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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편. 울고 넘는 박달재

각자의 마음이 합쳐질때 놀라운 감동이 일어날 수 있다.

by 김현이

울고 넘는 박달재


-작사 반야월-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굳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토요일 늦은 저녁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아네 아버지가 내일 천안에서 칠순 잔치를 해서 동네 사람들하고 천안에 가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엄마는 대 놓고 ‘너희도 나와라.’ 하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럴 마음이 없었다면 내일 천안에 오신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을 것을 알았기에 선뜻 그 장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고 같이 나간다고 일부러라도 만나려고 하는 마당에 이 얼마나 좋으냐고 하면서. 우중충한 날씨에 주말 내내 집 안에서만 있던 애들에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소식은 정말로 신나는 일 그 자체였다. 갑자기 이것을 빌미로 심부름을 시켜도 꾀부리는 일 없이 바로바로 했고 심지어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 만큼 할머니 할아버지 품이 그리웠고 또 나들이에 마음이 들뜬 모양이었다. 그렇게 치자면 나 또한 마음이 왜 즐겁고 설레지 않았겠는가. 내일 만난다면 거의 한 달 만에 부모님을 뵙는 것이니 얼마나 기쁜 일일까.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왜 하필 그 먼 무주에서 이 곳 천안까지 오셔서 고희연을 하시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번에 고희연을 맞으신 분의 큰 딸이 나와 초등학교 동기생이다. 연락이 안 된지는 거의 15년이나 넘게 지나서 모르고 지내오면서도 경기도 북부 어디선가 살고 있다고만 들었지 그동안 소식을 모른지 오래된 친구였다. 천안에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은 그 분의 장녀, 그러니까 내 초등학교 동기생이 천안과 이웃한 평택으로 이사를 왔던 이유였고 그래서 친정 동네 어르신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이곳 천안에까지 나들이를 나오신 거였다. 친구가 평택으로 이사를 오게 된 덕분에 나는 3월 내내 한 번도 만나지 못할 뻔한 부모님을 볼 수가 있게 되었고 내 아이들 기분처럼 신이나기까지 했다.


음식을 골고루 가져다 차려 놓고 맛을 본 아이들은 본 식사보다는 음료수, 디저트에만 신경을 쓰면서 결국은 음료수로 배를 채우고 놀이방에서 방방을 타느라 때 아닌 땀방울을 흘리면서 중간에 한 번씩 자기들의 엄마가 제 자리에 잘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눈도장을 찍으며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식사는 자유롭게 진행되었고 가라오케 반주가 켜지더니 어르신들의 노래잔치가 벌어졌다. 그래도 생일잔치에 걸 맞는 노래들이 이어지던 가운데 선율이 애잔한 노랫가락이 들여왔다. 바로 그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가사만으로도 너무나 애절한 이 노래를 조금은 낯선 아저씨께서 부르고 계셨던 것이다. 박달이. 금봉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노래의 전설을 알고 있었다. 박달재가 왜 울고 넘어야 하는 고개인지를. 박달이라는 총각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중 이 곳 박다리의 한 농가에서 신세를 지는데 그 때 금봉이라는 처자에게 첫눈에 반하고 두 처녀 총각은 금방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과거시험을 보러간 박달이는 소식도 없고 금봉이는 박달이만을 기다리다가 그만 재 너머 낭떠러지 바다로 떨어져 죽게 되고 그 후로 박달이가 과거 시험에 낙방하여 늦게 금봉이를 찾아오지만 금봉이는 이미 죽은 뒤였고 그 사실에 너무 슬퍼하던 박달이마저 금봉이가 떨어져 죽은 그 재에서 금봉이의 환영을 보고 마치 홀린 듯 똑같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전설을 슬픔의 노래로 풀어쓴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 이 전설을 듣고 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이던 시절부터 이 서글픈 사연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르기도 했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설이 조금은 왜곡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사실 박달이는 과거에 급제를 하였지만 금봉이를 만나러 다시 오지 않았고 금봉이는 박다리에서 만난 박달이와의 사랑에서 임신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모를 고민을 하던 금봉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고개에서 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라오케에서 울고 넘는 박달재가 흘러나오니까 갑자기 내가 땅 꼬마 시절 아버지가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로 흥얼거리던 그 노래, 그 모습이 불현 듯 생각이 났는데 그날 행사 첫 인사에서 섭외된 진행자가 친구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에 ‘왜 우시느냐, 슬프냐.’고 생각도 없이 하는 질문에 속으로 ‘저 사람 진행 솜씨가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싶었던 그 마음에 해답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왜 슬프겠느냐고. 슬픔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겹친 감정들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울컥해져서 눈물이 나왔을 법인데, 우리들은 누구라도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을 텐데 고희연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진행자가 많이 아쉽게 느껴졌던 것이다.


평소 엄마의 노래 실력을 잘 알고 계시던 아버지 친구 분은 엄마의 18번을 예약해 두고 반주가 흘러나오자 엄마 손을 끌고 무대로 나가셨다. 나는 엄마의 노래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아직 좀 많이 남은 아버지의 고희연을 떠올렸다. 그 때 나는 꼭 그 자리에 모신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편지를 부모님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마음속으로 계획하며 꼭 실천해 내리라고 마음먹은 아버지의 인생을 담은 책을 펴내서 꼭 그 앞에 바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저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만큼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것을 비록 당신들의 막내 딸 자식이 평탄하지 못한 삶으로 살아와서 부모님을 가장 많이 속상하게 해드린 자식으로서 일종의 속죄를 그렇게라도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부모님은 훗날의 그런 보답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지금 현재의 당신의 막내 딸 자식이 편안하고 행복하고 걱정 없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내가 마음먹은 일은 솔직히 부모님께 아무런 도움도 못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버지는 다시 되 돌아가 가려는 관광버스 안에서 고운 분홍빛 보자기로 싼 자그만 박스를 내오셔서는 내 차 트렁크에 실어 주셨다. 엄마가 나한테 온다고 어제 밤에 내내 만든 밑반찬이라고 했다. 보모님 일행은 그 곳에서 헤어지는 다른 친지 분들 때문에 출발이 계속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계속 재촉하셨다. 그래서 그냥 엄마 말대로 버스보다 먼저 집으로 출발했다. 오는 내내 세 꼬마들은 아쉽다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무척 서운해 했었고 그 표현의 감정들은 나를 더 자극해서 나는 운전에 방해가 될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계속 닦아내느라 애꿎은 콧물을 훌쩍이며 티슈를 몇 장이나 뽑아서 썼다.


주말 오후라서 도로는 막혔고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도로 옆, 이미 오래 전부터 빈집으로 보이는 1층 양옥집 담장 너머로 키 큰 목련꽃 나무가 꽃송이에 전등이라도 감춘 듯 은근한 빛을 뿜어내는 꽃송이들을 뽐내듯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 보였다. 그렇게 약속이라도 한 듯 빈 집의 마당에서도, 우리 파출소의 화단에도, 우리 파출소 옆의 초등학교 담장 아래에서도 목련꽃은 거의 동시에 뽀얀 꽃망울을 터트렸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그늘을 내 주었던 그 목련꽃 나무도 내 마음속 한 기억 안에서 꽃을 피워 냈다. 엄마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시는 길에 나처럼, 내 꼬마들처럼 내 생각을, 내 꼬마들을 생각하셨을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도 엄마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장소의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있으면서도 서로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을 알고 있다. 지금 가장 예쁘게 피어난 목련꽃들의 말없는 약속의 이행같이 우리는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곧 고희를 앞둔 아빠부터 내년에 일곱 살이 될 내 막내 꼬마까지 우리는 말로써 약속한 적은 없었지만 다른 공간 다른 분위기에서 같은 생각으로 헤어짐을 아쉬워하거나 앞으로의 그리움에 마음이 뭉글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을 것이리라. 나는 오늘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너무나 소중해서 말하기조차 아까운 그것, 우리들의 마음, 서로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고희연을 떠올렸다.


그리고 또, 막 잠이 들려고 한 내 귓전에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랫가락이 들려와 찾아왔던 잠이 달아나면서 그 대신 박달이와 금봉이를 데려다 놓고 갔다. 이제 나는 박달이와 금봉이와 셋이서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한다. 꼬마들이 모두 잠든, 아빠도 엄마도 잠을 자려고 누웠다는 통화가 끝난 뒤 이미 한 시간도 넘은 뒤였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각자의 소박한 마음이 모이면 때때로 전체는 감동적이고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게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하는 마음이다.



2019. 4. 1. (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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