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by 혀비

매년 11월 둘째 주 목요일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지는 날이다. 7시쯤 눈을 떠서 휴대전화를 켜보면 전국이 수능 열기에 휩싸이는 날이다.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해보려 하지만 매번 실패하고는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씻고 나온다.

그러면 8시 10분쯤 감독관 입실 완료 시간이 된다. 국어 시험지가 인터넷에 올라오는 시간은 10시 56분인데 이때부터 2시간 46분가량의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진다. 진짜 킬링타임을 할 수만 있다면 그냥 10시 56분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킬링타임을 위해 책도 읽어보고 누워도 있어 보고 넷플릭스로 보고 싶었던 영상도 보지만, 여전히 시간은 가지 않는다. 미래의 내가 이럴 줄 알고 과거에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이 야속하기만 한 시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9시가 되고 ‘선택과목은 다 풀었으려나’, ‘막히지는 않고 풀고 있으려나’. 9시 30분에는 ‘문학은 다 풀었으려나’, ‘문학 비연계가 어려울 텐데’ 하며 걱정을 사서 한다. 9시 50분에는 ‘종료 10분 전 마킹을 하고 문제를 풀어야 할 텐데’, ‘사자 심장이 필요한 시간인데’, ‘연습한 대로 차분히 마무리했으면’하는 복합적인 생각 속에서 10시를 맞이한다.

하지만 시험지 업로드까지는 아직도 56분이 남아있다. 애들은 긴장 좀 풀고 수학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제발 국어 신경 쓰지 말고 남은 과목들을 잘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어제 미리 충전해 둔 아이패드를 꺼내고 애플 펜슬 충전을 한다. 마치 경건한 예불을 준비하는 수도승처럼 하나하나 조용하게 준비한다.


수능 문제를 풀면서 어디가 어려웠고 대략 어느 정도의 등급 컷이 나올지 예상을 해보곤 한다. 국어 시험이 어려웠던 악명 높은 2019학년도 수능과 2022학년도 수능 문제를 풀 때는 문학 영역까지는 빠르게 풀었는데, 독서 영역 지문 난도가 어려운 정도를 넘어서 지옥 불이었다. ‘아니 이걸 고3, 19살한테 풀라고? 나도 20대가 돼서 알게 된 내용인데?’ 이러면서 꾸역꾸역 풀어낸 기억이 있다.

그렇게 수능 문제 풀이 후 서둘러 출근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신문 기사 새로고침을 하며 국어 영역 관련 기사를 찾아본다. 보통 ‘9월 모의평가와 유사’하다고 할 경우에는 시험 난도가 높지 않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시험일 확률이 높고, ‘어렵다, 지난 수능과 유사’하다고 할 경우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실수는 용납하는 시험일 확률이 높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쉬운 시험보다는 차라리 어려운 시험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 수능 기조가 킬러 문항 배제를 슬로건 아래에서 국어 영역은 이전보다 시험 난도가 악랄한 정도는 아니다.

수능 날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않기 때문에 보통 3시부터 수업이 진행된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있다면, “이제 너의 세상이니까 준비하”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건넨다. 그러면 “저 아직 고2라서 괜찮아요.”라는 반응으로 빠져나간다. 수업하면서 킬링타임을 하면 어느덧 수능이 끝나는 시간이 되고 인스타와 네이버 메인에 ‘수험생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하고 그때야 조금 안심이 된다.

그리고 저녁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시험을 보고 나와서 가채점 결과를 보낸 학생들이랑 간단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개 연락이 오는 경우는 시험을 잘 봤거나 내가 궁금해할까 봐 연락을 남기는 경우이다. 연락이 오면 점수보다는 연락을 해준 고마움이 가장 크고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커 보이는 산을 넘은 것에 대한 대견함과 1년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는 안도감 등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문득 내 수능을 생각해 봤다. 내가 수능 봤을 때 부모님, 선생님도 다 이러고 있었겠구나. 하루 종일 상대성 이론과 씨름하면서 나를 기다렸겠구나. 시험장에서는 혼자 외롭고 힘들었겠지만 교문 밖에서는 많은 사람이 나를 응원하고 기다리고 있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뭉클해진다.

부디 오늘 하루 시험을 마친 아이들도 먼 후일 자신을 응원했던 사람이 있음을 알고 마음 한편이 따스해지는 수능 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첫 알바가 직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