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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고 싶은 누군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by 이세현

어린 시절 영웅이 들려주는 내일의 가능성과 ‘미래를 상상하는 하루’


어린 시절, 우리는 종종 ‘영웅’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을 마음속에 품고 자랍니다. 사람마다 그 영웅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만화 속 정의로운 주인공, 영화에서 불의에 맞서는 용감한 히어로, 혹은 내 주변에서 성실함과 따뜻함을 보여주던 아주 평범한 어른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부모님이나 친척, 또는 이웃집의 소방관 아저씨가 될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건, 그 ‘영웅’이 단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라기보다 “내가 언젠가 닮고 싶은 어떤 가치와 태도”를 구현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의 영웅에게 매료되었던 기억은,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가장 빛나는 방향성”을 가르쳐줍니다. 나이가 들면서 ‘영웅’이라는 단어가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들이 보여줬던 선함이나 강인함, 혹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여전히 우리의 삶 곳곳에서 힘이 됩니다. 심리학자 Lapsley & Stey(2014)의 연구에서처럼, 어린 시절 동경하던 인물은 성인이 되어 형성되는 가치관과 정체성에 긍정적 기여를 하며,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고민할 때 강력한 내면의 이정표가 되어준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어린 시절의 영웅을 오늘날 다시 떠올려봐야 할까요? 그것은 “과거에 내가 간절히 원했던 모습을 재발견함으로써, 현재 내가 잊고 지낸 열망이나 포부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시절 나는 한 TV 드라마의 선생님 캐릭터를 보며 “저렇게 밝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학업, 진로, 경제적 현실 속에서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해지고, 그런 꿈을 조금씩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선생님 캐릭터”를 다시 떠올리면 그때의 설렘이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설렘은 지금의 삶을 재조직하는 도약대가 되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린 시절 영웅을 통한 자기 점검”은 결국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Erikson(1968)은 인간의 정체성이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상호작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른이 된 우리는 종종 내일이 오늘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는 무한한 상상력은 미래를 훨씬 풍요롭게 설계하도록 돕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막연한 희망 사항을 되뇌는 것과는 다릅니다. Markus & Nurius(1986)가 제시한 ‘가능자기(Possible selves)’라는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미래의 자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몰입하는 과정을 거쳐,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미래를 상상하는 하루”를 만들어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하루 중 한 시간 정도를 떼어 내 삶의 수평선을 넓게 그려보는 겁니다. 휴대전화나 TV를 잠시 끄고, 조용한 장소에서 “5년 뒤, 1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린 시절 내가 존경했던 인물의 어떤 가치를 지금도 실천하고 있을까?”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5년 후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 일을 하는 나를 상상했을 때,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끼는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영웅이 보여줬던 선량함이나 용기는 어떻게 내 삶에서 발휘되고 있는가?” 이런 구체적인 물음들은 머릿속 공상을 ‘목표 지향적 상상’으로 바꿔줍니다. 이는 Markus & Nurius(1986)가 말한 행동 변화의 핵심 동기, 즉 “내가 되고 싶은 모습(ideal self)”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됩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하루”는 그래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창조적 행위입니다. 오늘 당장 해야 할 일, 어렵고 지루한 업무, 인간관계에서의 고민까지도 미래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것은 5년 뒤 나에게 어떤 발판이 될까?” “어린 시절 영웅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처럼 구체적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은, 곧 “현재를 재구성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연구자들은 ‘가능자기’를 생생하게 그려낼 때, 우리의 동기가 극적으로 활성화되고, 실제 행동 변화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보고합니다(Oyserman, Bybee & Terry, 2006). 예를 들어, 내가 10년 뒤에는 어린 시절 영웅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강연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상상한다면, 오늘의 독서 습관이나 말하기 연습, 혹은 인간관계를 맺는 태도 등이 달라질 것입니다. 비록 현실에 여러 장벽이 존재해도, “미래에 대한 선명한 상상”이 있으면 그 장벽을 극복하려는 내적 동기가 자연스럽게 강화됩니다.


또한, “미래를 상상하는 하루”를 통해 우리는 단지 개인적인 성공과 성취만이 아닌, 내가 속한 공동체나 사회를 위한 목표까지도 함께 내다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동경하던 영웅들은 대부분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일, 내 업적, 내 성취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캠페인을 시작해볼 수도 있고,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계획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통합적 시야를 갖게 되면, 내 인생이 더 큰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용기와 책임감을 얻게 됩니다(Emmons & McCullough, 2003).


많은 사람들이 “미래란 나중에 준비해도 돼”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가 미래를 진지하게 꿈꾸지 않으면, 결국 오늘을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게 됩니다. 반면, 하루만이라도 의식적으로 미래를 그려보고, 어린 시절의 영웅이 던져준 메시지들을 떠올리며 “내가 정말 되고 싶은 사람”을 살펴보면, 그 작은 하루가 훗날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씨앗이 됩니다. “오늘의 선택이 곧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문장을 다시금 곱씹어볼 때, 우리는 하루하루를 더욱 귀하게 다루고 싶어질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어린 시절 영웅과 미래 상상”이라는 두 축을 맞닿게 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일입니다. 과거의 순수했던 열망, 현재의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현실, 그리고 선명하게 그리는 미래의 가능성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더 이상 “나중에 언젠가”를 기약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열정적이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영웅이 보여준 가치”와 “구체적으로 그려낸 미래의 나” 사이에서,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들이 큰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지요.


무심코 흘려버릴 수 있는 하루를 이렇게 ‘미래 상상’으로 채워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미묘한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문득 습관처럼 해오던 일에 의문을 품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하며, “10년 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조금씩은 바꿔봐야지”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영웅의 용기와 따뜻함이, 그리고 미래의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 지금의 나를 이끌어주는 불씨가 됩니다.


결국, “어린 시절 영웅이 들려주는 내일의 가능성을 붙잡고, 하루 동안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일”은 결코 낭만적 몽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고, 현재를 혁신하며,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최선의 전략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분명히 느낄 것입니다. “아, 나도 저 영웅처럼, 내일을 두려워하기보다 기대하며 살 수 있구나.” 이 깨달음이야말로 오늘의 나와 미래의 나를 잇는 가장 값진 다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되고 싶은 사람’과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사이를 건너는 법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정말 되고 싶은 사람”과 “지금의 나” 사이의 거리를 실감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꿈꾸던 영웅적 모습이나, 어제 상상했던 내 미래의 청사진이 눈부시게 아름다울수록, 현재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순간도 찾아오는 법이지요. 하지만 이때 느끼는 불일치와 좌절감은, 곧 “더 나은 나로 향하는 성장의 징후”일 수 있습니다.


Markus와 Nurius(1986)가 설명한 ‘가능자기(Possible selves)’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머릿속에 다양한 미래의 자신을 그려둡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원하는 모습(ideal self)에 가까워지려는 동기가 현재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힘이 됩니다. 그렇다면 “되려는 나”와 “현재의 나” 간의 간극은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고, 이 간극이 너무 넓게 느껴질 때 우리는 좌절을 맛봅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이 간극을 “부정적인 장벽”이 아니라 “추진력”으로 바라볼 것을 권장합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 있는데,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인식은, 결국 “지금 무엇을 바꾸고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니까요. 그렇게 목표가 분명해지고, 필요한 행동 계획이 세워지면, 우리는 하루하루를 더 의식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Brown & Ryan(2003)은 이러한 자기 점검 과정에서 “마음챙김(mindfulness)”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즉,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비판하기보다는,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오늘 어떤 실천을 더할 수 있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자기연민(self-compassion)”이라는 개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Germer & Neff, 2013). ‘지금의 내가 기대만큼 훌륭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을 지나치게 비난한다면, 오히려 행동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습니다. 반면,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라고 인정하는 태도는, 실패나 좌절을 경험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유연함을 부여합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꿈꾸면서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이 간극은 ‘넘지 못할 절벽’이 아니라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됩니다.


간극을 건너는 실질적인 방법 중 하나는 “목표를 세분화하고, 작게 성공하기”입니다. 예컨대 더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갑자기 매일 2시간씩 운동하기보다는, “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운동하기”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더 지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한 달에 책 4권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주 1권” 혹은 “하루 20분 독서”처럼 세밀하게 쪼개어 실천하는 것이죠. 이 작은 습관들을 쌓아나갈 때마다, 우리는 “진짜로 움직이고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주변 사람들과의 공유와 지지”입니다. 목표를 공표하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나누며, 때로는 조언이나 격려를 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층 더 끈기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혼자만 힘들어하는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간극을 향해 뛰어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릅니다.


결정적으로, “이상적인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놓인 간극을 좁히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노력의 여정 자체가 이미 가치롭다는 점입니다. Emmons & McCullough(2003)는 우리가 감사나 긍정적 정서를 자주 느낄수록, 목표 추구 과정에서 인내심과 유연함을 갖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즉, “아직 부족한 내가 밉다”가 아니라,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 나를 더 멋지게 만들고 있구나!”라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장기적인 성장에 유익한 영향을 끼칩니다.


물론 때론 후퇴하거나 벽에 부딪혀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근육”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간극을 극복해나가는 진짜 힘입니다. 어린 시절 영웅들이 매번 완벽하게 승리하는 건 아니었듯, 우리의 인생도 온통 실패와 재도전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단단함과 유연함이,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사람과 지금의 나”를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직 잠재력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 말처럼, 내가 이루고 싶은 모습이 있다는 건 곧,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만약 아무런 간극도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전진하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쌓아가며, 마침내 그 다리를 건너 새로운 지평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결국, “이상적인 나”를 향해 가는 길은 아름답고도 지난합니다. 어린 시절 영웅과 미래의 나를 그리는 상상이 만든 열망이, 지금의 나와 충돌할 때 좌절이 생기지만, 그것이야말로 성숙의 발판입니다. 날카롭게 밀려드는 자괴감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연민과 믿음을 통해 그 간극에 다리를 놓으면, 어느새 우리는 부쩍 성장한 모습으로 내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정의 끝에 다다랐다고 확신하는 순간은, 어쩌면 또 다른 간극이 시작되는 시점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던져주니까요. 하지만 그때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내가 과거에 간극을 극복해봤으니, 다시 한번 해낼 수 있겠구나.” 라는 긍정 어린 확신 말입니다. 그렇게 여러 번의 간극을 건너며, 우리는 조금씩 어린 시절 그리던 영웅 혹은 미래상에서 상상했던 ‘더 나은 나’에 가까워집니다.


그것이 바로 “간극을 대하는 법”, 그리고 “간극을 디딤돌로 삼아 성장하는 길”입니다. 혹여 지금 그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다시 일어나 조금씩 발을 내딛다 보면, 과거의 영웅이 우리에게 속삭여줬던 따뜻한 응원, 그리고 미래를 상상할 때 느꼈던 열정이 우리를 한 걸음씩 앞으로 이끌어줄 테니까요. 그리고 이 모두가 합쳐져 지금 이 순간도 변함없이 유효한 한 가지 진리를 드러냅니다. “내가 되고 싶은 누군가는, 바로 지금의 나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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