁에는 가능한 한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고, 더 이상의 무분별한 자극 대신 조용한 음악이나 독서로 밤을 맞이하려 한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생각이 많아질 때면, 다시금 가벼운 옷차림으로 동네를 나선다. 그렇게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몰입과 휴식이 자연스레 교차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체화하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변화를 단숨에 이루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업무나 인간관계에서 떠밀려오는 불안감에 다시 빠져들기도 하고, 늦은 밤 무기력함에 지쳐 운동화 끈을 묶는 것이 귀찮아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기억한다. “내가 한밤중의 정적에서 발견했던 깊고 부드러운 박동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주었다.” 이 길은 화려하지도, 대단히 거창하지도 않지만, 그 어떤 부침 속에서도 의연하게 내 중심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되어 준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밤의 고요를 좇는 이 걸음들이 내 삶에 새로운 멜로디를 불어넣었다고. “내 삶에 일정한 파동이 생기고, 그 파동 속에서 마음의 안정과 창의성이 자라난다.” 이 파동은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에서도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일종의 리듬이다. 한밤중 산책에서 얻은 힌트는 결국 단순한 걷기의 즐거움을 넘어,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내일을 어떻게 맞이할지를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힘”을 내게 선사했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나는 내 인생의 악보에 보다 풍성하고 조화로운 음들을 하나씩 채워 넣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더 깊고 진솔하게 알아가는 과정”임을 매일 밤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누군가가 어둠 속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고요함에서 스스로의 리듬을 발견해보길 바란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나처럼 밤의 산책에서 “삶을 재정비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깊은 어둠이 깔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반짝이는 빛을 알아볼 수 있듯이, 늘 요란하고 분주한 환경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소중한 부분들이 조용한 밤거리에 스며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감히 문밖을 나설 용기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인내심일 뿐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원했던 “삶의 아름다운 리듬”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맺는 시간까지, 우리의 일상은 때때로 똑같은 장면이 무한히 재생되는 영화처럼 느껴지곤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비슷한 시간에 출근 준비를 하고, 비슷한 업무를 처리하며, 저녁이 되면 어느새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잠시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대로 잠에 든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며, “왜 나는 이런 루틴 속에 갇혀 사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때로는 그런 반복이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드는 원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반복되는 하루가 반드시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많은 작가와 심리학자들은 일상의 반복 안에 삶의 의미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단지 우리가 그 의미를 ‘의식적으로’ 발견하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심리학자 Mihaly Csikszentmihalyi(1990)는 반복적이거나 평범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몰입(flow)’ 상태를 경험할 수 있으며, 이는 삶의 만족도를 크게 높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평범 속의 특별함’을 포착하여, 반복되는 하루를 의미로 가득 찬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까?
첫째로, “아침을 시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는 대신, 잠시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져보자. 오늘 하루는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은가? 내가 가장 집중하고 싶은 가치나 목표는 무엇인가? 단 몇 분이라도 이 질문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다 보면, 자동 조종 상태(auto-pilot)처럼 흘러가던 일상이 깨어난다. 결국 “하루의 시작에서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삶이라는 거대한 퍼즐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강력한 단서가 된다.”
물론 아침 시간이 늘 분주하기에, 이 질문을 습관으로 정착시키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습관은 작은 반복에서 시작된다. 매일 아침, 1분이면 충분하다. 침대에서 눈을 뜬 뒤 잠시 앉아,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가장 절실한 물음을 꺼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질문만으로도 이미 하루를 능동적으로 맞이할 준비를 마친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짧은 질문들이 쌓이다 보면, 우리는 점점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을 얻게 된다.
두 번째로, 하루를 ‘의식적으로 마무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것은 “밤이라는 문을 제대로 닫아주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와 TV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우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을 향해 가고 있고, 그렇게 무심코 하루를 마친다. 그러나 밤의 시간은 사실 우리의 내면을 정돈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키우기에 아주 적합한 순간이다. Emmons & McCullough(2003)의 연구에 따르면, 매일 밤 몇 가지 작은 감사의 순간을 돌아보고 적는 습관은 심리적 웰빙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런 작은 감사의 실천은 우리에게 “하루를 ‘의미의 그릇’ 안에 차곡차곡 담아낸 뒤 단단히 뚜껑을 덮는 느낌”을 준다.
가령 오늘 하루 힘든 업무를 처리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배운 점이나 도움을 준 사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날이라도, 문득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느꼈던 사소한 즐거움을 되짚어보자. 그 순간들에 대한 감사 한 줄을 노트에 적는다면, “밤의 감사를 통해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길”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거창한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주 작은 감사가 꾸준히 쌓일 때, 삶의 의미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작은 변주를 통해 반복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또 하나의 열쇠다. 우리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길로 출근하고, 비슷한 업무를 처리하고, 같은 식사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미세한 변화’를 의도적으로 심어두는 연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늘 타던 버스에서 내릴 정류장을 한두 정거장 앞당겨 걸어보는 것이다. 혹은 점심시간에 가던 식당 대신 낯선 골목길의 작은 가게를 탐색해 보는 것도 좋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작은 변주는, “반복되는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창의적 틈새”를 만들어 내고, 그 틈새가 일상에 신선함을 더한다.
여기서 핵심은, 이런 ‘작은 변주’가 “삶을 전체적으로 뒤흔들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돕는 데 충분하다”는 점이다. 반듯한 악보 위에 한두 개의 색다른 음표를 추가함으로써, 동일한 멜로디가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적은 변화로 큰 인식 전환을 맞이할 수 있다. 반복은 어쩌면 ‘안전’과 ‘안정감’을 주지만, 그 반복 속에 하나의 ‘새로움’을 삽입하는 순간, 우리는 그 길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견하게 된다.
넷째로, “관계 맺기를 재해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매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지겨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바라보고,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섬세하게 느껴본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직장에서 매일 같은 동료와 대화할 때, 상대가 그날 기분이 어떤지 혹은 전에 언급했던 개인적 고민은 어떠한지 조그맣게 물어봐주는 것만으로도 “반복되는 대화가 삶의 온기를 나누는 순간”으로 바뀔 수 있다. 인간관계는 단순히 ‘반복된 만남’이 아니라, 늘 조금씩 달라지는 관계의 결을 포착하는 예술이다.
연구에서도 이러한 ‘관계적 주의(attentional engagement)’가 개인의 정서적 만족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Brown & Ryan, 2003). 즉, 우리가 사람과의 만남을 기계적인 ‘의무’로 치부하지 않고, 상대와의 대화나 교감 속에서 “날마다 조금씩 다른 온도와 색깔”을 발견하려 할 때, 그 관계는 더 이상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성장과 소통의 장이 된다.
다섯째로, “지속적인 자기 점검과 목표 재설정”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반복의 의미를 찾으려 애써도,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목표나 가치가 애매모호하다면 금세 무력감이 밀려올 수 있다. 따라서 아침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밤의 감사 일기를 통해, 주기적으로 ‘지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그 방향성을 조금씩 다듬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계획표 작성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목표를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반복되는 하루’가 주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나 극적인 변화를 동경한다. 물론 때로는 그런 대담한 도전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순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삶을 유지해야 하고, 그 일상의 반복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결국 “반복되는 하루의 의미는 환경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 반복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 태도 자체가 가장 강력한 힘”임을 강조하고 싶다. 의미라는 것은 누군가 정해 주는 것도, 특별한 사건이나 거창한 업적에서만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의미는 “매일 조금씩, 작은 순간마다 주의를 기울이고 감사하며, 변주를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큰 맥락을 가진 삶’으로 바라보게 될 때, 비록 반복되는 일정이라 해도 그 안에 담긴 무수한 가능성과 성장의 씨앗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아침에 질문하고 밤에 감사하는 습관은 단순한 루틴 이상”이 된다. 아침의 질문은 곧 우리의 하루를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해 주는 나침반이며, 밤의 감사는 그 하루를 아름답게 갈무리하여 내일을 위한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 이런 식으로 매일의 반복 속에 깃든 의미를 찾아내고 쌓아 나갈 때,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반복이 곧 인생의 중요한 리듬이자, 가장 진실한 성장의 무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은 거창하거나 특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의식적인 질문과 감사, 작은 변주와 관계 맺기의 재해석, 지속적인 자기 점검과 목표 확립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그 과정을 통해 삶의 하찮아 보이는 디테일마저 “의미라는 이름의 실로 엮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단순한 루틴이 아닌 하나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악장”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 악장은 우리 각자의 고유한 선율로 완성되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언제든 다시 연주될 수 있다. 이는 “반복의 굴레가 아니라, 내 삶을 조금 더 풍성하고 빛나게 만드는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
“반복되는 하루는 그 자체로 예술이며, 의미를 발견하고자 마음먹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예술가가 된다.” 우리의 매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더 이상 지루하거나 답답하게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그 안에 숨어 있는 무수한 가능성의 씨앗들을 찾아낼 수 있길 기대한다. 아침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밤이 되면 작지만 소중한 감사의 목록을 적어보자. 그렇게 하루를 음미하고 곱씹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새로운 의미로 가득 찬 무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