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알바가 직업이 되었다.

by 혀비

대학교 1~3학년 동안 나는 남들이 하는 아르바이트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배워야 하는 때가 있다’라며 학업에 열중하길 바라는 아버지 영향이었다. 덕분에 하고 싶던 교직 이수를 할 수 있었지만, 대학교 동안 주머니 사정은 여의찮았다. 교직 이수 선발이 끝난 3학년 때는 알바를 해보려 했지만, 아버지 설득에 실패하고 학교만 열심히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짧게나마 여행을 다녀올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렇게 3학년이 끝나고 드디어 기다리던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를 기다린 이유는 가서의 힘든 것보다 집에서 떠난다는 해방감이 컸다. 그때는 24살, 다 큰 어른인데 외박부터 아르바이트 등 집의 구속이 너무 컸다. 그러한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라 힘든 건 생각도 안 하고 빨리 집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군대를 가서 마지막 휴가를 나오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알바 천국’ 사이트에서 열심히 검색했다. 그 와중에 전공이랑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다고 학원 업종만 검색했다. 이력서를 제출하고 학원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대치역 근처에 있는 학원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에서 사는 지역과 하는 일에 관해서 물어보셔서 군인 마지막 휴가를 나온 상태이고 교직 이수 중임을 말씀드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학원 업종은 교직 이수를 생각처럼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수능과 중등교원임용경쟁시험(흔히 ‘임용고시’로 알고 있는 시험의 명칭이다.)이 1주일 차이로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교직 이수 과정에 있는 사람은 11월에 본인의 학업을 위해 보통 10월~11월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원 입장에서는 10월~11월이 1년의 농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교직 이수 과정에 있는 사람의 선발을 꺼린다.

면접을 마무리하고 당연히 연락이 올 거로 생각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면접 안내를 해주신 번호로 합격 여부 확인차 문자를 남겼다. 그랬더니 현재 채용 가능 지점 확인 중에 있다는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군대 마지막 휴가를 끝내고 전역 후 다음 날에 잠실원에 출근해서 업무 교육을 받고 다음 주부터 현재 소속되어 있는 분당원에서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학생들 테스트를 봐주고 교재 작업을 하면서 용돈벌이했다. 그러다가 4학년 2학기 무렵에 전임 강사 제의가 왔고 4학년 때 딱히 임용고사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제의를 수락했다. 학원은 전임 강사와 파트 강사로 구분되는데 전임 강사의 경우에는 주 5일 근무를 하고 파트 강사의 경우에는 주 2~3회 근무를 한다. 그렇게 4학년 2학기 때는 주 2일은 학교를 가서 수업을 듣고 주 5일은 학원에 출근해서 수업했다. 지금 돌아보면 삶에 여유가 가장 없던 시절이기도 했고 처음 받는 큰돈에 행복했던 역설적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파트 강사로 전환해서 노량진을 오가며 2년 동안 임용고사 시험공부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20대의 끝자락에서 많이 고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남은 삶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지금 하는 학원 강사라는 직업이 교사라는 직업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전공이랑 연관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을 좋아하는 성향도 아니고 교사라는 꿈만 가지고 12년을 살다 보니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에 대한 도전과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도전할 시간도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으로 강사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게 되면서 첫 알바가 직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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