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보는 내 일기장 같은 곳에다만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12월은 1년 중 낭비가 가장 심한 달이라는 생각이 든다. 12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그 흔한 교육, 워크숍을 나는 단 두어 번 밖에는 다녀오지 못했었다. 물론 중간 중간에 기회는 있었지만 아이의 양육부담으로 차마 1박 2일, 그것도 아니라면 이른 출발과 늦은 귀가를 염려한 단 하루짜리의 교육도 가 본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교육을 금년 12월의 절반만이 남은 시점에서 반 의무적 참여 식 교육을 벌써 세 차례나 다녀왔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출퇴근 시간에 영향이 없다는 이유로 참석하게 된 것이었지만 낯선 그곳에서 나눠주는 인쇄물, 다과, 식사, 그리고 강사진 교육비, 강의 내용 중 강사가 양심껏 말하는 관련 사업의 예산 내역을 듣고 소극적으로 그저 해주는 대로 받기만 하다가 돌아오는 교육이었는데도 끝난 후에는 지극히 솔직히 돌아오는 내내 부끄러움을 느끼기 일쑤였다. 소위 유리지갑이라는 월급쟁이인 나, 그 만큼 내는 세금의 단 한 푼도 속이지 못하고 납부하는 성실한 납세자인 대한민국 국민, 그 달 벌어 그 달을 살아가는 지극히 서민적인 내가 느낀 건 ‘눈 먼 돈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별로 유익하지 못한 교육을 건성으로 받은 내가 그들이 제공하는 빵과 커피를 먹고 점심으로 나온 고기를 뜯어먹으면서 그리고 내 본연의 일과에서 잠시 해방되었다는 가벼운 기분 뒤로 약간은 죄책감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두 번의 교육은 직업적인 특별함에서 오는 마땅한 교육, 사격 훈련이었다. 그 중 나를 일주일 내내 긴장시켰던 K2소총 사격훈련. 난 공문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정말로 이 훈련의 취지대로 대 테러 및 간첩 사건이 났을 때 과연 그들이 정말로 내게 권총과 소총을 내 줄 것인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과 그리고 임신 출산 휴직을 반복으로 소총 사격 경험이 거의 없는 내가 총알 장전이나 제대로 할 수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10개 사로에서 내가 배정받은 사로는 두 번째 사로. 양쪽 옆으로는 전부다 어떤 식으로든 군대 경험이 있는 남자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앳된 조교 한명이 내 옆에 붙어서 장전부터 자세교정까지 전담 마크하고 사격 완료 후 탄피 정리까지 모든 것에 도움을 주었다. 그들이 보아도 나 자신만큼이나 내가 어설퍼 보였던가 보다. 영점과 실사 표적지에 총 구멍이 단 한 개도 없었다. 일주일 내내 그렇게 긴장하고 떨었던 내 자신이 조금은 바보처럼 보이다가 정말 이 소총 사격 훈련이 철저하게 이 겨울 추위의 절정인 하필 오늘, 그것도 바람이 거침없이 부딪히는 산 정상에서 해야만 했는지 그 시간과 인력과 들인 노력과 비용에 약간 화가 났다가 그것도 내가 낸 세금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또 다시 죄책감이 들었다. 12월은 또 이런 식으로 돈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겠지.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의 일부 중 회계업무 – 난 최근 2주 동안 또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1년의 예산을 12월에만 50%를 쓰는 것 같다고. 11월까지는 예산이 부족하니 아껴 써야 한다는 교양을 받다가 12월이 ‘요이 땡’ 하고 출발하면 돈을 쓰라고 막 퍼주니까. 나는 이런 저런 비품을 구매하면서 내내 12월은 낭비가 심한 달이구나 또 다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도 예산의 일부라면 내가 낸 세금의 일부가 있을 테지. 모조리 써버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내려온 예산대로 소비를 하려니 메모를 하면서 물건을 사야 했다. 돈을 0으로 리셋하려면 계산이 딱 맞아 떨어져야 하니까. 나는 쇼핑 내내 내 돈이 아닌 돈을 쓰면서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역시 12월은 낭비가 심한 달이야.
우리 집에도 12월이면 낭비가 심해지기는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꼬마 녀석이 셋이나 살고 있지 않은가. 12월만 되면 부쩍 질문이 많아진다. ‘엄마! 정말로 산타할아버지는 있어요? 내가 이렇게 밥을 잘 먹고 엄마의 집안일을 도와주고 그리고 숙제를 열심히 하면 산타할아버지께서 내가 그토록 원하는 공룡피규어 10개를 주실까요?’ 엄마는 아이의 이런 천진난만한 질문에 ‘그럼! 당연하지!’하고 대답하고 돌아서서는 공룡피규어 10개면 도대체 얼마가 드는 건지 계산을 해 본다. 한 마디 더 거드는 막내 꼬마는 ‘선물은 산타할아버지가 가져다주시지만 커다란 생크림 과일케이크는 엄마가 가게에서 사오는 거야. 그렇지 엄마?’ 하고 되 물어오면 엄마는 이번에는 눈을 찡긋 미소까지 지으면서 ‘그건 맞는 말이야.’하고 긍정적으로 아이의 말을 수용한다는 뜻을 밝힌다. 아이들이 잠들고 엄마는 계산기를 두들긴다. 역시 12월은 낭비를 안 할 수가 없는 달이야. 생각의 꼬리가 길어질수록 잠은 멀리 달아나버리고 그렇게 12월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깊어만 가고 있다.
큰 소비
- 지난 월요일 저녁상
“엄마! 나 이번에 기말고사 잘 보면 핸드폰 해 주세요.”
“그건 좋은 제안이기는 한데, 정우야! 구체적으로 목표나 기준을 정해야 엄마도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핸드폰을 사는 건 좀 신중히 결정해야 되거든.”
“그럼.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이렇게 다섯 과목 중에 영어를 뺀 나머지 네 과목을 백점 받을게요.”
“전 과목 백점이면 백점이지 왜 하필 영어를 빼는 거야?”
엄마는 알고 있다. 3학년부터 영어를 처음으로 공부하게 되는 정우에게는 친구들 다 다니는 사교육을 시켜주지 않았었다. 친구들은 3학년이 되기 전부터 선행학습도 하고 꾸준히 학원, 개인과외까지 받으면서 수업을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우가 영어에 자신감이 없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전 과목 백점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핸드폰을 걸었다. 아이도 동의했다. 그 뒤로 책가방에 책을 가득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도 통 공부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동생들과 종이접기만 하고 카드게임을 하고 그러다 잠드는 것이 반복되었다. 드디어 내일이 시험 당일이었다. 엄마는 약간의 조바심에 아이에게 물었다. ‘너 공부는 하기는 했느냐고.’
저녁 9시가 넘은 시각 – 나와 꼬마들이 잠드는 시간 – 잠들기 전 한 마디를 한다. ‘엄마! 나 내일 새벽 6시에 깨워주세요.’ 그렇겠다고 대답을 하고 엄마는 잠들었다. 엄마는 아이를 깨울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아이의 그런 생각과 제안이 귀엽기도 하고 반 애들 중 우리 아이만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4학년이 되면 해주겠다고 말했던 내 약속도 있었고 어쨌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핸드폰을 해 줄때는 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6시가 되기 전, 자기 전 돌려놓은 세탁기에서 빨래를 널고 거실로 들어오다가 엄마는 간 떨어질 만큼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글쎄 이 녀석이 외투를 입고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보고 있는 게 아니던가. 그런 아이를 보고 ‘엄마가 이제 깨우려고 했는데 벌써 일어난 거야?’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별 다른 대답 없이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쌀을 씻고 국을 끓이면서도 아이를 힐끔힐끔 도둑처럼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 날 새벽 아이는 똥을 싸겠다고 하면서 그 새벽의 절반이상을 내 출근 준비를 성가시게 하면서 잠도 푹 못자고 시간을 낭비했고 그렇게 기말고사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었다.
- 당일 저녁
집으로 돌아 온 큰 아이가 무슨 말이라도 먼저 꺼내주길 기대했는데 아이는 허겁지겁 밥만 퍼 먹는다. 엄마는 동생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막내가 밥 먹는 것을 도와주면서도 계속 큰 아이 눈치를 살핀다. 그런데 허기를 면한 큰 애가 한 마디 한다.
“엄마! 나 기분이 너무 좋아! 태어나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나 핸드폰 뭐 사 줄 거야?”
그렇게 엄마는 12월에 계획에 없었던 아주 큰 소비를 했다. 큰 아이는 그렇게 생에 처음으로 자기만의 핸드폰이 생기게 되었고 엄마는 큰 소비를 했으면서도 진심으로 아이만큼 기분이 좋았고 조금도 그 소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큰 소비 사건을 계기로 아이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엄마는 무엇보다 기뻤다.
“정우야! 엄마는 네가 정말로 그렇게 올 백점을 받아 올 줄은 몰랐어. 솔직히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단다. 시험이 아무리 쉬웠다고 하더라고 한 문제도 틀리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거든. 그런데 그 보다 엄마가 너에게서 더 기특하다고 여긴 것은 네가 백점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날 새벽 네 스스로의 약속을 네가 지켰다는 것이 더 놀랍단다. 사실 엄마도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새벽에 밀린 공부를 하겠다고 일어난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로는 쉽지 않은 일이거든. 아무튼 엄마는 너의 노력과 성과가 기쁘다. 단, 이 핸드폰 때문에 앞으로 너와 내가 계속 다투게 되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기는 해. 암튼 고마워 정우야!”
그 다음날 내 앉은뱅이책상 앞에는 [핸드폰 사용 계획서] 한 장이 올려 있었다. 맞춤법이 정확하지 않은 계획서, 이면지에 삐뚤리게 연필로 쓴 계획서를 보면서 ‘내 아들이 참 똘똘 하구나.’하고 마음이 뿌듯했다. 물론 지켜지지는 않을 테지만 나는 아이의 뚝심을 보았기 때문에 마음은 내내 흐뭇했다.
둘째 아이, 막내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장난감까지 역시 12월은 낭비를 할 수 밖에 없는 달이구나 싶다.
시간 낭비
지난 한 달을 거의 시체처럼 살았다. 시간만 잡아먹으면서. 읽겠다고 맘먹었던 책은 비좁은 책장에서 한 달 내내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그러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먹고 자고 하기를 반복하면서 시간 죽이는 것을 모르는 체 했었다. 내가 읽고자 했던 책, 그 책은 깨알 같은 글자가 빽빽이 들어앉은 20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으로 몸이 비만한 책이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내년 탁상 달력을 우편으로 보내온 것을 뜯어보았다. ‘세상에나! 보름 남았네.’ 나는 그 책을 꺼냈다. 상중하로 나뉘어져 있으니 5일에 한 권씩 읽으면 이번 달 안에 다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나의 예감은 적중했고 책은 웬만한 집중력과 차분한 독서습관이 아니라면 하루에 30쪽 읽어내기 힘든 무거운 책이었다. 책에 몰입하게 되면서 남은 뒷장을 바람을 일으켜 또르르 굴려보다가 언제까지 다 읽어야지 하는 식의 나의 독서 계획이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피식 웃었다. 보통 이 맘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결심중의 한 가지, ‘꼭! 책 몇 권 이상을 읽고 말겠어!’ 생각해보니 나는 여태 그런 결심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그냥 시간과 장소에 방해받지 않았었다. 한 달에 몇 권 읽어야지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서를 써본 적도 없었다. 솔직히 그래서 내가 몇 권의 책을 읽는 지도 모른다. 짜임새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내가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할지는 모르나 솔직히 매일 매일 잠들기 전 그날의 일을 생각해 보면 ‘오늘도 시간을 낭비했구나.’ 생각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냥 그 날 그 날을 살다가 그 달 그 달을 살았고 그 시간들이 1년, 2년, 3년씩 이렇게 흘러와 버렸다. 문든 내 자신이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아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요즘 들어 그 생각 때문에 시체처럼 살았다고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실천해 보려고 노력은 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비록 현명한 아내로서는 부족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로서 내 자리를 조금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에 대한 글을 써라.’ 어느 소설가가 했던 말이다. 나는 이렇게 바꿔 생각했다. ‘가족에 대한 글을 쓰자. 그러면 내 삶의 고통이 위로받고 윤택하게 될 것이다.’고.
솔직히 한 달이라고 말했지만 정상으로 살지 못한 건 벌써 오래전부터이다. 비록 긴 시간을 그렇게 감내하면서 지내왔지만 내 어려움과 슬픔을 완전히 이겨낸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아마 평생 동안 외롭거나 슬프거나 혼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처지에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결코 내 자신이 부족해서나 그들보다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냥 그네들의 삶과 내 삶이 다를 뿐이다. 죽은 것처럼 살았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내게는 언제나 나를 아껴주고 응원하는 가족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내 꼬마들이 나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고 살아있구나 생각하게 한다. 나는 외롭지 않다.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내가 살아가게 하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있으므로 용기가 있고 성실하고 진실되게 잘 살아나갈 것이다. 일상의 사소함들 속에서 감동받고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찾으면서 그렇게 삶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그 일상이 아주 조금 바뀌었을 뿐 나는 전과 달라지지 않았으며 변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내게 주어진 운명과 책임과 선택을 존중하고 의무를 다해낼 것을 죽은 척 하면서 생각했고 다짐했다. 용기 내어 그 방문을 열고 그냥 그 길을, 통로를 지나가면 되는 거라고.
3년 전 쯤 10년 전의 일을 회상하면서 글 한 편을 썼었다. 그 글의 말미에도 여전히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 앞으로 10년 뒤의 내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라도 오늘의 최선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생각은 변함없다고. 구체적인 계획과 장차 다가올 커다란 꿈으로 부풀지 않더라도 하루씩 최선을 다해 산다는 건 소박할지는 모르지만 은근한 빛을 발하는 삶이 될 것을 예감한다.
어쨌든 12월에 나는 내 삶의 방향과 각도를 정비하느라 시간을 낭비했고 속을지 안 속을지 모르는 산타 할아버지 역할을 하려고 평소의 달보다 조금 더 소비를 했고 큰 아이에게 성취감이 주는 기쁨을 느끼게 해 주려고 더 큰 소비를 저질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