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주 오래전, 나는 미래를 그리는 일을 그저 막연한 ‘공상’이나 ‘낭만적 희망’ 정도로만 여겼다. 바쁜 현실을 살다 보면, 오늘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만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조차 알 수 없는 세상에서, 5년 혹은 10년 뒤의 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은 그저 이상적이고 달콤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짧은 글 한 편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글은 “하루만이라도 전부 내려놓고, 오직 내 미래를 진지하게 상상해보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미래라는 이름의 시간 속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누구와 함께하며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있을지 상상해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기도 벅찬데, 막연한 미래를 그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해보니, 상상하는 과정 자체가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비로소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 문장은 내 삶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시작된 ‘미래 상상’이, 오히려 현재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 하루 동안 내 마음에 심어진 작은 씨앗은 이후에도 꾸준히 자라나, 내가 매일 선택하고 결정하는 순간들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이 글에서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는 하루’가 가진 힘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첫째, 먼 훗날의 ‘가능한 나’를 그리는 행위가 어떻게 지금의 삶을 재배열해주는지. 둘째, 미래 상상에서 끝나지 않고, 그 상상을 현실로 잇는 작은 실천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셋째, 나만의 미래를 넘어 세상과 연결된 미래를 꿈꿀 때,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생각을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미루곤 한다. 하루하루가 이미 버거운 상황에서, 먼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혹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는 일 자체가 불안감을 자극한다며 애써 피하기도 한다. “내가 그리는 미래는 너무 이상적이라 지금과 격차가 크니, 차라리 상상하지 않는 편이 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상상을 외면하는 것은,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선택 폭을 좁히고 만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미래의 나를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면, 현재의 삶은 과거의 습관이나 주위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마치 지도가 없는 여행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이 길, 저 길로 헤매거나, 중간에 지쳐서 멈춰버릴 수도 있다.
반면,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미래의 나를 상상해본 사람은 “내가 정말 되고 싶은 사람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그 이미지는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나 역시 미래를 상상해보기 전에는, 내 일상이 그저 복잡하고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을 정해두고 오롯이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때,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이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가 조금씩 뚜렷해진 것이다. 그때 이후로, 어쩌면 마치 퍼즐 조각을 새로 맞추듯 내 일상이 재배치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0년 뒤에는 사회적 공헌과 개인적 성취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상상했다면, 지금 당장 내 시간이 어디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만약 무의미하게 소비되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면, 그것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책 한 권 읽는 일도, 사람과 대화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소중한 지인들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전하게 되거나, 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을 더 찾아보게 되기도 한다.
“미래를 상상하는 행위는 현재를 바꾸는 시작점이다.”
이 말이 처음에는 단순한 구호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시도해보면, 그 변화가 은근하고도 강력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가령, 오늘 잠깐의 휴식 시간이 생겼을 때, 그냥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10년 뒤 내가 이뤄낼 무언가를 떠올리며 관련된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도, “이 사람이 앞으로의 내 여정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미래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5년 뒤 나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거나, “10년 뒤면 너무 멀어서 감이 안 잡힌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미래 상상”이란 완벽한 청사진을 한 번에 얻는 일이 아니라, 막연함을 구체성으로 조금씩 변환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실제로 어떤 연구들(예: Markus와 Nurius, 1986)에 따르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미래의 ‘가능한 자기’가 또렷해질수록 사람은 현재의 행동을 점차 구체화하고, 그에 필요한 자원을 찾는 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3년 후에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떠오르면, 구체적인 언어 공부 계획이나 경제적 준비 같은 과제를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오늘 내딛는 한 걸음에 담기는 의미가 달라진다.
“오늘의 작은 씨앗이 언젠가 미래의 거목이 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 순간, 우리의 눈길은 더 이상 오늘을 무심하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그것이 단지 달콤한 꿈으로만 머무는 경우도 많다. “나중에 꼭 이렇게 해야지!”라고 결심했다가도, 현실의 여러 장애물과 익숙한 습관 때문에 금세 그 결심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다, 막상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그대로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기 위해, 미래를 상상한 뒤 곧바로 아주 작은 변화를 실천해보기를 추천한다. 예컨대 10년 뒤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그 모습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 ‘오늘 하루 할 수 있는 일’을 적어보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이어도 괜찮다. 운동을 10분 더 하겠다, 관련 책을 몇 페이지 읽겠다, 혹은 미래의 나는 아침형 인간일 것 같으니 내일부터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보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이런 작은 실천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뇌와 몸이 ‘변화를 실제로 체감’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미래가 손끝이나 발걸음 하나에 녹아들면서, 나도 모르게 “아, 진짜 내가 변하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생긴다. 이 감각은 뒤이어 오는 노력을 지속하게 하는 ‘연료’가 되어준다.
작은 실천을 시도하면, 의외로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게으름이 갑자기 몰려오거나, ‘이건 너무 귀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실제로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라는 자조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며 시작된 시도는, 실패해도 전혀 헛된 것이 아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진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 이후의 태도와 학습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래의 자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려다가 수차례 실패했다고 하자. 그 과정에서 “아, 나는 단순히 알람 소리만 들어서는 못 일어나는 타입이구나. 그럼 알람을 여러 개 두거나, 방 한쪽에 두어서 반드시 일어나게 만들어야겠네” 같은 식의 실질적인 대안을 찾게 된다. 이렇듯 작은 실패들은 결국 나만의 ‘성공 전략’을 발견하게 해주는 이정표가 된다.
미래 상상을 통한 실천은 고정된 목표에 무조건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스스로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과 노하우가 나중에 더 큰 도전 앞에서 빛을 발한다. 결국, “실패조차도 미래 상상의 일부가 되어, 우리의 길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준다.”
내가 만난 한 사람은, 미래의 자신이 좀 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고 했다. 예컨대 매일밤에 자기 전에 ‘오늘 감사했던 일 세 가지’를 적거나, 가족이나 친구에게 작은 안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지만, 몇 달이 지나자 주변에서 “요즘 어떻게 그렇게 밝고 긍정적이 됐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매일 반복되는 선택이 결국 내일의 나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하루하루 선택의 합이 모여 미래의 내가 된다”는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해보면 이보다 정확한 진리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이다.
우리의 삶은 종종 거대한 사건이나 운명적인 계기로 바뀔 것처럼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 결정들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오늘 걷는 길, 오늘 만나는 사람, 오늘 투입하는 노력, 오늘 마음을 다해 나누는 대화가 모여, 불현듯 “아, 내가 꿈꾸던 모습에 한 걸음 다가섰구나”라는 순간을 맞이하게 해준다.
미래를 상상할 때, 보통은 나 자신의 성공이나 행복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집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같은 질문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확장해보면, 내가 살아가는 무대는 결국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지역사회, 나아가 지구 전체가 서로 얽혀 있다. 그래서 나의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가 함께 맞이할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는 세상과, 그 세상에서의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쓰레기 분리수거나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같은 작은 실천부터 해볼 수 있다. 인권이나 다양성에 관심이 있다면, 차별이나 편견을 줄이는 활동을 고민해볼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개인의 작고 미약한 노력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모이고 쌓이면 미래의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흐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내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은, 나의 손과 마음이 바꿔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우리의 미래 상상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나 하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함께 성장하고 번영하는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그 상상이야말로 더 큰 동기와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미래를 상상하는 시간이 풍요로워지려면, 누군가와 그 상상을 나누어보는 경험도 중요하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비슷한 가치를 지향하는 모임에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면, 생각보다 큰 시너지가 생긴다. 내 아이디어에 대해 건설적인 피드백을 줄 수도 있고, 때로는 “그 길을 이미 걸어본 사람이 있어. 연결해줄게”라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함께 꿈꾸는 미래는 혼자 꾸는 꿈보다 훨씬 빠르고 멀리 갈 수 있다.”
또한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미래를 그리면, 각자 전혀 다른 시각과 재능이 만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환경 보호를 꿈꾸는 사람과 교육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 대화를 하다 보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환경 인식 교육을 해보면 어때?” 같은 통섭의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식이다. 이런 순간들은 아주 짜릿하다. 보이지 않던 길이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인해 한순간에 뚫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미래가 비단 나만의 이익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 나아가 지구적 문제까지 아우른다면, 나의 일상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모든 쓰레기를 줄이자는 거창한 선언을 하기는 어렵더라도, 장볼 때마다 불필요한 비닐 사용을 자제하거나, 텀블러를 이용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작은 선택이지만, ‘함께 만드는 미래’를 떠올리면 그 선택에 담긴 의미가 깊어진다.
또한,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직장 동료 한 명,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 무심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나는 더 따뜻하게 말을 건네려 애쓰게 된다. 왜냐하면 “미래란 결국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뿌린 친절이나 배려의 씨앗은, 언젠가 커다란 열매가 되어 공동체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결국, 상상하는 미래가 커질수록, 내가 오늘을 사는 태도와 행동 범위도 함께 커진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반드시 나에게도 되돌아온다.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그 누군가가 언젠가는 또다른 사람을 돕고, 그렇게 선순환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사회가 앞에 펼쳐질 수도 있다. 그것이 ‘함께 꿈꾸는 미래’의 강력한 힘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귀찮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단 하루만이라도 “미래를 상상하는 데 온전히 몰두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그 하루가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미래”가 선명해지는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게 되고, 매일의 선택에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하루의 상상 속에서 만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마치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씨앗이 되어, 우리의 가슴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자라난다. 때로는 실패하고 쓰러질 수도 있지만, 그 씨앗은 쉽게 죽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를 자양분 삼아 더 탄탄한 뿌리를 내릴 뿐이다.
나 역시 인생에서 여러 번의 고민과 방황을 겪어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순조로워 보였던 시절에도, 마음 한켠은 늘 불안하거나 허무했다. 그러다 미래의 나를 그려보라는 권유를 받고, 반신반의하면서도 시도해보았다. 그 결과, 나는 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 가치를 매일 어떻게 발현해야 하는지 조금씩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막연한 불안을 느끼지만, “미래의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금 용기를 낸다.
이 글에서 다룬 세 가지 소주제, 즉 ‘미래라는 거울 속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힘’, ‘작은 실천의 중요성’, ‘함께 꿈꾸는 미래의 시너지’는 모두 쉽고 당장 해볼 만한 것들이다. 복잡한 이론이나 거대한 결단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하루 중 조금의 시간만 떼어내 조용한 곳에 앉아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순간을 마련하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아마도 당신은 처음으로 ‘진짜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마주할지도 모른다.
“그 미래를 단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데 그치지 말고,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딛어보자.”
실패가 두렵다면, 아주 사소한 행동부터 시작해도 좋다. 미래의 내 모습에 걸맞게 문장을 한 줄 써본다든지, 관련된 영상을 시청한다든지, 주변에 비슷한 꿈을 지닌 사람이 있는지 찾아본다든지. 그 어떤 방식이든, 오늘의 결심과 행동이 내일의 나를 키워줄 거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끝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는 단지 ‘나 혼자 잘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함께 이겨내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장면들이 모여 탄생하는 아름다운 서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미래를 상상하는 행위는 나의 잠재력을 높이는 동시에, 타인과 공동체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이끈다. 오늘 내가 만든 작은 변화가 또 다른 이에게 전달되고, 언젠가 그 물결이 세상을 감싸 안을 수도 있다.
“하루가 만들어내는 영원한 씨앗”이라는 표현은, 그 하루가 만들어내는 영향력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음을 상징한다. 우리의 꿈, 비전, 가치, 그리고 따뜻한 마음들은 모두 조금씩 자라난다. 때로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자라지만, 반드시 뿌리를 내려 언젠가 꽃을 피운다.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하루를 보내는 순간, 그 씨앗은 이미 우리의 마음 밭에 심겨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은 이 글을 전해 들을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미래를 새롭게 그려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더라도, 마음 한편에는 분명 새싹 하나가 돋아나 있기 때문이다. 그 새싹을 돌보고 가꾸다 보면,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가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미래가 현실이 된 시점에서 돌아보면, “내가 정말 간절히 꿈꾸었던 그 미래는 결국 오늘이라는 작고 소중한 시간에서 시작된 것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미래를 상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미래를 내 손으로 창조해냈다”고.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나의 미래를 상상하는 하루’를 용감하게 시도해보기 바란다. 아주 짧은 시간이더라도, 그것은 인생을 바꾸는 강력한 단서가 될 것이다.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는 지루한 흐름을 끊고, 우리 자신을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신호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