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P-74.
피츠는 외동이었습니다. 파인즈 부부의 첫 아이었으니 아직 피츠에게는 형제자매가 없었던 것이지요. 피츠는 곧 꼭 한 살이 되는 개구쟁이 사내 아이였고 부모님의 사랑과 따스한 보살핌 속에서 하루하루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났습니다. 용맹한 아빠처럼 입 주위에 딱딱하고 긴 바늘처럼 생긴 흰 빛의 수염이 몇 개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 발바닥도 넓적해져가면서 빠르게 달리고 절벽에서도 깃털처럼 가볍게 점프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게 된 것이지요. 잘 익은 가을이 피츠가 살고 있는 Santa Monica Mountain에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하늘만큼 높은 산봉우리를 올라가 구름을 따라 잡기도 하고 깊은 계곡으로 숨어들어 먹잇감을 구하는 법을 배울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계절이었습니다.
그러던 11월 9일. 피츠는 엄마가 핥아주는 세수를 막 끝낸 아침이었어요. Highway101 건너편 산등성이로부터 피츠네 가족이 살고 있었던 Santa Monica Mountain으로 해와 비슷한 모양의 거대한 불덩어리가 날아왔습니다. 처음, 어린 피츠는 그 붉은 덩어리의 정체가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 비행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상상은 아주 잠시뿐 그 덩어리는 점점 거대하게 몸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피츠는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새들이 하늘로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아빠의 수염색깔과 비슷한 흰 빛의 굵은 기둥이 여기저기에서 솟아오르는 것을요. 산 정상 방향으로 타고 올라가는 흰 기둥은 점점 구름처럼 넓어지면서 퍼져나갔습니다. 아빠는 피츠와 엄마에게 어서 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언제 올지는 모르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것은 그렇게도 유명한 캘리포니아 산불이었습니다. 피츠는 지구에서 점점 귀한 존재가 되어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mountain loin, 바로 퓨마였습니다. 아빠는 이미 지난여름 밀렵꾼에게 사냥당할 위험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였는데 그 와중에 앞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빨리 걸을 수도 달릴 수도 절벽에서 착지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불길은 순식간에 온 산을 덮어가고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봄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지르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찾아왔고 Santa Monica Mountain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은 언제라도 피난할 준비를 하고 지내야 했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피츠와 함께 능선을 따라 내려가 Highway101을 건너가야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건너는 일이야 말로 불길에 휩싸이는 것만큼이나 무섭고 끔찍한 공포의 여정이라는 것을 엄마도 피츠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픈 다리 탓에 그 넓은 길을 건너지 못할 것을 알았고 엄마와 피츠의 길에 동행한다면 모두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산에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불덩이가 떠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피츠를 설득하기 위한 아빠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엄마는 잘 알고 있었지만 투명한 눈물을 감추고 길을 재촉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피츠는 아빠에게 금방 돌아오겠다며 굴속에 홀로 남아 있는 아빠와 뺨을 부비며 인사했습니다.
불길을 피해 계곡을 따라 산을 다 내려온 피츠와 엄마는 거대한 차들이 돌진하는 길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중간 중간에 불길을 잡느라 이미 엄마의 몸과 네 발은 화상으로 물집이 잡혀 있어서 무척 따갑고 쓰라렸고 한 발짝을 내 딛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그 길을 도저히 건너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때 길 가 옆 언제나 막혀 있던 철조망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본 엄마는 자신의 몸집으로 그 철조망 구멍을 크게 넓혔습니다. 그러면서 엄마의 몸은 철사에 긁혔고 피가 났어요. 피츠를 구멍 안으로 피신시킨다면 그래도 어디보다는 안전할 것 이라 여겼던 것이에요. 불길은 아주 오래 산을 덥고 있었습니다. 피츠는 밤낮없이 번쩍이는 빛을 길가 구멍에 웅크리고 두려움에 떨면서 지켜보았고 그러는 동안 엄마의 몸도 점점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져 갔습니다. 상처가 감염되어 온 몸 전체에 균이 번진 것이었어요. 이제 소용이 없었습니다. 15일이 지난 날 밤, 더 이상 번쩍이는 빛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피츠는 엄마를 흔들어 보았지만 불이 완전히 꺼진 그날 밤 엄마의 뜨겁던 몸도 차갑게 식어있었고 맑고 투명하게 빛나던 엄마의 눈은 흐릿하게 변하고 더 이상 피츠의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피츠의 엄마는 산불이 완전히 도망간 날 하늘나라로 가셨던 것이지요. 피츠는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아무리 핥아 보아도 엄마는 꿈쩍하지 않았어요. 피츠는 구멍 안에 있던 모래 더미를 뒷발로 옮겼고 엄마를 모래 속으로 감추었습니다. 못된 너구리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아빠가 기다릴 집으로 갔어요. 하지만 동굴 앞에 너울져 있던 산 사자나무와 포플러 나무들이 모두 쓰러져 딱딱한 잿더미가 되어 동굴입구를 막고 있었어요. 아빠는 어디로 가신 걸까. 아빠는 어디로 가신 걸까. 앞발로 입구를 가로 막고 있는 돌덩이와 잿더미를 파헤쳐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피츠는 옆으로 누웠어요.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눈이 섞여 있는 것 같았지요. 추웠어요. 그래서 앞발로 코를 감쌌어요. 이미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배는 바닥까지 붙어 움푹한 모양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피츠는 더욱 더 작아 보였어요. 얼마 안 있으면 나도 이제 한 살인데....... 피츠는 아빠와 엄마와 함께 능선을 내달리던 지난여름을 회상했어요. 회상은 언제나 어떤 장면을 사진처럼 가지고 와서는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일까. 피츠는 행복하고 기뻤던 순간을 떠올렸는데 왜 마음이 뜨거워져 눈물이 나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기절을 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피츠는 금발 머리의 친절한 여자 사람의 품에 안겨 있었어요. 비록 케이지 안에 누워 있었지만 포근한 담요와 마실 것에 먹이들로 몸이 편안해지자 마음도 진정이 되는 듯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금발의 여자가 피츠를 케이지 안에서 꺼내 다시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지요. 그리고 뒷목을 아프지 않게 잡고 나뭇가지 모양으로 된 검은 색 물건을 피츠의 목 뒤에 놓고 지그시 눌렀어요. 순간 번개와 같은 번쩍임의 따끔함이 느껴졌다가 곧 편안해졌어요. 그렇게 해서 피츠의 이름은 P-74가 되었던 거예요. P-74는 멸종위기에 있는 퓨마, 바로 Mountain Lion이었습니다.
피츠의 또 다른 이야기
신문을 구독하여 읽어온 지 꽤 오래되었다. 뉴스와 기삿거리가 넘쳐나는 멀티미디어 홍수 속에 파묻혀 살고 있으면서 얼마든지 구하고자 한다면 자료를 찾아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음에도 굳이 매월 구독료 26,000원을 지불해 가면서 The New York Times지를 구독하는 데는 어떻게 보면 타인들이 이해하지 못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문, 뉴스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적시성을 놓치면서까지 - 내가 사는 곳이 시골지역이라는 특성으로 전날의 신문을 집 앞으로 배달해 주는 구독 방식 – 몇 년째 구독을 유지하는 이유는 이렇게 가끔 피츠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구독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P-74를 알고 피츠라는 아기 퓨마의 슬픈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었겠는가.
캘리포니아 산불은 백과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시간을 밀레니엄을 기준으로 전과 후로 나뉘어 매년 산불이 몇 회 발생하고 얼마나 많은 피해를 내고 있는지를 분석해 놓았을 정도로 매우 악명이 높다. 물론 지역 자체가 매우 건조하고 바람이 많으며 봄부터 가을이 끝날 때까지는 덥기 때문에 규모가 큰 산불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점점 그 발화 횟수가 증가하고 피해 규모가 커지는 것을 두고 과학자들은 전부다 환경오염을 주 원인으로 꼽고 있다.
나는 [A Final Signal] 의 머리글과 가로세로 10센티미터 크기의 얼굴 사진이 나란히 실린 기사를 보고 아이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해 줘야지 생각했던 것이다. 기사의 내용은 지난 11월 9일 아침 캘리포니아 산불이 시작되어 불길이 Highway101을 건너 Santa Monica Mountain으로 옮겨 붙었는데 그 날, 11월 9일이 GPS로 P-74의 위치를 포착한 마지막 날이었다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상상하여 지어낸 이야기이다. 내가 상상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신문을 직접 보여주면서 P-74에 관한 사실을 나의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기사가 SCIENCE란에 나왔던 만큼 아이들과 아주 짧게라도 환경오염, 지구의 생존문제를 아이들 기준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왜 P라고 표식을 붙인 건인지 궁금했다. 아마 pursuit가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멸종위기의 동물이니 관리를 위해서는 ‘추적’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나는 아기 퓨마의 운명에 마음이 언짢아졌고 이야기 속에 아기 퓨마를 피츠라고 이름 지은 건 가상으로 지어낸 동정이 들게 하는 PITY의 느낌이 아니라 FITZ(파인즈 부부의 아들)라고 지어주고 싶었고 엄마 아빠를 PINES부부라고 지어 언제나 한결같은 상록수의 의미를 전달해 주고 싶었다. 물론 내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에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상록수의 변함없음을, 한결같음이 바로 내가 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과 흡사하다는 것을.
어쨌든, P-74는 5시간마다 자동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GPS에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는 추적되지 않았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 - P-74 most likely died in the blaze. - 과 함께 내 마음도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눈빛도 슬픔으로 번졌고 큰 아이가 피츠의 사진을 볼 수 없겠느냐는 물음에 나는 흑백으로 나온 작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내 아이들 모두가 피츠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이 매섭게 더 추워지는 것도 여름이 계속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지는 것도 전부다 환경오염 탓이라고 말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북극의 빙하는 녹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고 북극곰 타라의 이야기는 전 세계 사람들의 동정을 불러 일으켰다. 북극곰 살리기 자연기금도 운영 중이다. 환경오염이 가져온 기후변화 앞에 서 있는 인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 뿐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해야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막내가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통통한 볼이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으며 불러주던 모습이 눈 앞에 영상으로 보이며 그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지구를 지켜야 해요 자연파괴 멈추어요 지구를 보살펴야 해요 환경오염 멈추어요 ~~~"
2018. 12. 11. 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