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누군가 내게 물었다면,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법한 순간이었는데도, 나는 알 수 없는 피로와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 어두운 표정은 ‘실패’와 ‘상실’, 그리고 ‘후회’에 대한 감정들이 한데 뒤엉켜 만든 것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고, 한 번쯤은 커다란 상실을 겪는다. 또 여러 가지 선택에서 오는 후회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내가 진정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발견하는 결정적 단서를 얻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버거운 순간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찾아가는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내게 있어 이 고백은 깊은 위로이자, 삶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지도가 되어주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길을 잃고 헤맬 때, 그 어둠 속에서 가장 ‘나다운 나’로 거듭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내게 이것만은 잃고 싶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을 놓치곤 한다. 목표하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거나, 믿었던 사람이 떠나버리고, 혹은 건강을 잃거나, 가치관마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대개 그 상실을 끝으로 여기게 된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일상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감이 마음 한가운데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잃어버림”이 언제나 파멸과 침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리학자 테데스치(Tedeschi)와 칼훈(Calhoun, 1995)의 연구에 따르면, 극심한 트라우마나 상실 후에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더 강인해지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부르는데, 이 개념은 상실을 단지 부정적인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삶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친구는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원하는 회사에 번번이 탈락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매번 탈락의 문턱에서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집착했던 직종이 사실은 진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다른 분야로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계속 실패했다는 건 그 길이 내 길이 아님을 가르쳐준 셈이더라고. 그때는 몰랐지. 그냥 왜 이렇게 안 될까, 세상이 밉고 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지나보니 그때가 내 인생 최대의 전환점이었어.”
정말 그랬다. 소중히 여기던 직장, 사람, 혹은 인생의 일부를 잃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결핍이 일상의 어떤 부분을 지탱해주고 있었는지, 그게 사라지니 무엇이 더 중요한지 선명히 보인다. 이는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불을 켜는 순간과도 비슷하다. 나 자신이 진짜 무엇을 갈망하는지, 구태여 잡고 있었던 것이 ‘정말 내 것이었는지’를 의심해보게 되는 것이다.
“상실은 고통스럽지만, 진짜 내 길을 비추는 조명”
이 생각만으로도, 잃어버림이라는 현실이 무조건 절망으로 끝나지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는 오랫동안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해 왔으나,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으로 해고를 당했다. 한동안 혼란에 빠진 그는 “회사가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어. 내 정체성은 회사원 하나뿐이었으니까”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몇 개월 뒤, 그는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여 새로운 길을 찾았다. 덜컥 시작한 프리랜서 프로젝트에서 이전에 못 느꼈던 해방감과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그 경험 뒤에 그가 내뱉은 말은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성을 직면하고 나니,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는 것이었다. 그전에야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규정하며 안락을 추구했지만, 막상 울타리가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그간 놓치고 있던 다른 기회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잃을 수 있음은 우리를 더 겸손하고, 동시에 더 유연하게 만든다.”
조금은 역설적이지만, 결국 내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조건들을 인정하는 순간, 집착과 불필요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우리는 삶을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되고, ‘일시적으로 가진 것’들을 영원한 소유처럼 여기지 않기에, 더욱 책임감 있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사용하려 애쓴다.
상실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내게 큰 이별을 겪었던 순간이 있다. 의지했던 사람과의 작별이 너무나 아팠던 시기에, 우연히 다른 이의 이별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으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서서히 남의 상실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서로 위로하며 성장하는 경험도 하게 됐다.
사실 세상에 실패나 상실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상실을 겪어봤는데, 당신은 어떤 상실을 겪었나요?’라는 질문 하나로 깊은 대화를 열 수 있고,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각자가 조금씩 다르게 얻은 상처와 배움을 나누면서, 우리는 상실의 아픔을 공동체적 성장으로 치환할 수 있다. 함께 나누는 슬픔은 반으로 줄고, 함께 나누는 기쁨은 배가된다는 말처럼, 상실의 순간엔 연대가 더욱 빛을 발한다.
마지막으로, 상실은 내 정체성을 더욱 굳건하게 다지는 사건이 된다. 어쩌면 내가 붙들고 있던 그것이, 사실은 내 자아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 타인의 인정을 대신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실을 통해 그 자아를 벗어던졌을 때, 비로소 본연의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잃어버린 것을 통해, 우리는 진짜로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다.”
한 사람이 소중히 여기던 직업을 잃었지만, 그 뒤에야 꿈꿔왔던 예술적 재능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평생 누군가의 배우자로만 살아온 사람이 뜻밖의 이혼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사례도 흔히 보게 된다. 그러니 상실은 무조건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의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나를 새롭게 발굴해내는 ‘진짜 시작’일 수 있다.
실패와 후회의 교차점에서
살면서 제대로 발휘조차 못 하고 스스로를 ‘루저’라고 칭하는 지인은 늘 “아,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라며 자책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자책의 본질은 ‘더 잘하고 싶었다’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실패가 싫어서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어 후회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심리학에서는 후회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부터 비롯된 감정’이라고 정의한다(Zeelenberg & Pieters, 2007). 보통 후회는 깊은 슬픔이나 아쉬움으로 이어져,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조금만 달리 보면, 후회는 ‘앞으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내가 잘못한 부분을 깨닫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각인시키는 것이다.
“후회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감정이다.”
이제껏 내가 해오던 방식을 바꾸도록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건, 실패 뒤 찾아오는 후회의 쓴맛일 때가 많다. 어쩌면 숱한 충고와 이론적 지식보다, ‘내가 겪은 한 번의 쓴 실패’와 ‘뜨거운 후회’가 더 효과적으로 나를 움직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후회는 단지 ‘다시 노력해야지’라는 뻔한 결심만을 촉진할까? 오히려 그 이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실패를 통해 깨달은 교훈과, 그로 인해 느낀 후회라는 감정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어떤 삶의 가치를 놓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예컨대 애정 어린 관계를 어리석은 자존심 때문에 깬 뒤, ‘다음번에는 솔직함과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면, 그것은 단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나의 인격적 방향을 재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후회는 과거를 향해 앓는 마음이면서,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려는 의지로 변모할 수 있다.”
즉, 후회는 무의미한 자기비난에 머무느냐, 아니면 의미 있는 성찰의 기회가 되느냐, 그 선택지는 내게 달려 있다.
실패와 후회의 교차점은 감정적으로 가장 아픈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를 긍정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덮어두는 대신, 마음챙김(mindfulness)을 통해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Brown & Ryan, 2003). ‘지금 나는 실패에 대한 후회로 괴롭다’고 인정하고, 그 감정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을 수용하되, 지나치게 오래 끌려다니지 않는 태도를 연습하는 것이다. 여기에 자기연민(self-compassion)이 더해지면, 과한 자학 대신 ‘난 이 상황에서 열심히 해보려 했지만 부족함이 있었다. 그걸 배워 앞으로 나아가면 돼’라는 식의 유연한 사고가 가능해진다(Germer & Neff, 2013).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후회로부터 배운 교훈을 실제로 행동에 반영하느냐”이다. 후회는 강력한 감정이지만, 거기에만 빠져 있는다면 인생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잘못을 깨닫고 ‘다음번에는 이렇게 하겠다’라고 구체화했더라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예컨대 과거의 사업 실패가 “시장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면, 다음 시도에서는 꼭 철저한 리서치를 해야 한다. 이전 연애가 “내가 표현을 너무 아끼다 상대를 놓쳤다”는 후회를 낳았다면,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
즉, 실패와 후회의 교차점이 가치 있으려면, 나 스스로에게 새롭게 부여한 약속과 목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런 실천이 축적되면서, 다시 한번 인생에서 큰 도전에 나설 힘을 비축하게 되고, 그 도전이 결국 또 다른 결실과 성장을 만들어낸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우리는 어제의 경험과 선택을 자양분으로 삼아 ‘오늘의 나’로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매일 아침을 맞이하며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새 날이야”라고 단순히 끊어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제의 나”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실패를 맛봤으며, 어떤 작은 성공을 거둬냈는지는 고스란히 “오늘의 나”를 빚어내는 재료가 된다(Bandura, 1997).
우리가 종종 듣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하루쯤 대충 살아도 큰 지장 없지 않을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하루하루의 작은 태도와 습관이 내 인생을 결정짓는다면, 결코 ‘단 하루’조차 허투루 흘려보내기 어렵다. 어제 내 ‘사소한 선택’이 모여 오늘의 생각과 기분, 그리고 태도를 형성하고, 그것이 축적되어 거대한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건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는 작은 결정들의 연속일 때가 많다.”
예컨대 어제의 나가 10분이라도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오늘의 나는 조금 더 건강한 몸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어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했으면, 오늘 나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작은 습관과 행동이 쌓이면, 결국 인생의 흐름이 달라진다.
어제의 내게는 수많은 실패와 후회가 있을 수 있다. 그 실패와 후회가 새벽 내내 나를 괴롭혔다면, 오늘 아침은 무겁고 침울하게 시작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감정을 그냥 방치하기보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를 긍정적인 ‘다리’로 삼을 수 있다면, 내일은 전혀 다른 국면이 열릴 수 있다. “어제 내가 이런 실수를 했지. 이 후회가 말해주는 건 뭘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어제의 실패가 오늘에는 방향 수정의 계기로 작동한다.
“어제의 실수는 오늘의 내가 다시 일어설 거리를 열어두었다.”
이 문장이 의미하듯, 사람은 매일매일 실수를 하면서도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최소한의 교훈을 남긴다. 그리고 그 교훈을 오늘의 선택에 적용하는 순간, 어제의 자신과는 한 뼘 다른 길을 걸어보게 된다.
또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요소가 있다. 어제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감사’와 ‘작은 성공’을 기록하고 떠올리는 습관이다(Emmons & McCullough, 2003). 예를 들어 어제 했던 일 중 ‘정말 내 자신이 뿌듯할 만한 사소한 성공’은 없었는지,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어떤 것이었는지 돌아보는 식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날 무렵 느끼는 피로와 좌절감 속에서도 긍정적인 정서를 되찾을 수 있다.
“어제의 감사가 오늘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평범한 문장이지만, 그 힘은 결코 작지 않다. 하잘 것 없는 듯 보이는 감사를 눈여겨보고 적어두면, ‘아, 내가 이렇게 소소한 기쁨을 누렸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쌓이면서 의지와 희망이 자라난다. 그리고 그 희망이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하루하루를 이런 방식으로 기록하고 축적한다면, 결국 한 달, 일 년 뒤에 상당히 달라진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 현재 순간의 나태나 무기력이 쌓이면 결국 미래의 나에게 짐이 된다. 반면, 현재의 나 자신에게 성실하고 충실한 태도를 기르면, 미래의 나는 그 대가로 많은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제의 내가 만든 길을 오늘 내가 걷는다”라는 관점으로 보면 매우 명백해진다. 내가 어제 게을리했다면, 오늘은 그 대가로 더 많은 회복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대로, 어제 내가 조금이라도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다면, 오늘은 그 혜택을 누리며 더 쉽게 전진할 수 있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 어제의 나”라는 문구는 결코 허상이 아니다. 일상에서 실패와 후회를 겪었음에도, 그 지점에서 배움을 놓치지 않고, 소소한 감사와 성취를 챙겨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제의 자기 자신이 ‘성장 도우미’가 되어준다. 어제가 힘들었어도, 내가 배운 교훈과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 오늘의 발판이 되는 식이다.
“삶은 한 번의 거대한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축적되는 작은 순간들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직물과 같다.”
우리는 실패를 겪을 때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망쳐 놓을 것 같아 두려워합니다. 상실에 직면하면, 곧 삶의 균형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지요. 후회라는 감정이 엄습할 때면, 다시는 과거의 실수를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잃어버린 것들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소중함과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고,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용기를 얻습니다. 실패와 후회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동기가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매일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작은 결단들과 반성, 감사의 습관은 내일의 나를 한층 더 빛나게 만드는 디딤돌이 됩니다.
“인생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지만,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할 것인지 놓칠 것인지는 오롯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실패와 상실, 후회의 순간에서 ‘나’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의 중간 기착지’로 삼는다는 시선. 이를 통해 당신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더욱 나다워지는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혹시 지금 당장 마음 한 켠이 무겁고, 실패로 인해 혹은 잃어버린 것들로 인해 심각한 후회와 절망에 빠져 있다면, 자신을 더 이상 과하게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이란, 완벽하게 실수 없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상실 속에서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능력’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늘 기억해주면 좋겠다.
“바닥을 쳤다고 생각되는 그곳에서, 더 깊은 깨달음과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그 깨달음은 곧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제, 이 에필로그를 덮고 다시 삶의 무대로 돌아간다 해도, 그 무대 위에서 매일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실패와 후회를 만날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실패든, 나를 한층 더 성장시키는 토양이 될 수 있다’는 믿음만 품고 있다면, 우리는 매일 아침 조금 더 씩씩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실패 속에서 나를 찾는다는 건, 결국 내가 삶을 향해 던지는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대답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 질문과 대답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도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