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과연 지금이 맞을까?” 하는 물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은 삶의 기로에서 망설임을 붙든 상태인지도 모른다. 한 번 결심하고 싶어도 두려움이 앞서고, 주변의 시선이나 내면의 불안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다 보면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게 되지만, 어쩐지 용기가 부족해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 질문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듯, 그 말이 우리 내면을 흔들고 새로운 도전을 재촉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살면서 가장 큰 후회는 대개 “미리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에서 비롯된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요소를 싫어하여, 자꾸만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망설임이 깊을수록, 그 뒤에 이어지는 행보가 인생에 강렬한 변화를 일으키곤 한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말 한마디가 단지 허무한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우리는 이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볼 필요가 있다.
망설임의 끝에서 피어나는 용기
긴 고민의 시간은 때로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새로운 일에 뛰어들자니 잘할 수 있을까 두렵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자니 인생이 무기력해지는 기분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삶이 제자리걸음인 듯한 답답함에 빠지고 만다. 문제는, 이 망설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정말로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망설일 때, 사실 가장 두려운 건 “내가 과연 이 선택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안정적인 구조 안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혹시 실패했을 때의 상처, 주변의 시선, 경제적 부담 등을 떠올리면, 차라리 시도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쪽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이런 심리는 전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싫어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설임의 감정에는 또 다른 면도 있다. 그것은 곧 “나는 이 새로운 길을 진심으로 고민할 만큼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이직이나 유학, 창업 같은 큰 결정을 앞두고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 변화가 자신의 삶에 절실함을 깨닫고 있음을 방증한다. 망설임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뒤에 내재한 열망 역시 강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망설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래도 해보자”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 한마디 결심이 삶을 단번에 바꿔놓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의지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하는 건 분명하다. 주저하다 어느 순간 “그래,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지인이 있었다. 그는 안정된 회사를 다니며 무난히 살아왔지만, 문득 한계를 느끼고 퇴사를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그 좋은 회사를 왜 나가냐”며 만류했지만, 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과감히 발을 뗐다.
“결국 망설임을 거쳐 결심하게 된 도전은, 그만큼의 간절함과 열망을 품고 있다.”
그는 그렇게 퇴사 후, 창업을 하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매번 힘들 때마다, 망설이던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했다면, 이 길이 분명 의미가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의 선택이 옳았냐의 문제를 떠나, 그는 최소한 인생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확신 속에서 무언가를 시도해볼 용기를 얻은 것이다.
사람들은 망설일 때의 불안을 어떻게든 없애고 싶어한다. 하지만 불안은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안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내가 왜 이리 불안하지?”라고 자책하면, 망설임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차라리 “불안하지만, 이 불안이 내게 주어진 에너지가 될 수 있어”라고 수용하는 편이 현명하다. 불안은 집중력을 높이고, 나를 각성시켜 과감하게 움직이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망설임 끝에서 피어나는 용기”는 결국 자신의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데서 나온다. 그 용기는 늘 씩씩하고 당당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때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그 과정을 겪어내는 동안 내면이 더욱 단단해진다. 그러니 망설인다고 해서 자신이 겁쟁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망설임은 당신이 인생의 큰 전환점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며, 그 고민이 결국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망설임에서 벗어나 도전을 선택하려면, 결심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결심은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한다. “이제 시작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내 자신에게 약속을 하는 셈이 되므로 이 결심을 지키지 못하면 큰 실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결심을 미루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 하기도 한다.
결심은 단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걸 하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즉시, 우리의 뇌와 마음이 목표 지향적으로 재설계되기 시작한다. 예컨대 “한 달 안에 책을 한 권 쓰겠다”고 결심했다면, 하루하루 글쓰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생긴다. 이 압박은 귀찮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나를 움직이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결심은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기제이기도 하다. 만약 결심하지 않았다면, “그냥 해보려고 했는데…”라며 흐지부지 넘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확실히 결심을 하면, “어떻게든 해내야지”라는 동기가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감과도 깊이 연결된다.
사람들은 흔히 “조금만 더 준비하고,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그때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에 완벽한 타이밍이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모든 변수가 깔끔히 해결되는 순간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완벽한 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불완전한 현재를 적극 수용하라는 것이다.
한 친구는 대학 시절부터 해외 여행을 꿈꾸며 “일단 돈 좀 모으고 영어 실력 좀 더 키운 다음에 갈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사회인이 되고 나니 바빠지고, 결혼 후에는 또 다른 책임이 늘어나더니, 결국 “이제는 더 이상 쉽지 않다”라는 하소연만 남았다. 그가 간과한 건, “언젠가”라는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는 동안, 젊음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고 꿈이 바랬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고, 완벽한 순간을 기약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다소 부족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그 순간이라도 도전을 시작하면 그 과정을 통해서 부족함을 채워나갈 수 있다. 준비가 완벽하기를 기다리다 보면, 실제로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한 채 인생의 한 장이 지나갈 수 있다.
결심의 무게가 클수록, 우리는 긴장 속에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게 된다. 가령 “나는 올해 5kg을 감량하겠다”고 결심했다면, 단순히 말로만 해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식단과 운동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야 하고, 목표 일정을 설정해야 하며, 진행 상황을 기록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선언해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이처럼 결심이 행동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말이 진짜 힘을 발휘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식단 조절을 하다 보면 유혹도 있고, 운동하기 귀찮을 때도 많다. 하지만 결심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자각이 우리를 다시 길 위로 이끈다. “결심은 완벽의 약속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자기 다짐”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면 작은 실패나 실수 앞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결심의 무게를 견디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얻는 가장 큰 보상은 ‘확장된 가능성’이다. 내가 이룰 수 있는 성과나 결과만이 아니라, 도전을 통해 얻게 되는 경험, 시야의 확장, 인맥의 변화 등. 그러한 모든 요인이 나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 이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도중에 예상치 못한 장애로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으나, 그 과정에서 배운 건 단순히 집안에 앉아 걱정만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은, 무대 밖에서 구경하는 대신 무대 위로 직접 올라가는 삶이다.”
물론 무대 위는 긴장된다. 관객의 시선, 스포트라이트,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경험과 만남을 얻게 되고, 점점 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 결심이 왜 중요한가? 바로 그 무대에 오르는 표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지금부터 시작하겠다고 결심했으면, “내일부터, 혹은 바로 오늘부터” 실행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종종 사람들이 실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미루기 습관, 주변 잡음에 대한 방치, 의욕 과잉으로 인한 번아웃 등.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몰입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면 집중력은 분산되고, 한 일이 끝나지 않은 채 다른 일에 손을 대어 시간이 비효율적으로 소모된다.
반면, 지금 이 순간 몰입하기를 선택하면 한정된 시간을 훨씬 가치 있게 쓸 수 있다. “내가 지금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인식하고 집중하려고 애쓴다면, 짧은 시간에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루 30분이라도 온전히 몰입해서 운동하거나 공부하면, 대충 몇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시간을 붙드는 또 다른 핵심은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근거한 일정 구성’이다. 예를 들어, 내가 건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면, 하루 일정에 운동을 고정 배치해두어야 한다. 내가 책을 쓰고 싶다면, 매일 아침 혹은 저녁에 글쓰기를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아무리 주변일이 바쁘더라도,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그를 위한 시간을 반드시 비워두는 식이다.
“시간은 목표와 가치를 향해 흘러가도록 설계되었을 때 가장 빛난다.”
많은 사람이 시간 부족을 호소하지만, 실제로는 자잘한 일에 뺏기는 시간이 의외로 많다. SNS를 무심코 열어보는 습관, TV 앞에 장시간 앉아 있는 습관 등. 조금씩 줄여 보면 하루에 1~2시간을 쉽게 확보할 수도 있다. 이처럼 불필요한 소비를 덜고, 진짜 필요한 활동에 시간을 투입하는 것, 그것이 ‘시간을 붙드는 법’의 핵심이다.
어떤 결심이든, 시작할 때의 열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식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 피드백을 주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글쓰기를 1주일간 매일 30분씩 실천했다면 그 성실함을 칭찬하고, 작게라도 성취감을 기록해두는 것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2주 연속 꾸준히 운동했다면, 몸무게가 줄었든 늘었든 상관없이, 그 노력 자체에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작은 습관이 일상의 동력을 유지시킨다.”
이는 자기연민과도 맥락이 통한다. 완벽히 해내지 못해도, 중간에 흔들려도, 적어도 내가 한 만큼은 인정을 해줘야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붙드는 가장 큰 적은 ‘예상치 못한 변수’다. 계획대로 하루가 굴러가지 않을 때, 사람들이 하는 실수는 “아, 망했다”라며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늘 돌발 상황이 생긴다. 할 일이 밀리고, 누군가가 협조하지 않고, 몸이 아파서 하루가 날아가기도 한다. 그럴 때 유연한 태도를 유지하면, 남은 시간을 활용해 계획을 조정하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변수는 계획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창의적 해결을 이끌어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말처럼, 상황이 바뀌면 그에 맞춰 우선순위를 재검토하고, 다른 날에 보충할 방안을 찾는 식으로 대처하면 된다. 한 번 삐끗했다고 모든 걸 접어버리면, 다시 시작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대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 하루 역시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물음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서 가장 직설적인 문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음 한 구석에서 “언젠가 해야지”라고 몇 년째 말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은 흘러가고, 어느 날 거울을 보며 뒤늦게 “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하고 놀랄 수도 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질문에 ‘지금’이라고 답하지 않는다면, 한없이 시간을 미뤄둘 뿐이다. 물론 현실적 여건이나 준비 상태를 무시하고 무작정 뛰어드는 건 어리석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는 게 답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순간은 거의 오지 않거나, 이미 왔다가 지나가 버린 뒤에 깨닫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을 붙들고 행동해야 한다.” 아무것도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가 한 걸음 내딛는 바로 그 시점이 시작점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작은 상상하지 못했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도 뭔가 해야 하는데…”라고 망설이는 중이라면,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보길 바란다. 혹시 실패할까 두려운지, 아니면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또는 정말 여건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건지. 그중 상당수는 사실 마음먹기에 달려 있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할 걸 그랬어”라며 후회하는 것보다는, 조금 불완전해도 지금 출발해보는 편이 인생에 훨씬 흥미롭다.
이 책을 쓰면서, 나 역시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물음을 나에게 던졌다. 수십 번 고민하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국 펜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도 못 할 확률이 높고, 결국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워도 ‘시작’이 없으면 모든 게 공상이 될 뿐이다. 실패를 해도 좋다. 실패 속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고, 그 길로 또 다른 길을 열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한 걸음을 옮긴다면 내일의 나는 전혀 다른 세상을 향해 눈을 뜰 수도 있다."
우리가 인생을 춤추게 만드는 건 굵직한 결정 하나가 아니라, 매 순간 “이 정도면 됐다”는 안주가 아닌, 한 번 더 나아가보겠다는 용기라고 믿는다. 그 용기는 아무리 작아도, 불안을 이기고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결국,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물음에 ‘지금!’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소수의 답변자가 때로는 세상을 바꾸고, 적어도 자기 인생을 크게 바꾸며, 눈부신 성장 스토리를 써내려간다. 멀리서 볼 때 그들은 특별해 보이지만, 사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단지 “망설임 속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지금 움직여보자”라고 결심했을 뿐이다.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작든 크든 무언가 시도해보길 바란다는 것이다. 귀찮고 두려워도, ‘이제는 해볼 때’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읊조려보라. 하루에 10분이라도 행동이 따라온다면, 그 작은 행동이 모여 몇 달, 몇 년 뒤에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후회하는 대신, 지금의 망설임을 용기와 실천으로 바꿔보는 여정에 뛰어들기 바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질문에 대해서, 가장 멋진 답변은 ‘오늘,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 위에 짧은 결심과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쌓아가면, 나중에 돌아봤을 때 “정말 그때 시작하기를 잘했어”라고 환하게 웃을 날이 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