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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편. 이른 봄, 강둑에서

모든 생명체는 계절의 노예란다. by 수달 형

by 김현이

<선단 강, 오리주둥이 원투쓰리, 그리고 수달 형, 정>


봄 햇살이 선단 강을 간지럽히면 따로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강 친구들은 때 이른 아침잠에서 깨는 것을 힘들어 하지 않는다. 겨울이 성급하게 북쪽으로 떠나면서 미처 챙겨가지 못한 한기가 이른 새벽 강가 가장자리에 살얼음을 깔아 놓았지만 푹 젖은 날씬한 갈대도 쉽게 구멍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얇았고 봄 햇살이 단 한번만 스쳐도 금방 형체도 없이 강물에 섞여 버리고 말았다. 봄이 왔다. 선단 강에 정말로 봄이 왔다.


정은 힘들이지 않게 잠을 깼다. 그런걸 보면 정도 봄이 온 걸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은 그렇지 않은 정을 게으름뱅이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모든 걸 느리게 만들었었는데 저절로 눈이 떠진 걸 보면 선단 강에 정말로 봄이 온 것을 알았다. 강물은 부드러운 엄마 손처럼 정의 몸을 간지럽히고 닿지 않은 등을 긁어주고 얼굴을 핥아 주었다. 모든 것이 정의 마음에 들었다.


허리까지 빠진 버드나무 옆에 살고 있는 원투쓰리도 오늘따라 유난스레 장난이 심하다. 날개를 활짝 펴 보기도 하고 물속에 머리를 푹 담가서 머리카락을 다듬고 눈곱도 떼고 나니 한층 앞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원투쓰리에게도 봄은 왔고 버드나무도 늘어진 가지 끝을 살짝 들어 올려 모처럼 햇살에 말리고 있었으며 그야말로 누가보아도 한가로운 봄날이었다. 이렇게 정말로 선단 강에 봄이 온 것을 알았다.


정은 선단 강에 살고 있는 수달이었다. 수컷이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형이었다. 그래서 어린 친구들은 정을 보고 수달 형이라고 불렀다. 정은 볼일을 언제나 물속 깊은 곳으로 가서 보고 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에 하나며 어쩌면 하루 기분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어김없이 강의 가장 깊은 곳인 버드나무 옆쪽으로 가 방해받지 않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방귀만 뿡뿡 나오면서 물 위로 누런 물방울들이 올라와 수면에서 빵 터지고 지독한 냄새를 퍼지게 했다. 겨울 내 먹은 음식도 별것 없었거니와 춥다고 웅크려 움직이지 않아 그만 변비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그만두면 온 종일 기분이 나쁘게 될 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정은 숨을 참고 온 힘을 엉덩이에 집중시켰다. 숨을 참은 지 한 참 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순간, 갑자기 뱃속이 부글부글 거리는가 싶더니 커다랗고 묵직한 무언가 몸속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처음보다 조금 작은 게 , 그 다름 또 작은 게, 이렇게 세 번의 무엇이 정의 몸을 나왔다. 정은 갑작스런 한기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엉덩이를 가볍게 몇 번이나 흔들고 아무 일도 아닌 척 고개를 쭉 내밀고 좌우를 돌려보니 아무도 정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없어보였다. 정이 떠난 자리에는 진갈색의 럭비공모양의 세 덩어리가 작은 소용돌이로 들어가 자리다툼이라도 하 듯 서로를 조금씩 밀어내며 동그란 물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 해는 일단 동쪽산꼭대기를 올라서기만 하면 빠르게 하늘 높이 가운데로 솟구치는 법이다. 원투쓰리도 마침 깃털을 말끔하게 빗은 상태라 온 종일 무엇을 하고 놀지 마음이 들떠 있었다. 원투쓰리는 선단 강에 살고 있는 야생오리인 청머리 오리였다. 몸의 깃털은 뽀얀 희색에 가까워 집오리와 비슷했지만 머리의 깃털이 청색과 붉은 색이 조화를 이룬 외모가 잘 생긴 오리였다. 원투쓰리는 삼형제 오리였다. 언제나 태어난 순서대로 원, 투, 쓰리라고 이름을 지어주시던 부모님 때문에 선단 강에 사는 동물들은 누구나 원투쓰리라고 알았고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다만, 정은 특별히 오리 원투쓰리가 아니라 ‘오리주둥이 원투쓰리’라고 불렀고 또한 원투쓰리는 모든 동물들이 ‘정’이라고 부르는 수달을 ‘수달 형’이라고 불렀었다.


쓰리의 눈에 소용돌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갈색 덩어리들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형! 저게 뭐지? 뭔가 신기한 물건이 우리 집에 온 것 같은데.”


“쓰리야! 뭘 보고 말하는 거냐! 넌!”


“투형이 한 번 봐!”


투형은 원 투 쓰리 중에서 가장 겁이 없었고 그래서 먼저 소용돌이 쪽으로 헤엄쳤다. 그 뒤로 원과 쓰리도 뒤따랐다. 모처럼 강둑에서 몸을 말리던 정은 무심히 원투쓰리가 노는 것을 보았고 곁눈질로만 ‘오리주둥이들 뭐하는 거야. 내가 똥 싼데서. 쳇!’ 하고 무관심한 체 했다. 소용돌이를 둥글게 가로막은 원투쓰리는 크기가 조금씩 다른 갈색 덩어리들을 매우 신기한 듯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살 때문에 조금씩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도 깨지지 않고 무거워 보이는 갈색이지만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도 않았다. 갑자기 작은 눈을 크게 뜬 원이 말했다.


“아! 저건 공이야. 럭비공이라고 하는 거야. 어디로 튈지 모르지. 오늘 운이 좋은 걸. 야! 투, 쓰리! 우리는 태어난 순서대로 원 투 쓰리가 엄격하니 차례대로 한 개씩 가지고 놀자. 형 말 들었어?”


“응. 맞아. 우리는 원 형 말을 잘 들어야 해.”


그런데 겁이 많은 원은 왠지 가장 먼저 갈색 공 가까이 가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저 속에 못된 악어새끼가 들었을지 몰라.’ 하지만 사실은 약간 무섭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야! 투! 네가 가봐라. 그럼 너에게 먼저 선택권을 줄게.”


해맑은 투는 언제나 대답한다.


“응.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어 형”


투는 소용돌이에서 움직이는 갈색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팔의 깃으로 건드려 보았다. 아무렇지 않다. 투는 신난 듯 두 번째 큰 덩어리를 깃으로 안아 소용돌이 밖으로 빼냈다. 문제가 없단 걸 본 원은 용감한 척 하며 그리고 쓰리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줄 생각으로 쓰리에게 말했다.


“이제 쓰리 네가 골라!”


형 말대로 쓰리는 가장 작은 덩어리를 깃으로 안았고 남은 가장 큰 덩어리는 원이 가지고서 소용돌이로부터 조금 떨어져 나왔다. 정은 점점 오리주둥이 삼형제의 행동이 흥미로워졌고 원투쓰리는 그 주둥이로 서로 덩어리를 굴려가며 마치 소프트볼을 갖고 놀 듯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났을까 점점 공놀이에 질린 원투쓰리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 안에 뭔가 대단한 것이 들었을 것 같다고. 깨트려보자고. 원투쓰리는 각자가 맡은 덩어리를 오리주둥이로 밀면서 넓적한 바위 쪽으로 굴리면서 헤엄쳤다. 그 덩어리가 자기가 싼 똥인 줄 알고 있던 정은 삼형제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너무나 궁금해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바위 쪽으로 다다른 삼형제는 그 덩어리를 바위에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셋이 공평하게 함께 덩어리를 바위에 던지기로 했던 것이다.


“얘들아! 우리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힘껏 던지는 거다. 알았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비장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호를 보냈다.


“자! 원투쓰리! 하나, 둘, 셋!”


정 마저도 이제는 아예 일어나 서서 그 모습을 조금은 초초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얍! 앗!”


한참 원투쓰리가 갖고 놀던 수달 형의 똥은 이미 물러져 있던 상태였고 아주 가벼운 충돌에도 넓적한 바위에 ‘퍽’소리를 내면서 ‘철퍽’하고 넓게 퍼졌다. 그 소리와 함께 선단강가는 겨우내 묵었던 수달 형의 똥냄새로 뒤덮여 버려다. 그 똥 모양은 마치 갈매기가 갯바위에 갈겨놓은 누가 봐도 완전한 새똥 모양이었으니 누가 감히 수달 똥이라고 의심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정작 오리주둥이 원투쓰리는 그 냄새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더 웃기지 않은가. 오리주둥이는 콧구멍이 바늘구멍마냥 작았으니 그 지독한 똥 냄새를 알기나 했을까.


정, 수달 형은 강둑에 앉아 그 원투쓰리, 오리주둥이 삼형제의 모습을 보고서 얼마나 웃었는지 배꼽이 다 빠질 지경이었고 원투쓰리는 자기들 주둥이로 굴리며 갖고 놀았던 덩어리가 언제나 철학적이고 멋있어 보이던 수달 형의 똥 덩어리인 줄 여전히 모른 체 그냥 퍼진 똥을 보고 그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에 약간 실망했을 뿐 봄볕에 막 생기를 찾은 선단강가에서 물고기나 잡자면서 강을 헤엄쳤다.


“원 형! 나는 미꾸라지 먹고 싶다.”


“나는 말이지. 살찐 참붕어가 먹고 싶은데?”


“형아! 나는 딱새우. 새우 먹을 테야!”


이 말을 들은 원과 투 형은 쓰리에게 형님답게 충고했다


“조심해라! 새우주둥이가 네 오리주둥이를 찌를 수도 있어!”


착한 쓰리는 “고마워 형!” 말했다.


위 이야기는 며칠 전, 불을 끄고 누운 뒤 잠이 쏟아지는 내게 우리 집 원투쓰리가 그렇게도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여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다. 단우가 불을 끄기 직전까지 읽어달라고 내개 들이민 [오리주둥이 공룡] 책 제목에서 성급하게 지어내다 보니 뒤죽박죽이었지만 생동감 있는 엄마의 연기로 아이들은 불끈 천장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야광 별들을 바라보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지들끼리 ‘똥이야! 수달 형 똥이야!’ 하면서 정말로 냄새가 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코를 집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이름이 정(정우에서 따옴) 수달 형이 되고 아이들은 오리주둥이 삼형제가 되어서 봄이 찾아 온 선단 강(선우와 단우 이름에서 따옴) 품에 안겨 편안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날 밤, 나는 쌕 쌕 소리를 내면서 잠든 아이들을 보면서 부드럽고 맑은 선단 강의 물처럼 낮은 곳부터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중심을 잡고 차분히 가라앉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자기만의 깊이를 잴 수 있어서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그리고 봄을 기다리면서 겨울을 인내하듯 이 일련의 일들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려 깊은 사람이 되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2019. 3. 8. 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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