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저건 벚꽃이란다. 이렇게 벚꽃은 푸른 이파리보다도 먼저 망울을 터트려서 보는 사람들의 눈을 무척 황홀하게 해주지. 색이 아주 곱지? 저 색은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분홍에 속하지만 은은하고 반은 투명하게 보이기에 아무도 벚꽃의 색을 두고 촌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 엄마는 이른 봄철에 저렇게 흐드러진 벚꽃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곤 한단다. 늦은 밤 벚나무 가로수 가로등 아래 있던 벤치에 앉아서 꽃잎을 올려다보던 날을. 그때는 엄마가 아주 젊을 때였어. 아마도 10년보다 더 먼 곳의 있는 이야기지. 엄마가 막 스무 살을 넘었을 때 일이니까. 아마 네가 직접 저 꽃을 바라보려면 일 년은 더 참아야 될 거란다. 꽃은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세상에는 오히려 우리들이 참고 기다리고 기다려야 마침내 볼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아. 너도 어서 세상으로 나오렴. 아가야! 어디 한번 엄마와 함께 너의 맑은 눈으로 많은 꽃들을 바라보자꾸나.’
8년 전, 그때 벚꽃나무가 가로수처럼 길 양쪽으로 난 언덕길을 따라 있던 길을 나는 뱃속의 작은 아이와 함께 다녔었다. 지금은 그 아이가 어느 덧 아홉 살이나 되었으니 전과는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는 혼자이고 그때 타던 자동차도 내 숨으로 함께 호흡하던 뱃속의 아이도 나에게서 이미 빠져나온 지 오래전 일이며 내 모든 것들이 변했다 그리고 또 다시 이 가로수 길을 지나다니기 시작한 건 거의 9년 만에 이곳으로 인사발령을 받은 이유다. 벚꽃을 보려면 아직도 한 달을 더 참아야 한다지만 마음속에는 그날들의 풍경이 환히 들여다 보인다.
“엄마! 꽃이 입을 크게 벌렸어요. 목이 마른가봐. 그래서 내가 물을 많이 주었어요. 엄마.”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기온이 떨어진 베란다에서 더디게 꽃망울을 터트리던 꽃 기린을 거실로 들여다 놓은 지 이틀만의 일이었다. 막내는 꽃 기린 앞에서 차분하게 살펴보는가 싶더니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꽃망울을 터트린 꽃송이들을 보고 내게로 다가와 그렇게 말했던 거다. 이 또한 작년 초 겨울의 일이니 이제 이미 한참 전에 입춘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먼 이전의 일로 느껴진다.
‘저 입을 벌리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을까. 말하고 싶었을 거야. 나 좀 따뜻한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추운 베란다에서 멋도 모른 채 입을 크게 벌렸다가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금방 져버릴 것이 두려워서 얼마나 입을 꾹 다물고 지냈을까 싶었다.
‘참는구나. 저렇게 작은 꽃나무조차도 참는 법을 아는구나. 추위를 피할 길이 없었기에 참아내는 것만이 생존에 대한 의무였을 거야. 그 순간은 어쩔 수 없이 참는 길만이 꽃나무의 운명인 일을 “난 못 참아!” 하면서 꽃망울을 터트려 버렸다면 거실로 들어오기 전 저 꽃은 금방 져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르지. 때론 바꿀 수 없거나 힘이 없거나 피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참는 것, 참는 일, 참을성을 갖는 것‘ 이란 의무일거야. 가장 쓸모 있고 유익한 길일지도 모르지. 그것이 때로는 모두를 평온하게 만드는 지혜인지도 몰라.’
그 날을 기점으로 내 삶에는 어떤 큰 변화가 찾아올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공백과 빈자리가 길고 길었던 만큼 생활이 변해 보이지 않았다. 단지 심경의 변화만으로 내 인생의 한 국면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삶의 국면이 전개되리라고는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나온 나의 인생을 회상해보면 거의 대부분은 한결같았고 무수한 소용돌이가 나를 그리고 나를 에워싸고 있는 환경을 파괴하려고 사납게 덤벼들었을 때조차도 이상하리만치 내면의 삶은 꾸준히 그럭저럭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장 내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변화를 그저 열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한바탕 거친 바람이 휘몰아쳤고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벌판의 마른 덤불이 주저앉아서 나뒹굴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다시 고르고 평평하게 다지고 못쓰게 된 것은 치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내 삶이 그동안의 시련으로 지쳐있기는 했었지만 나의 행동, 의지, 마음가짐이 하찮은 것이기는 하여도 적어도 누구보다 능동적인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태엽을 돌릴 때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저항감이 나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에 큰 아이가 갓난아기 때부터 쓰던 천정에 걸린 오르골 태엽을 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까지 감고 또 감고 또 감았다. 그리고 그 선율을 아이 셋과 나란히 누워서 들었다. 그렇게 우리들 네 명은 서로 한 번씩 돌아가면서 태엽을 감고 오르골 선율을 들었다. 감미로운 음색이 마치 시간과 공간을 영원 속으로 몰아넣을 듯 우리들 등도 함께 떠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내몰리는 기분이 좋았다. 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 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이 아주 분명하게 느껴졌고 이따금 성인의 명언과도 비슷한 감각적인 말들이 불현 듯 생각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모든 것들을 과거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파묻어 침묵으로써 잊혀 지게 하거나 마치 잊혀 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들 각자는 그만큼 씩 멀어지거나 가까워질 것이다. 잊혀 지거나 잊힐 이유가 없어서 아예 처음부터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어리석음으로 인한 실수가 아니라 감각적으로 인정하려는 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실수가 없었던 것과 같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네 명은 이렇게 겨우내 방을 가득 채우던 오르골 선율로 숨을 쉬고 잠을 자고 또 그렇게 남은 겨울을 견딜 것이다.
젊었던 날의 나는 아주 사소한 일들도 매우 특별한 추억으로 잘 기억했었다. 돌아보면 사소한 일도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이 아니라 그냥 그런 상황에 무뎌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마흔을 넘어서고 보니 정작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조차도 사소하게 인정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나도 무뎌지는 것일까. 사랑에 있어서도 그런 것일까. 나를 사랑하다고 했던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데 나는 그들이 그런 사람이라서 라기보다는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을 인정했던 쪽에 가깝다. 누군가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 – 목적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태어난 집은 가난한 쪽에 가깝고 산골동네의 대가족 집이며 그 집안의 막내로 지금의 내 또래가 쉽게 누렸을 그 흔한 유치원 한번을 가 본적 없었던 시간과 계절이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그 속에서 그렇게 적응하면서 살았어도 삶에 있어 그다지 큰 불만이 없었다. 가난이 가져오는 조금의 불편함은 오히려 내게, 물론 긍정적인 기분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단절과 참을성을 기를 수 있도록 나를 강하게 해 주었다. 대나무도 매듭이 없다면 그렇게 큰 키로 자라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탱해주는 힘이 바로 그 매듭이기도 하면서 대나무 자체에게는 상처와 고뇌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몸 안에 매듭을 만들어가며 고뇌를 감당하는 생에 대한 태도는 해를 향한 대나무의 사랑이다.
2월 중순이 지나고 겨울 내내 인정이 없던 눈이 활수하게 쏟아져 내려왔다. 마치 그동안 인색하게 굴었던 마음을 사과하기라도 하듯 눈물이 섞인 눈은 말라있던 세상을 흠뻑 적셔놓았다. 이렇게 2월의 끝 무렵, 눈이 많이 온다는 것은 봄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과 같다. 누구나, 무엇이든지 끝날 때에 한번은 잘 해 보려고 하는 거니까.
봄은 이윽고 내 앞으로 올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올 것을 안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경험과 감정을 공유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아프지만, 아플 테지만 꽃 피울 준비를 해야만 한다. 꽃은 피어나려고 할 때 피어내야 하니까. 그러고 보면 사람의 감정이란 경험과 같이 간다. 그러나 감정이 추억으로 다가올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감정 그 자체만으로는 무엇도 될 수 없는 법이니까. 사진한 장 속에도 나와 함께 있는 사람, 함께 있지 않아도 그 사진을 찍어 준 사람, 그 사진을 찍기 전 내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 그런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던 사람은 누구라도 그 사진을 감정적으로 대하지는 못하는 법이니까.
겨울과 봄은 어떤 사이보다도 더 강한 믿음을 서로에게 주었다. 믿음은 곧 자신과 타인과 약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그런 가능성이야말로 관계를 유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겨울과 봄은 그동안 서로에게 믿을만한 약속을 해 왔을 것이고 그 약속들이 지켜져 왔기에 서로에게 의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사랑도 그 신념으로 내 상대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사람에 따라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도 다른 결과로 나타나는 가 싶다. 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단하게 살고 있지만 입술이 부르터 본 적이 거의 없다. 대신 거의 언제나 구내염을 달고 지낸다. 그래서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즐기지 못한다. 같은 바이러스가 누구에게는 밖으로 터져서 ‘너 힘들구나! 피곤하니? 좀 쉬어야겠다.’는 위로와 동정으로 돌아오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 상처마저도 보기 흉하게 입술을 뒤집어 까 보여줘야만 ‘아! 그래, 약이라도 사 먹어라.’는 식으로 억지스러운 동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나를 모르는 타인이 나를 어설프게 동정하는 것을 더 참을 수가 없다. 가만히 있을 때는 혀끝으로 그 상처를 건드려서 피맛을 보고 염증의 모양과 크기를 살펴보기도 하며 또 다시 세게 건드려서 물집을 터지게 할 때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찌르는 듯 그 통증을 경험하면서 상처를 번지게 하는 것이 마치 아이의 장난처럼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 또한 무뎌짐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누구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습관이자 질병이자 비밀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누구나 본래 모양 그대로의 윤이 나는 통통한 이파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햇살이 쏟아질 때 나무 그늘 아래에 서 본적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벌레에게 갉아 먹힌 나뭇잎 구멍을 통과하는 볕이 더 빛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사실을. 비록 스스로의 상처를 인정하고 평생 떠안고 살아가더라도, 비록 자신의 고통과 열망 중 어느 쪽이 더 강한지 자신조차 분간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더라도, 비록 내 모습이 바람속의 촛불처럼 우울하고 슬프고 약해져서 눈물조차도 이겨낼 힘이 없어 울고 있는 나를 보게 되더라도, 비록 의지와 정 반대로 삶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더라도 나는 언제나 내 삶에 있어서 엄숙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태도를 놓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지금 하는 행동들이 현재로서는 매우 우스워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나의 행동은 그 의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으로써 알맞은 속도로 삶의 제 시간을 맞추며 인생을 잘 살아나가는 비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은 2월의 중순이 끝나는 날이다. 새벽에는 하늘이 창백하게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짙은 안개구름으로 뒤덮여 버렸고 나는 온 종일 해가 어느 쪽 하늘에 떠 있는지조차 분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김없이 낮과 밤은 약속을 지켰다. 밤이 제 때를 맞춰 주었으니 낮의 해도 본분을 다한 것이다. 꽃나무가 꽃망울을 참았다가 터트리는 것도, 겨울이 물러나는 것도, 꽃잎이 떨어지는 것도, 그리고 낮과 밤이 차례대로 왔다 가며 약속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아이의 먹는 모습과 자는 모습과 웃는 모습에서 그 미래를 꿈꾸는 것도 전부다 대상에 대한 신념으로 그 가능성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누군가 침묵의 노동이라고 부른 독서를 하며 그의 극복으로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